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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스 Mar 01. 2020

왜 우리에게 가족은 주어지는가

영화 해석 및 리뷰 < 어느 가족, 2018 >



오늘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2018년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작품의 원제는 '좀도둑 가족'이라는 의미의 만비키 가족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개인적으로는 만비키 가족이라는 원제가 훨씬 와닿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한눈에 보기에 특이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정상성에 대해 묻고 있다.



정상성


우리는 사회는 정상성을 흔하게 요구한다. 그 사람은 얼마나 정상적인 사람인가. 

성격, 가치관, 연애관 등 정상의 범주를 요구하는 항목이 셀 수 없이 많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경계는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정상인지, 아닌지 낙인찍는 것을 중요시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가족'도 마찬가지로 정상의 범주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는 생물학적 여성인 어머니와 남성인 아버지가 있고 그 아래에 혈연관계인 자식들이 있는 구조다.

최근 들어 정상가족의 범위를 변경해야 한다는 논의가 조금씩 나오기는 하지만 

여전히 기존의 가족 질서는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편부모 가정, 고아, 동성혼 가정이 여전히 비정상적인 가족으로 분류되는 주된 원인이다.


영화는 만비키 가족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가족을 등장시킨다. 이 가족의 가장 큰 특징은 혈연관계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거다. 비정상적인 가족을 보여주면서 정상성 구조에 대해 강하게 문제 제기한다.



만비키


영화는 아빠 역할의 오사마 시바타와 아들 역할의 쇼타가 도둑질을 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잔뜩 근엄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은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척하다가 가방에 물건을 숨겨서 가게를 빠져나온다.

이 두 사람의 만비키 행위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꼭 해야 하는 중요한 행동이다.

어린 소년에게 도둑질을 시켜야 하는 다소 충격적인 상황은 영화 초반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만비키는 또 다른 것을 지칭하기도 한다. 바로 가족 간의 관계다.

쇼타는 어린 시절 가족들로부터 버려졌다. 그런 그를 오사마 시바타가 발견해 가족이 됐다.

시바타 입장에서는 쇼타를 구출해 준 것이지만 피가 섞이지 않은 남의 아들을 훔친 셈이다.


이렇듯 이 특이한 가족들의 구성원들은 내부에서 볼 때는 적절하지만 타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불완전한 관계로 비친다. 이점은 이후 영화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암시한다.




정상성 2


영화는 다소 진보적인 의견을 제시한다. 가족도 선택받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작품 속 계속해서 등장하는 '선택'에 관한 대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진짜 부모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하던 유리는 오사마 시바타로부터 구출된 뒤 새로운 가족을 찾게 된다.

몇 달 뒤 유리가 사라졌음을 알리는 TV 뉴스가 나오자 가짜 가족들은 유리에게 다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


진짜 가족과 가짜 가족을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서 유리는 큰 망설임 없이 가짜 가족을 선택한다.

이후에도 감독은 관객들에게 가족이라는 용어가 꼭 혈연이 조건이 아닐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등장인물들이 가짜 가족을 선택하는 장면을 반복해 보여주면서다.


할머니로 등장하는 하츠에 시바타는 죽기 전 찾아간 바닷가에서 입모양으로 '그동안 고마웠어'라고 말한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쇼타는 오사무와 헤어지고 난 후 입모양으로 아빠라는 말을 읊조린다.

등장인물들이 반복적으로 가짜 가족을 선택함으로써 그들이 이 관계에 애정을 갖고 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기존의 가족질서가 그들 관계를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각각의 구성원들은 '비정상 가족'이라는 낙인과 함께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영화 속 비정상 가족은 결국 정상가족이 되지 못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가 으레 그런 것처럼

인위적인 해피엔딩보다는 약간의 씁쓸함을 남기는 서정적인 엔딩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장치


영화의 진행을 매끄럽게 해주는 장치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주로 연출에서의 특색이다.


첫 번째로 도둑질 신이다. 영화 속에는 도둑질하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쇼타와 유리는 도둑질하기 전 손을 모은 뒤 손가락을 빙빙 돌리는 특유의 제스처를 취한다. 도둑질 신에서 감독은 관객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식탁 밑에 숨어있는 송강호의 불편함을 전하기 위해 봉준호 감독이 섹스 신을 넣은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쇼타가 직원들의 눈을 피해 도둑질을 하는 상황은 관객들에게도 매우 조마조마하고 불안한 상황으로 다가온다.

감독은 연출을 통해 인위적으로 관객에게 심리적 고통을 분담시킨 셈이다.


두 번째는 스위미 이야기다. 쇼타는 영화 중반에 스위미 이야기를 한다. 이 이야기는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

거대한 참치를 몰아내는 이야기라고 말이다. 왜 참치를 몰아내느냐는 오사무의 질문에 쇼타는 따로 대답하지 않지만 생존이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거대한 참치가 기존 가족제도에 대한 메타포라면 작은 물고기들은 쇼타의 가족과 같은 유사가족을 의미한다.

작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 터전을 위협하는 참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몸을 던져 저항하는 일.

영화 후반부에 쇼타가 '일부로 잡혔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저항이라도 해보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다.


세번째로는 '4번 님'이다. 4번님이라는 캐릭터는 유사 성행위 업소에서 일하는 아키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후 아키는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토크 룸으로 이끈다.

하지만 그는 말을 하지 못하는 청년이었다. 


유사 성행위 업소에서 일하는 아키. 말을 하지 못하는 청년과의 토크 룸 장면. 그리고 그에게 사랑에 빠지는 아키까지 일반적인 관점에서 정상성을 벗어난 이들의 아름다운 조화가 잘 드러난다.

이 조화는 기존의 관념을 무너뜨리는 데 도움을 준다.




가족


결국 영화는 어설픈 헤피엔딩을 택하지 않는다. 유리의 이빨이 빠지던 날,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그들의 가족관계는 위기를 맞았다.

안타깝게도 유사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기존 제도권에 타격을 입히지 못했지만. 작은 물고기들을 남겼다.


같은 피가 흐르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 흉터가 있음으로 인해 동질감을 형성하는

이 유사가족은 외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태어나면서부터 구성된 가족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개인이 있다면 새로운 가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물론 기존의 가족제도를 없애자는 극단적인 의미는 아니다. 

그저 주어진 가족보다 선택할 수 있는 가족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낳으면 다 엄마가 됩니까'라고 절절하게 외치던 노부요 시바타의 말은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다.

이에 더해 바스트 숏으로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관객들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한 연출까지.

진짜 가족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듯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연출 방식은 

다른 작품에 비해 직설적이다.


이 영화가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단지 가족에만 그치지 않고, 태어날 때부터 개인에게 귀속된 모든 것에 대한 메시지다.

가족, 국가와 같은 전통적인 권력관계로부터 한층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개인의 바람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이 영화와 함께 보면 좋은 텍스트가 있다. 

책으로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고를 수 있겠고,

영화로는 <가버나움>이 있겠다.


가버나움과 어느 가족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가버나움이 조금 더 다큐멘터리 같다면, 

어느 가족은 극화에 집중한 모습이다.

전하는 메시지나, 표현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차이점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한 친구가 자신이 봤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해줬다. 여러 번 입양이 거절된 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그 아이에게는 가족이 꼭 행복만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가족이 된다는 것과 행복한 가족이 되는 것은

틀림없이 다른 의미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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