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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스 Mar 16. 2020

김종관 감독의 마음 담아내기

영화 해석 및 리뷰 < 더 테이블, 2017 >


영화는 영상을 통해 관객들에게 말을 건다. 관객들 역시 화려한 액션신이나, 좋은 풍경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에서의 핵심이 영상이라는 것은 크게 강조할 필요도 없는 듯하다.


감독들이 촬영과 편집에 집중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어떤 그림을 찍고, 화면 전환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영화 촬영에서 항상 뒤따르는 고민 중 하나다.


그러나 내가 느낀 김종관 감독은 다른 감독과 달리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는 편이다.

이는 큰 장면전환 없이 감정의 변화를 드러낸 영화 <더 테이블>이 재밌게 느껴진 이유와도 관련 있다.





변화


영화의 배경은 조용한 카페다.

영화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8명의 인물은 각자의 상황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영화가 담아내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감정 변화다.


다른 영화와 달리 이 영화에서는 큰 장면전환이 일어나지 않는다. 기껏 해봐야 앉아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비추는 정도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대화하는 장면이 영화 속 대부분을 차지한다.


화려하지 않은 카메라 연출에서 등장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파악하는 일이 이 영화의 큰 관전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소소한 장면 전환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등장인물의 감정 변화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건 클로즈업 샷이 많이 활용됐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살아있는 표정연기가 하나같이 일품이다.

잔잔한 흐름도 잡아내는 섬세한 연출은 김종관 감독의 큰 장점이라고 본다.





내용적인 측면을 조금 살펴보자면 영화는 4가지의 다양한 스토리가 어우러진 옴니버스 식 구성이지만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선(line)'에 관한 이야기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유명 연예인인 여자친구와 평범한 직장인인 전 남자친구 사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흔히 우리는 누군가 무례한 행동을 했을 때 '선을 넘는다'라고 표현하는데, 안타깝게도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선을 넘는 전 남자친구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이로써 여배우와 전 남자친구 사이의 존재했던 추억이라는 긍정적인 관계도 자연스럽게 끊어진다.


반면 두 번째 에피소드는 선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내용이다. 썸을 타고 있던 사이였던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은

서로의 진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전전긍긍하지만 대화를 이어감에 따라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경진 씨는 저에 대해서 잘 모르시잖아요"


남자의 이 한 마디는 처음에는 오해를 불러일으켰지만 결국 서로를 알아가고 싶다는 뜻으로 변했다.

앞서의 에피소드에서 소문과 사실의 확인이 분쟁을 낳았다면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사실의 확인이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된 셈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에피소드 역시 선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가짜 어머니를 섭외해 결혼을 하려고 하는 여자를 향해 가짜 어머니 역할을 자처한 여인은 따뜻한 메시지를 보내준다.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만난 비즈니스 관계에서 마치 엄마와 딸 같은 따뜻한 사이가 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약간의 시간과 따뜻한 차가 그 비결이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선을 긋는 상황이 연출된다.

결혼을 앞둔 여자와 전 남자친구와의 사이는 이어질 수 없는 관계기 때문이다.


"왜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달라지는 건지 모르겠어"


선을 긋고 싶어 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그어야만 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대사다.


요약하자면 4가지의 에피소드는 각각 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첫 번째는 무례한 과거 연인에게 선을 긋는 이야기.

두 번째는 호감 있는 두 사람이 오해를 극복하고 새롭게 선을 그리는 이야기.

세 번째는 비즈니스 상대에서 출발해 하나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이야기.

마지막으로는 긋고 싶지 않지만 그어야 할 선에 관한 이야기.


이 선에 관한 이야기들은 어쩌면 '관계'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일상


영화의 배경이 되는 카페는 흔히 우리가 사용하는 공간이다. 공개적인 공간이지만 내면의 은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공간이기도 한 이 공간은 사람이 왔다 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바뀌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잔을 치우고 테이블을 닦는 카페 주인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장면 전환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최악의 하루> <페르소나 - 밤을 걷다>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김종관 감독은 일상을 잘 변주하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려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특별한 그런 일상들을 세심하게 관찰한 뒤 이를 그려낸다.


<밤을 걷다> 속 죽음이라는 개념.

<최악의 하루> 속 사랑이라는 개념.

<더 테이블> 속 인간관계라는 개념까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전부인 그런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데는 독보적인 듯하다.


개인들의 소소하고도 작은 이야기가 관심을 받기 시작한 최근에,

잔잔하고도 울림이 있는 이 영화가 개봉했다면 더욱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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