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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스 Feb 23. 2020

작은 아씨들

영화 해석 및 리뷰 < 작은 아씨들, 2019 >




단순히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존감과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작은 아씨들>이 주는 메시지 말이다. 한 명 한 명 개성이 살아있는 캐릭터들과 함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페미니즘을 넘어서는 교훈을 느낄 수 있다.



캐릭터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제목처럼 '작은 아씨들'이 겪는 이야기가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는 4명의 소녀가 등장한다. 이때 등장하는 4명의 캐릭터들은 각각의 개성을 지녔으며

매우 섬세하게 구현되어 있다.

언뜻 보기에는 '조'라는 캐릭터가 주인공인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주인공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영화 <벌새>리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하나의 핵심 캐릭터가 하나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을

남성적인 영화의 특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반면 주연과 조연을 명확하게 나눌 수 없고 극을 하나로 끌고 가는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

영화를 여성적인 영화로 표현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이러한 경향의 '여성적 영상문법'은 과거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대중들로부터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영화 <벌새>가 그런 것처럼, 그레타 거윅 감독의 전작 <레이디 버드>에서 드러난 것처럼,

<작은 아씨들> 역시 같은 수준의 캐릭터 표현이 나타난다.





선택


앞서 이 영화가 단순히 페미니즘에서 그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영화는 페미니즘을 넘어서서

개인의 선택과 자존감에 대한 얘기로 이어진다.

'조'라는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어린 시절 조는 로리의 청혼을 거절한다. 단순히 로리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 그 이유일 수 있지만

조가 과할 정도로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로리에 대해 '너를 사랑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조의 모습이 이를 잘 드러낸다.


그 당시의 시대상과 조의 배경지식 속에서 결혼은 곧 불행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이런저런 배경이 개인이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조가 로리의 청혼을 거절한 것은

온전히 자신의 의지라고는 볼 수 없다.


조는 미완의 결정을 내린 셈이다.


반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조는 자신이 로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앞서 결혼은 곧 불행이라는 자신의 생각은 깨지지 않았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로리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제서야 조의 선택은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남는다.


마찬가지로 영화 속에서는 각각의 결정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도록 유도하는 장치들이 숨어 있다.

착한 '베스'의 죽음도 이러한 장치에 속한다.


영화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베스의 죽음에 슬퍼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착하고, 조용한 소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 속 스토리 장치로 생각했을 때,

베스의 죽음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베스는 순수하고, 착한, 그리고 바른 아이로 자라왔다. 과거 가부장제 시대의 모범적인 여성상이다.

그런 베스는 성홍열이라는 병을 앓게 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베스의 죽음은 살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하지 않은 결과로 비친다.

조는 성홍열로 죽어가는 베스에게 적극적으로 싸우라고 말한다.

주어진 운명에 맞서 용기 있게 부딪히라는 메시지다.


그런 조언을 받아들여 한 번은 병에서 낫지만 두 번째에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다.


과연 삶을 얼마나 주체적으로 살아가는가에 있어서 베스는 안타깝게도 최하위였기 때문에

베스의 죽음은 어느 정도는 예견된 장치로 역할한다.

다른 자매들에게도 이러한 선택의 순간이 주어진다.


자매들은 각각의 순간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정을 내린다.

첫째인 맥은 가진 것이 많이 없었던 가정교사 존 브룩과

결혼을 결심하고, 에이미는 프레드 본의 청혼을 거부한 채

자신이 사랑했던 로리를 선택한다.


나름대로의 주체성이 돋보이는 선택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조의 선택은 가장 두드러진다. 조는 결혼을 할지 말지를 먼저 선택한 뒤

누구와 결혼할지를 결정했다.


다른 자매들에게 결혼이란 어느 정도 주어진 것이었다면 조의 선택은 조금 더 능동적인 것이었다.

특히 결혼 상대를 '이민자'인 프리드리히로 선택하는 모습은 조의 주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소재가 된다.


이렇듯 소설과 영화에서는 단순히 페미니즘적인 이야기를 뛰어넘어 개인이 사회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대한

메시지도 던지고 있다.



연출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연출은 각각의 캐릭터가 부각되는 연출이다.

과거와 현재의 계속된 반복, 한 명의 시점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번갈아서 드러내는 모습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캐릭터 한 명 한 명의 성격과 상황을 잘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19세기 미국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살리기 위해 꼼꼼히 표현한 의상들과,

질감을 그대로 나타내는 카메라 촬영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모습이 인상 깊다.

연출을 위해 감독이 원작을 깊게 공부한 모습이 눈에 쉽게 그려진다.


그러면서도 감독은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에 대해서도 우호적으로 그려냈다.

통제불능에다가 무엇이든 제대로 선택해본 적 없는 로리가 에이미에게 청혼을 할 정도로 어른이 된 모습부터

베스와 우정을 나누던 로렌스 할아버지가 베스를 잃고 나서 슬퍼하는 인간적인 모습까지.

적대적이지 않으면서도 따스한 가족 같은 영화의 분위기가 잘 어우러졌다.


단란하고 오순도순 한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아서 잘 쓰이는 것이 아니라,

잘 쓰이지 않아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거라는 에이미의 말은 영화를 관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조의 소설이 흥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가부장제적인 사회를 완전히 걷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우며 자극적인 글을 요구하던 대시 우드는 한동안 그렇게 지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조가 세운 학교가 그 대표적인 예다. 변화가 느리게 진행될 수는 있지만 역행하지는 않을 테니까.


어떤 천성들은 억누르기에는
너무 고결하고, 굽히기엔 너무 드높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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