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보는법

영화 리뷰 < 거꾸로 가는 남자(2018) >

by 스미스

<본 리뷰는 영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거꾸로 가는 남자.'


영어로는 '나 쉬운 남자 아니에요'다.

영어 제목이 조금 더

임팩트 있게 느껴진다.


거꾸로 가는 남자라는 제목은

''벤자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시간에 관한 이야기의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짧은 바지를 입은 남자가 인상적인

이 영화의 포스터는

영화의 내용을 암시한다.

바로 '거꾸로 된 세계'에 떨어진

한 남자의 이야기다.


거꾸로 된 남자


영화의 전체 내용은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

성 역할이 완전히 뒤바뀐

다른 세계로 가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다.


'남성'과 '여성'이 역할이

완전히 달라진

두 세계를 본 남자 주인공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감독은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역지사지'의 자극을 주려 한다.


최근 세계적으로 민감한 젠더 이슈에

어울리는 영화다.


처음 이 영화를 여자친구로부터

추천받았을 때

'나를 계몽하려는 건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무언가 잘못을 한 건가.

나에게도 왜곡된 성 관념이 있었나.

하며 자기반성을 하게 됐다.


이렇듯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재밌게 봤다.

그리고 다른 남자인 친구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다.


그 이유는 폭력적이지 않은

영화의 연출 방식 때문이다.


누군가를 계몽시키기 위해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기보다,

누군가에게 신선한

'지적 자극'을 전달하기 위해

영화가 만들어진 게 맞다는 이야기다.





바뀌고 나서 보이는 것들


영화의 도입부에 한 남자

어린이가 나온다.

학예발표회 같은 것을

준비하고 있는 듯한데,


공주 역할을 담당할 여자아이

한 명이 모자라

공주 옷을 입게 되는 어린이다.


이 어린이는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된다.


트라우마로 인해 이 어린이는

30분간 양치를 하지 않으면

찝찝해지는 병이 생기는데,

이 어린이가 바로 주인공 '다미앵'이다.


이후 다미앵은 특유의 '남성다움'

(적합한 표현이 아닐 수도 있지만

영화의 젠더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다.)을 강조하며 자란다.


이렇듯 다미앵의 남성성이

커진 데에는

아마 어린 시절 발표회 때 생긴

트라우마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던 어느 날 예쁜 여자를 쳐다보며

지나가던 다미앵은 가로등에

머리를 부딪혀 기절하게 된다.


기절한 직후 일어나 보니

자신은 바뀐 세계에 와있었다.


그곳에서는 다미앵에게는

매우 '이상한' 광경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 세계에서는

남자 '스트리퍼' 가 흔했고

남자들은 하나같이

짧은 바지를 입고 다녔다.


'남성성'이 완전히 뒤바뀐 순간이었다.

다미앵이 이 세계에 적응하는 노력이

더욱 인상적이다.


다미앵은 자신이 살던

세계의 문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남성성을 추구하려 한다.


자신의 가슴 털을 제모하고,

짧은 바지도 입는다.


감독은 이를 통해 역사적으로

여성들이 현실에서

어떤 식으로 적응'당해'왔는지를

보여준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때로는 수치스럽다.




존엄성


영화는 다미앵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내는 모습을 통해

해결 방법을 드러낸다.

다미앵의 과거 모습과 똑같은

'알렉산드라'라는 캐릭터를

변화시키면서다.


다미앵은 과거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여자들을 함부로 다뤄왔다.

그러나 그가 '거꾸로 세계'에

온 이후에는 상황이 역전됐다.


알렉산드라라는 많은 남자들을

만나고 다녔으며, 남자 개인에 대해

큰 가치를 두지 않던 인물이었다.


다미앵은 알렉산드라에게 자신의

존엄성을 강조하고 그녀를 변화시킨다.


이런 알렉산드라의 변화는

다르게 생각하면 다미앵

자신의 변화와 같다.

그동안 이성을 가볍게만 생각했던

자신이 변화되는 모습인 것이다.


다미앵은 변화하는 알렉산드라를

사랑하게 되며

프러포즈를 하기도 한다.

거꾸로 세계에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결혼하자는 상황이 예외적일 텐데 말이다.


그러나 영화가 다미앵과

알렉산드라의 이야기를

너무 조명하다 보니

영화의 중심 소재인

'성 역할'과 같은 본질적인 부분에

소홀한 측면도 있다.


남자와 여자의 성 역할 담론을

이끌어내기보다.

바람둥이 남자와 바람둥이 여자의

개인적 측면에 집중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엄성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한 것은 의미 있다.




불편함이 필요해.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장면은

다미앵이 술집에서

성추행을 당하는 장면이다.


술에 취한 다미앵을 성추행하는

여자들은 폭력적이고, 무례하다.


성추행 당한 뒤 좌절을 겪는

다미앵을 모습을 보면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평소 뼈 속까지 와닿지 않았던

상황에 어느 정도

현실감이 생긴 셈이다.


또 마지막 장면도 인상 깊다.

마지막 장면에서 알렉산드라는

다미앵이 살던 현실로 돌아온다.


그러나 놀랍게도 영화 내내

거꾸로 세계를 보다가

현실을 마주하면 무엇인가 불편하다.


짧은 치마를 입고 지나가는 여성들이

눈에 들어오고, 과거 다미앵이

가지고 있었던 '남성성' 또한

눈에 밟힌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에게 이런 불편함을 느껴보라는 게

감독의 메시지인듯싶다.


감독은 바로 이 점을

'코미디'라는 형식으로

무겁지 않게 잘 풀어냈다.



새로운 현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거꾸로 세계가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영화의 주제가 남녀의 성 역할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거꾸로 세계에서도 '유리천장'은

존재했으며 억압받는

남성이 존재했다.


완전한 의미의 성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감독은 존엄성이라는

방법을 제시했다.

억압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남녀 모두가 개인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다.


거꾸로 세계는 일종의 충격요법이다.

나는 이런 영화들이 많이

등장해야 한다고 본다.


예전에 리뷰했던

'가장 따뜻한 색 블루'처럼


여러 문화를 반영할 수 있는

영화 말이다.


이러한 영화들의 등장은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페미니즘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사상적

조류가 제대로 반영되기 위해서는

유연함을 가질 필요가 있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적으로 다가갈 필요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불편함을 심어주었듯,

은연중에 이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백래시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


사실 어떤 방법이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있다.


나도 페미니즘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고,

이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좋은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영화의 결말은

다소 아쉬운 측면이 있다.

다미앵이 살던 세계로 온 알렉산드라는

'가부장제'를 타도하는

집회를 보게 된다.


이 집회의 대부분은 여성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꾸로 세계에서의 남성 연대와 비슷한 무리다.


그러나 다미앵이 무리 속에서

알렉산드라를 찾는다.

남/여가 함께 투쟁해야 한다는

의미의 결말이다.


다시 돌아온 다미앵이 과거와 같이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말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살짝 '동화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조금 더 세련된 결말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글을 마무리하자면 다미앵의 세계와

알렉산드라의 세계 모두가

정답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현실'

필요하다.

이 현실은 닿기 어렵겠지만,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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