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가버나움, Capernaum(2018) >
<본 리뷰는 영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버나움
감독 : 나딘 라바키
출연: 자인 알 라피아,
요르다노스 시프로우
개봉: 2019. 01. 24.
최근 '극한 직업'의 인기가 매섭다.
1500만 명을 넘기고
역대 흥행 순위 2위에 올라섰다.
언론에서는 '코미디'의
반란이라고 소개한다.
힘든 현실 속에서 잠시나마
웃음을 선사해주는 코미디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얘기다.
그 속에 소상공인과
같은 '웃픈' 현실까지
잘 녹여내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반면 조용히 성장하고
있는 영화가 있다.
극한 직업과 달리 웃긴 소재도 아니고
상영관도 많이 없지만 입소문으로
알려지고 있는 영화다.
영화 '가버나움'은 코미디가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현실은
관객들에게 허탈한 웃음을 유발한다.
'케첩 병보다 못한 인생'을 살고 있는
난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초반에 보여주는 현실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담배를 피우고 있고,
주인공인 12살 자인은
'사는 게 개똥 같다'라고 말한다.
그것도 자신을 심문하고 있는
판사 앞에서 말이다.
영화의 예고편에서도 등장하는
'나를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한다'라는 자인의 말은
머리를 띵하게 만들 정도로 강렬하다.
버릇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공감도 잘 안 가는 이 말은
영화가 점차 무르익어갈수록
가슴에 와닿게 된다.
자인이 살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인 가버나움은
성경에 나오는 지명으로
예수님으로부터 멸망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곳이다.
자인이 살고 있는 현실과 '지옥'을
상기시키는 메타포다.
자인이 살고 있는 세계는
지옥이 따로 없다.
자인은 12살 전까지
온갖 일을 다 해보았다.
오전에는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집에 가서는 동생들을 돌본다.
미어터질 것 같은 집안에서
부모님은 '애정행각'을 하기에 바쁘다.
그렇게 생긴 동생들만 해도
여러 명이다.
그들에 대한 보살핌은
온전히 자인의 몫이 된다.
그러다 사건이 터진다.
자인의 여동생 '사하르'가
월경을 하기 시작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축복받아 마땅한
이 자연스러운 성장이
영화에서는 죄악으로 여겨진다.
생리를 하게 되면 다른 곳으로
시집(시집이라고 표현하지만
팔려가는 수준이다.)을
가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인은 동생의
핏자국을 감추려 하고
자신이 일하는 가게에서
생리대를 한 움큼
훔쳐 나온다.
그가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다.
그러나 결국 사하르는
나이 많고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되고, 자인은 그 길로
집을 도망쳐 나온다.
이후 겪게 되는 일들을 다룬 내용이
가버나움의 주요 줄거리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으로만 봐도
12살짜리 자인이 겪는 현실은
끔찍하다.
특히 자인의 실수가 아니라
이 모든 불행이
'출생의 불확정성'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에서
관객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케첩 병에도 이름이 있다"
"아버지가 출생신고
안 했다고 전해라"
이 두 마디 문장으로
자인의 인생을 요약할 수 있다.
자인은 현실에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출생신고되지 않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요나스' 와 그의 엄마
역시 기록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목숨'인
그들은 뭉쳐야만 자신의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다.
자인이 요나스를
자기 동생이라고 소개하고
항상 데리고 다니는 이유기도 하다.
감독은 '이들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자인이 겪은 '출생의 불확정성'에 관한
비극은 영화 속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해 볼 수 있다.
'요나스'가 그랬고, '사하르'가 그랬고,
심지어 무책임하게 동생들을 낳는
자인의 부모님 역시 그랬다.
그들은 모두 스스로 국가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고,
그들이 처한 환경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어느새
주어진 운명 속에
들어와 있을 뿐이었다.
돈 때문에 자신의 딸을
팔아넘겨야 하는
부모의 비통한 심정은
'법정'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그저 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감상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현실을 조금씩 바꿔보자는
움직임을 나타낸다.
'서류'의 보호에서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도
어느 순간 가버나움에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키면서다.
결국 우리 역시 영화 속
'바퀴맨'처럼 늙어갈 거다.
언제까지 서류 뒤에 숨어서
남의 일인 양
방관할 수 없다는 의미다.
결국 '개인적 수혜'에서 그치지 말고
방법을 찾아보자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메시지인 셈이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
'극한 직업' 같은 상업영화도 좋지만
우리나라도 고유한 이야기를
풀어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는
동묘를 방문하고 감명을 받았다고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고 한다.
동묘 아재 패션의 신선함을
보았다는 평이었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거대 담론도 좋지만 작고 소소한
내러티브들이 더욱 주목받는 때다.
대중성도 좋지만,
작고 고요한 이야기들을
담아내는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요즘이다.
오랜만에 재밌는 영화를 봐서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