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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틀리Lightly Sep 27. 2020

멀티 페르소나 3화 - 다시 이곳으로

감정의 파도가 거대해도 나를 집어삼키지 못한다.

     가족들의 이야기는 미처 들려주지 못했네. 응 잘라먹은 듯이 사라진 기억이야.

힘든 시간은 잘 헤쳐 나온 거야? 감정에 압도당해도 나를 집어삼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어.

잘 이겨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게. 응 맞아 잘 이해했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거야? 별 이야기 아니고 비어버린 시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 욌어. 전에 나눈 대화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 응 시간이 길게 흘러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네 신기해.

아직 완결 짓지 못한 대화들이 많구나.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참 많은데 시작을 브런치에서 하고 싶어서 그래.

이곳이 무슨 의미이길래? 생각을 표출하고 정리하고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는 곳이야. 짧은 글로 덧칠해놓은 블로그나 사진이 말하는 인스타그램보다 긴 호흡으로 내 생각을 곱씹을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말글이 얼마나 유려하게 정리되는지 내가 얼마만큼 말을 하는지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아.

그래서 너는 어느 정도인데? 어느 정 도랄 게 없지. 글을 많이 지은 것도 아니라서 한참 모자라.

네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이게 자기 폄하 일지 객관적인 분석인지 유체이탈인지 사춘기인지 모르겠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해. 그래도 글을 짓는 이유는 꾸준하게 쓰다 보면 괜찮은 글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야.

글이 무슨 의미인데?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이야. 말하면 사라지고, 춤추면 못 봐주고, 그리면 난해하고, 노래는 내가 못 불러. 유일하게 칭찬받았던 방식이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한 것이야. 그래서 나는 글에 애매한 감정을 갖고 포기하지 않으려고 계속 이어나가려고 애착을 밀어 넣는 중이지.

의도적으로? 응,  글 아니면 내 생각을 게워낼 수단이 공간이 없으니까, 내가 썩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해. 글이 멀어지는 순간은 내가 썩어갔고, 글을 쓰는 순간이 내가 맑아지는 순간이었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이유는 뭐야? 책을 많이 사기 시작했어. 하나를 진득하게 읽는 성격이 아니고 이것저것 들춰보다가 삘이 오는 책에 날 잡고 읽는 타입이야. 지금이야 내가 핸드폰 중독이라 책을 멀리 하고 있어. 책을 이곳저곳에 배치해두고 매일같이 나를 감시하게 두지만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유튜브만 들여다보지. 마음은 항상 있지만 선뜻 책을 집어 들기까지 시간이 정말 오래 걸리더라고 그래도 책은 읽고 싶다. 게다가 많이 읽고 싶다는 욕심이 차고 넘쳐서,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바로 주문하고 그래.

독립서점에도 몇 번 가봤다며. 응응, 책에 관심이 생기고 몇 작가님의 게정도 팔로우하고 책 읽는 사람의 인스타를 보다 보니 독립서점이라는 종류의 공간을 알게 됐어. 그리고 두 군데에 가봤고, 좋은 기운을 눈에 묻혀 왔어.

그렇게 책을 하나 둘 사모으기 시작한 거구나. 맞아. 책을 사기도 하고 빌려오기도 하고 그러면서. 티 내는 거지.

티 내는 거? 티? 지금 생각하면 책을 읽는구나 티를 내고 싶은 거 아닐까 싶어. 완결지은 책은 없고, 빌려온 책도 대출과 반납을 반복하고 책은 사기만 하고 점점 쌓이고 이러는 게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행동은 아니잖아.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뭔데? 자기 고백하면 달라질까 싶어서. 내가 생각만 하고 찔리기만 하는 것보다 대 놓고 '나 이렇게 살아요'라고 말하면 후련해지기도 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싶네. 부담감은 더 줄었으니까. 소정의 목표를 달성한 것 같다.

이렇게라도 이룬 게 있다는 게 신기하네. 결국 이 글은 내 욕구로 짓는 글이고 나를 위해 짓는 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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