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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틀리Lightly Sep 14. 2019

자살 예방 교육?

해결책도 못되고 미봉책마저 못 되 있있으나마 나시간들, 그리고 해결 방안

   군대에 입대해 생활하다 보면 집중인성교육이라는 것을 한다. 집중+인성+교육? 자살예방교육, 사생관교육, 성교육, 법규 교육 등 다양한 교육을 실시한다. 부대가 훈련도 없고 정비할 것도 없는 한가한 한 주를 겨우 찾아내서 -주말에는 쉬어야지- 평일인 5일 간 집중!적으로 인성!을 교육!한다. 매해 매번 똑같은 부대 간부가 똑같은 PPT자료와 똑같은 구성과 내용을 똑같은 목소리와 어조로 "읽는다." 자살 예방 영상이랍시고 유튜브에서 저화질로 긁어온 자료는 방방 울리는 스피커 탓으로 웅얼대는 소리만 들려오고 화면에는 열변을 토하는 사람과 글자인 것 같은 자막들이 일렁인다. 혹시나 하며 자리에 앉고 역시나 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옆자리의 동기는 지칠 대로 지쳐서 날씨가 더워서 또 추워서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며 녹아내린다. 안타깝게도 교육 시기가 폭염이 내린 여름이거나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이기 때문이다. 그때가 그나마 부대가 여유 있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취지와 시기와 준비가 3박자를 이루면 "맙소사" 탄식이 흘러나온다.


   자살은 피할 수 있습니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 자살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자살은 생명을 살인하는 것 마찬가지입니다. 자살은 윤리적으로 옳지 못합니다. 자살을 생각하기 전에 노력합니다. 자살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자살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자살은 다른 사람도 자살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자살은. 자살은. 자살은. 자살은. 자살은. 자살은. 자살은.

 


  자살 예방 좋지. 근데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자살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 있어? 자살의 이해타산을 따지고 "생각"하기 전에 공감하고 녹아들어서 그 기분을 느껴봤냐고. 자살을 지켜보고 남 말하듯 여기는 입장에서의 "자살하지 마"는 정말, 하나도, 들리지, 않아. 자살을 왜 하는지 알아?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어서?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못 버텨서? 친구가 없어서? 다 그럴듯해 보이고 답도 있겠지만 한마디로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생기면 자살을 생각하는 거야.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커다란 스트레스가 다가오면 어떻게 해소하는 건지도 모르고 보호받을 수도 없던 사람들이 전전긍긍하다가 하나 남은 선택지가 자살인 거야. 남겨진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사회적으로 손실이 발생하고, 비윤리적이라는 둥 별말을 다 들어도 그게 그 순간에 중요할까? 그 순간에 그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자살뿐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던 거야. 자살한 사람들이 도망친 걸까? 가족을 버리는 걸까? 피해를 주는 걸까? 아니. 돌아보니 내게 주어진 선택지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고 가족들에게 적절히 도움을 받지도 못하고 상담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선택지. 그게 자살을 하게 만드는 거야. 더 이상 그들을 모욕하거나 열등하게 생각하지 마.



   자살 예방 교육에서 통계와 캠페인, 사례 설명은 사실 필요하지 않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공감해주고 자살을 생각한 이유에 대해서 들어주고 근본적인 해결을 돕기 위한 어떠한 행위도 "교육"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삶은 소중하고 버티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만 설명해주고 감상에 빠져 신파적인 결론으로 끝을 맺는다. 자살로 내모는 스트레스에 대해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이유와 해결방법에 대해서는 묵인한다.-관심이 없던 것일 수도 있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성과 감성도 있고 사리분별도 가능하고 이런저런 생각도 다 해봤고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노력해왔다. 그러나 본인이 처한 상황 속에서 본인의 역부족을 실감하고 좌절하게 되면 자살이다. 노력으로도 안되고 도움으로도 안되고 하늘이 돕는 천운도 없으니 자살은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문제 해결 수단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자살을 막지 못해서 사회적 손실을 따지기 이전에 자살이 아니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를 만들어 준다면 자살을 그 누가 선택할까. 자살이라는 선택지 옆에 해결이라는 선택지를 만드는 게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이다. 자살하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자리에 앉혀놓는 게 아니라 자살이 아니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눈에 띄게" 제시하는 것이다. 개인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개인을 극한까지 내몰고 도움의 손길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사회가 문제다. 힘든 상태를 알아봐 주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피해 사실이 공개되더라도 2차 피해를 받지 않는다는 안전망이 있어야 자살이 줄어든다. 자살은 교육이 아니라 사회가, 사람이, 당신이, 우리가, 막는다. 교육은 그만하고 내 옆자리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자. 다른 선택지를 만들어 주자.


Photo by Thought Catalo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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