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틀리Lightly Aug 23. 2019

"한 입만 더 먹고 가"

아침마다 엄마는 뭐가 그렇게도 아쉬운지 한입을 기어이 더 먹이고는 했다

   전쟁은 우리에게 정말 익숙한 광경일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전국 각지에서 엄마와 자식 간에 아침밥 전쟁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어나고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지극히 일상적이어서 없으면 서운하기까지 한 그런 일이다. 아침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어서 몸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딱 맞춰서 몸을 일으킨다. 일상적으로 씻고 일상적으로 아침을 거르고 일상적으로 옷을 입고 일상적으로 가방을 챙겨서 현관으로 나가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다.


엄마가 말한다.

"아침밥 먹고 가"


   아침밥이야 조금 일찍 일어나서 먹으면 되는 데 수능 문제보다 어려운 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고 집을 나서는 일이다. 아침밥쯤이야 가볍게 무시하고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하는 나에게 엄마는 심심한 된장국에 보온한 지 20시간이 넘어가는 흰밥을 말아서 골대에 골인하듯이 밀어 넣었다. 다른 날에는 소고기 들어간 미역국에 거뭇거뭇한 쌀이 들어간 보랏빛 찬밥을 뒤적뒤적 비비듯이 말아서 골인을 했다. 가끔 특식이 나오는 날이 있는데 흰쌀밥에 썰어진 파김치를 올리고 조미김으로 싸준다. 못 이기는 척 한 입 두 입 먹으면서 마음이 급해서 머리로는 최단 경로를 검색하고 있다. 어느 하나도 맛이 없지 않아서 더 먹고 싶긴 했지만 나중에도 먹을 수 있고 배가 고프더라고 밖에서 사 먹으면 되니까 그러면 배는 채울 수 있으니까.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엄마가 밀어 넣어준 그 밥 한 숟갈은 적잖이 맛이 좋았다. 멸치 똥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먹기 좋게 찢어 넣은 된장국은 추운 겨울 아침에도 속을 든든하게 채우기에는 제격이었다. 소고기 기름이 둥둥 뜬 뽀얀 미역국은 무슨 마술을 부린 건지 바다내음보다 고소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집을 나서고 한 입 두 입의 여운이 끝나갈 즈음 아쉽게도 생각나는 아침밥이었다. 아침의 전쟁은 언제나 나에게 열세였지만 결국 밥상에 앉아 밥 먹는 날은 적었고 엄마는 밥상에 혼자 앉았다. 엄마는 한 입을 더 먹이고 싶은 마음이 컸겠지만 생각해보면 내심 아침에 얼굴 한번 더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현관이 쾅 닫히고 도어록이 문을 잠그고 집에는 고요함이, 사뭇 다른 고요함이 흘렀다. 적막. 엄마는 부엌의 가스불을 끄고 후드를 끄고 전등을 끄고 침실의 문을 닫고 이불을 덮고 못다 한 잠을 잤다. 엄마가 아침부터 일어날 이유는 원래 없었기 때문에 다시 잠을 잤다. 식탁에는 아직 밥이 말아진 된장국이 따뜻했고 개봉한 지 몇 분 되지 않은 조미김이 바삭했지만 먹는 사람은 없었다. 차갑게 식은 된장국, 습기를 머금어 눅눅해진 김. 엄마는 다시 일어나서 그것들을 먹는다. 마주 앉아서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은 없지만 아무렇지 않게, 일상적으로 밥을 "해치우고" 일상적으로 수저를 모아 넣고 일상적으로 반찬통의 뚜껑을 닫고 일상적으로 냉장고에 쑤셔 넣고 일상적으로 설거지를 한다.


   엄마의 일상 속에는 우리가 없어서 서운하기까지 했을 텐데. 그런 일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어났고 전국 각지의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침밥을 한입이라도 더 먹이려는 엄마의 고군분투는 우리에게 정말 익숙한 광경이다. 하지만 당신의 일상 속에 자식의 자리가 비어있어서 적적했을 엄마의 일상은 낯설다. 엄마는 아침밥보다 자식의 모습을 일상에서 보고 싶었을 텐데. 그걸 이제야 알게 된 것은 해피엔딩일까 새드엔딩일까.


내가 말한다.

"저녁 같이 먹자"


   전쟁의 시간은 끝이 났고 엄마는 혼자서 밥을 먹는 게 익숙해졌을 거다. 늦었지만 엄마의 일상이 아닌 우리의 일상에 엄마를 다시 모셔와야겠다. 그동안 한 입 두입 보고 싶었을 텐데. 우리 엄마. 저녁 같이 먹자.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 작가 신청이 승인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