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공항/수쿰빗 거리(1일)
1.
태국의 방콕 공항에 내려서 터미널 안으로 불과 몇 걸음 떼어놓았을 때 나는 천장에 걸린 안내판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것은 입국자 대합실, 출구, 환승 수속 창구로 가는 길을 안내판이다. 검은색 바탕에, 높이는 1미터, 너비는 8미터 크기에다 디자인은 단순하다. 안에 불을 밝힌 상자 안에 든 플라스틱 간판일 뿐이다. 이 상자는 전선과 환기구들이 거미줄처럼 얽힌 천장에 매달려 있다. 생긴 건 단순하게 생겼는데도, 이 간판은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이 간판을 통해서 이국적 정서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국적 정서는 글자의 특정한 모양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태국 문자를 처음 접하였는데 문자가 아니라 그림 같다고 느꼈다. 어떤 문자는 새의 머리와 모양이 비슷하기도 하고, 어떤 문자는 바람처럼 생겼다. 획마다 각이 진 우리나라 문자와는 달리 거의 모든 것이 곡선으로 이루어진 것에서, 실용성보다는 미학만을 강조하는 듯 보이는 것에서, 다시 한번 여기가 이국임을 알았다.
그 안내판이 나에게 진정한 기쁨을 준다면, 그것은 한편으로는 내가 다른 곳에 도착했다는 첫 번째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도 확연히 구별할 수 있듯이 한국의 안내판은 절대 그런 식으로 생기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파란색 바탕에, 그 바탕 안에 쓰인 글자 모양은 획마다 철저하게 각이 졌을 것이고, 복잡해 보일 정도로 다양한 외국어(한자, 일본어, 영어)가 병기 되어 있을 것이고, 모든 글자가 띄어쓰기 없이 붙어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태국 안내판의 글자 사이에 어떠한 여분의 공간도 없는 것에서 나는 다른 역사, 다른 사고방식의 존재를 체감하며 혼란을 경험한다.
플러그 소켓, 욕실의 수도꼭지, 잼을 담는 병, 공항의 안내판은 디자이너가 의도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줄 수 있다. 심지어 그것을 만든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 방콕 공항의 안내판을 만든 나라는 한국과는 아주 다른 나라인 것 같다. 민족의 특성을 연구하는 대담한 고고학자라면 특이하게 생긴 글자를 보면서 불교가 태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1), 띄어쓰기가 없이 모든 문자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면서 태국이 오랫동안 외국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존재했던 나라라는 것을 알 것이다(2).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오직 영어만을 병기한 안내판은 태국이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서양문명과 활발하게 교류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또 다른 증거이다. 특이 이 문자는 같은 모양이라 하더라도 어떤 억양으로 읽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이것을 성조라고 하는데, 태국어에 성조가 생긴 까닭은 따듯한 기후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오랫동안 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3)
(1)태국어의 모양은 산스크리트어에 연원을 둔다. 산스크리트어는 불교와 함께 전파되었다.
(2)띄어쓰기는 라틴어에서 비롯된, 서양 문명의 산물이다.
(3)학자들은 성조가 노래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고, 과거의 태국 문명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것으로 본다. 또한 학자들은 습한 날씨가 목을 촉촉하게 젖게 만들어 탄력있는 목소리를 만든다고 보았다.
두 장소에서 안내판과 그것을 읽는 방식이 다르게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하지만 유쾌한 생각을 입증해준다. 나라는 다양하고, 국경을 넘어가면 관행은 변한다는 것, 그러나 차이만으로는 기쁨을 얻을 수 없다. 적어도 오랜 시간의 기쁨은 그 차이가 한국에서 얻을 수 있는 것 보다 더 나아보여야 한다. 내가 방콕 공항의 안내판을 이국적으로 느낀 것은 이 안내판으로부터 그것을 만든 나라, 새머리 모양의 글자 너머에 있는 나라가 한국보다 내 기질과 관심에 더 맞을 것이라는 암시, 모호하지만 강력한 암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여행의 기술>을 쓴 알랭 드 보통 또한 이국적인 것을 갈망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네덜란드에서 느꼈다. 그가 네덜란드를 이국적이라고 느꼈던 이유는 사소한 데에 있었다. 그는 똑같은 아파트 건물들이 줄 지어 선 어느 거리에서 현관문 앞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갑자기 그곳에서 남은 생을 보내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다. 그가 그 아파트 건물에 끌렸던 이유는 그 것물이 수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편안하기는 하지만 웅장하지 않은 그 건물은 네덜란드가 경제적 중용을 강조하는 사회임을 암시했다. 네덜란드를 추억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국적이라는 말을 좀 더 일시적이고 사소한 맥락에서 생각한다면, 외국에서 만나는 장소의 매력은 새로움과 변화라는 단순한 관념으로부터 나온다. 예를 들어 고향이라면 말이 있을 법한 곳에 낙타가 있다거나, 고향이라면 기둥을 세운 아파트 건물이 있을만한 곳에 장식이 없는 아파트 건물이 있다거나. 그러나 좀 더 심오한 기쁨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외국의 요소들이 새롭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이나 신조에 좀 더 충실하게 들어맞기 때문에 귀중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은 고향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암스테르담에서 내가 열광한 것은 그런 경우였다. 그것은 영국에 대한 나의 불만과 관련되어 있었다...
우리가 외국에서 이국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고향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2.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탄 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나와 L을 깨운 택시기사는 여기가 스쿰빗 11 거리이며, 숙소에 거의 다 도착했으니 그만 일어나라고 했다. 졸린 눈을 떠 바깥을 살피니, 우리가 탄 택시는 무질서한 혼돈의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차도는 전조등을 킨 차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인도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 밝힌 술집들로 인해 온 거리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부나비 떼처럼 빛을 쫓아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거리는 온통 흥분에 젖어 있는 듯 했다. 기쁨에 들떠있는 사람들의 함성과 환호 소리가 차 안까지 들리는 가운데, 나는 길가에 나앉아 있는 젊은 여성들과 아이들도 볼 수 있었다. 그 옆으로는 잡다한 물건이나 음식을 팔고 있는 노점상들이 보였다. 그야말로 다양한 계층과 연령, 직업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 뒤섞여 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배치되어 있어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난 듯 한 거리풍경은 잠시 동안 나로 하여금 세계에 속한 모든 것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였다. 자유분방함이 도시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그곳은 호텔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였기에 나와 L은 그냥 차에서 내려 걸어가기로 했다. 차문을 열자,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음성과 거리의 소음이 생생하게 들려왔다. 거리 곳곳에서 노점상들이 파는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걸어가는 동안, 높게 솟아 반짝이고 있는 호텔 간판이 칠흑의 광대한 하늘과 기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 거리를 걷는 이들은 나와 같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백인, 흑인, 동남아인 등 다양한 인종과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키가 큰 백인 남성, 아이 손을 잡고 가는 흑인 여성, 햇볕에 그을린 올리브 빛 피부를 가진 아시아 여자들을 한 곳에서 보니, 내 눈이 현란했다. 귀와 코와 눈을 비롯한 모든 감각을 자극하는 이곳은 생명력으로 진동하는 곳이었다.
한국의 모습은 이와 사뭇 다르다. 밤 10시가 넘어가면 내가 사는 동네를 밝히는 불은 다 꺼지고, 거리는 한산해진다.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정해진 시간에 자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을 사람들은 중요하게 여긴다. 사람들은 시간을 철저하게 분할해서 계획한다. 밤늦게도 거리를 활보하는 방콕 시민들이 본다면 기함을 할 일이다.
또한 근대화 이후의 한국은 모든 공간이 철저하게 구획되어 있다. 일하는 공간, 공부하는 공간, 노는 공간, 커피 마시는 공간, 수다 떠는 공간이 철저하게 나눠져 있다. 얼마 전에 우리 동네의 집 값 비싼 아파트에서 노숙자들이 벤치에서 자는 것을 막기 위해 벤치 구조를 일부러 앉기 불편하게 바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최근에 지인들과 종각역 근처에서 술을 먹게 되었는데 청계천 근방에 수많은 포장마차가 몰려있는 것을 보았다. 길가에서 노점상이나 포장마차가 장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 때문이다. 또 카페는 커피 마시는 공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에 따라 스타벅스는 전자기기를 충전시키기 위한 콘센트를 없애고 있다. 노숙자는 서울역에만 몰려 있어야 하고, 포장마차는 일정 장소에서만 장사를 해야 하고, 컴퓨터는 일정 장소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암묵의 규칙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질서정연함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도시적 삶이 우리의 자유를 질식 시키고 있지는 않을까?
한국의 무채색 거리를 걷다보면 어느 순간 그 삭막함에 움츠러들 때가 있다. 회색빛깔 거리의 모습은 항상 똑같으며 음울하기 짝이 없다. 이 거리에서 사람들은 무언가에 쫓기듯이 산다. 그래서일까.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역시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일상에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사람들은 항상 어딘가로 향하지만, 자발적인 발걸음이 아니다. 직장인들은 의무적으로 회사에 가고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학교에 간다. 해야 해서 하는 것이지 정말 즐거워서 하는 것은 없다. 이런 사람들은 일상의 감각에 점점 무뎌지며, 즐거움으로 충만한 삶을 살지 못한다.
그러나 그 날 방콕 거리의 환한 조명 아래에서 밝게 빛나는 태국 사람들의 얼굴은 무척 즐거워보였다. 그들은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고 활기에 차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풍요로워 보였다. 물론 방콕 거리에 대한 나의 첫인상을 태국이라는 나라 전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그날의 내 느낌은 그랬다는 것이다.
방콕에서 내가 열광한 것은 한국에 대한 나의 불만과 관련되어 있었다. 과도한 질서정연함의 추구, 도시적 삶에 대한 저항, 벤치구조를 부러 불편하게 만드는 심리에 대한 불만. 확실히 한국에는 없고 방콕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혼돈과 자유분방함과 노점상들로부터 나오는 이국정서. 진동하는 생명력. 어쩌면 이곳이야말로 정말 나와 맞는 곳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태국이라는 나라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