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서평
책의 저자 이타루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30이 넘도록 취직을 하지 못하다가 그나마 들어간 회사에서도 나와야만 했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에도 불편해하는 성격 탓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아버지의 권유로 자본론을 일독하게 되었고, 자신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시스템(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자본론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창업일기에 가까운 책이다. 그러나 보통의 창업일기와는 또 다르다. 빵집을 차리기 전, 자신의 30년생을 자본론이라는 책을 거울삼아 들여다보는 것이 이 책의 독특한 특징이다. 그러면서 자본론의 논리로 자신이 몸담았던 자본주의 시스템을 분석하고 한계와 결점을 지적한다. 결점이 있는 시스템을 허물었으면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 새로운 시스템을 구성하는 원리를 저자는 자연의 지혜에서 찾았다. 빵집을 차리고 난 뒤, 빵을 만들면서 균이 발효하는 원리를 빵집경영에 도입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골빵집 다루마리가 탄생했다.
자본가가 이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상품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의 임금을 최대한으로 낮춰야 한다. 이러한 이윤 극대화의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1000원어치의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500원의 임금밖에 지불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이는 분명 부당한 대우이지만, 노동자는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본가에게 고용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있다. 생계를 꾸릴 독자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순응해 소비되는 부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상품이 되어 계속해서 착취당하는 노동자는 복잡한 제작 공정 속에서 작은 일부만을 차지하는 단조로운 일만 반복하며 생산하는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라는 개념이다.
그러나 시골빵집의 제빵사들은 이러한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나있다. 이들은 엄선한 재료를 사용해 정성과 수고를 들여 빵을 제대로 만든다. 이스트도 첨가물도 섞지 않고, 아무리 어렵더라도 천연효모를 발생시켜 정성껏 빵을 만든다. 빵을 만들기까지의 모든 제작 공정을 담당하고 거기에 대해 책임지기 때문에, 단조로운 일만 반복하는 기계부품처럼 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좋은 빵을 생산해내고 그것에 정당한 가격을 붙여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때문에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 제빵사들은 기술과 감성을 연마하여 임금을 높게 유지하면 되기 때문에 생활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인건비와 재료비가 각각 매출의 40%이며, 주 3일을 쉬기 때문에 정신과 육체가 지치지 않고 충분히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절대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는다. 다만, 이윤도 추구하지 않는 것이 시골빵집이 돌아가는 방식이다.
마르크스로부터 자본주의가 가진 병폐를 배웠다면,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철학(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은 자연으로부터 배운 거나 마찬가지이다. 이윤을 끝없이 추구하는 자본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잉여 자본으로 사업을 더 키우고 더 많은 이윤을 얻고자 한다. 노동자를 착취한 대가로 얻은 자본을 다시 사업에 투입해 사업을 키우는 것이 돈이 증식하는 방식이자 자본주의 경제가 커가는 방식이다. 그렇게 GDP가 상승하고 주가가 오르지만 축소될 줄 모르고 커지기만 하는 경제는 거품을 낳고 그 거품이 터져 공황(대불황)이 찾아오는 것이다. 형태가 있는 물질은 언젠가 스러져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계의 거스르기 어려운 법칙임에도 불구하고, 돈만은 애초에 그 법칙에서 벗어나 한없이 몸집을 불리는 특수한 성질을 가진다. 그런 부자연스러움이 대공황과 같은 사회에 다양한 문제를 초래하는 것이다. 작용이 커지면 반작용도 커지는 것이고 이윤을 추구하는 힘이 커지면 그에 따른 희생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균은 부패하고 사라지면서 빵이라는 결과물을 내놓는다. 또한 균은 다양한 종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며 조화를 모색한다. 이 두 가지 특성을 가진 부패작용이 빵을 만들어내는 주요한 원리이다. 저자는 이러한 자연시스템을 경영시스템에 적용한 것이다. 우선,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균의 부패에 상응한다. 애초에 돈이 새끼를 치고 증식하는 가능성을 원천봉쇄한 것이다. 또한 외부에서 싼 값을 주고 대량으로 사들이는 방식 대신, 지역 농가에서 ‘자연 재배 쌀’을 사들임으로서 지역 농업과 함께 공존하는 경영을 모색한다. 더불어 사는 경제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모두 빵 속에 사는 균(자연)이 가르쳐준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시스템 밖을 나와 독자적으로 구축한 방식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휩쓸리지는 않을까? 그 답 또한 자연이 가르쳐주었다. “자기 안에 있는 힘으로 자라고, 강한 생명력을 가진 작물은 발효를 하게 된다. 생명력이 강한 것들은 균에 의해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명력을 유지하여 생명을 키우는 힘을 그대로 남겨둔다. 그래서 식품으로서도 적합하다. 반대로 외부에서 비료를 받아 억지로 살이 오른, 생명력이 부족한 것들은 부패로 방향을 잡는다.” 경영도 마찬가지이다. 외부의 돈을 빌려와 자기 경제를 운용하는 것은 남의 힘에 빚을 지는 것이며 스스로의 힘을 약화시키는 길이다. 저자는 수년의 수련 시절을 거쳐 자신의 기술과 힘을 연마했고, 발품을 팔아 개업에 필요한 돈을 스스로 모았다. 그렇게 해서 독자적인 생산수단을 손에 넣고 기존의 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히려 이 시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생산수단을 각자의 생산수단을 가지는 길이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거라고 본다.” 그렇게 하면 자본가가 가하는 착취로부터 노동자가 독립할 수 있다. 자영업자 수가 늘어나는 것이 자본주의의 병폐를 조금이나마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정보의 수집과 발신을 자유롭게 만들었고, 이것이 자영업자들의 큰 무기가 된다고 한다. 소셜미디어는 자영업자들에게 용기를 주며 힘을 솟게 해주는 것이다. 실제로 소셜미디어의 발전으로 시장이 변하고 자본구조가 변하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플랫폼이 발달하고 있으며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비용이 낮아지고 있으며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키는 네트워크가 발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함으로서 거래과정이 보다 투명해지고 대자본이 개입할 여지가 조금은 줄어든다.
나는 ‘시골빵집’의 방식에 대해서는 약간 회의적이었다. 저자의 방식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따라할 수 있는 실천적 대안이라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골빵집의 총 매출은 2억원 가까이 되는데 재료비와 인건비를 제외한 순이익은 4000만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많지 않은 돈인데 이윤을 늘리려 하지 않는다. 반면에 경쟁업체들은 잉여자본을 계속 재투자해 사업의 규모를 늘려나간다. 시장은 커지고 경쟁자들의 이윤은 계속 커지는데 제자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모두 이윤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저자의 철학에서 기인하는데,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면 도대체 가게를 운영하는 목적은 무엇이며, 이윤이 없다면 도대체 둘이나 되는 아이는 어떻게 키울 것이며, 노후 대비는 어떻게 할 것이며, 만약 부부 중에 누구 하나 크게 아프기라도 하면 그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는 것이다. 몇몇 실천가들과 사상가들이 자연의 지혜를 인간 사회에 이식하려는 시도를 했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는 했다. 자연의 방식과 인간의 방식을 일치시키려는 시도는 데이빗 소로의 <월든> 실험과 같이 개인적 삶의 체험에 머물러야 했다. 그만큼 인간 사회에서 자연의 방식을 실현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로 내게는 다가온다.
그렇지만 새로운 방식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혁명들이 그랬듯, 어디에도 없었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마르크스주의는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시도들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풀뿌리 경제나 지역경제, 소상공인 조합 등이 그 예일 것이다. 이것은 대체로 그 중에서도 ‘시골빵집’은 스타트를 끊은 선두주자로서 기운을 북돋아주는 응원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실낱같은 가능성이 아직 우리에게는 남아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