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은 귀족과 부서진 망치(수정)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프리드리히 니체

by 이슬빛

*독서모임 피드백 후 수정(괴테와 니체 공통점 부분 추가) 수정부분은 밑줄로 표시


니체와 괴테. 이 두 독일인이 평생을 천착했던 문제는 놀랍게도 일치한다. 바로 인간의 심연, 우리가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것 속에 도대체 뭐가 들어있나, 하는 것이었다.


니체의 주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화두도 무의식 속의 욕망과 그 극복의 문제였다. 괴테의 파우스트도 거의 같은 맥락이다. 괴테는 처절할 정도로 잘근잘근 인간의 욕망을 추시하면서 인간 ‘구원’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그 출구를 타진한다. 허무주의자이자 물신주의자인 메피스토는 인간에게 구원의 가능성은 없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괴테가 보기에 “나에게 인간은 그와 비견될 만한 것이 없는 유쾌하고 용기있고 창의적인 동물이다. 이 동물은 어떤 미궁에 있어도 여전히 가야 할 올바른 길을 찾아낸다.” 니체도 비슷하게 말한다. “나에게 인간은 지상에서 그와비견될 만한 것이 없는 유쾌하고 용기 있고 창의적인 동물이다. 이 동물은 어떤 미궁에 있어도 여전히 가야할 올바른 길을 찾아낸다. 지상(대지), 유쾌함, 용기, 창의, 동물이란 단어는 니체 철학의 핵심이 된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가 영혼을 걸고 계약을 맺은 후 브로켄 산에서 광란의 밤을 보냈던 발푸르기스 밤‘ 그곳은 인간 욕망의 적나라한 현장이었다. 산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인간의 욕망 그 깊숙이 들어간 것이다. <파우스트>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인간의 무의식 속에서 들끓어 오르는 욕망과 충동을 극복하고 인간이 동물에서 초인으로 이르는 자기극복의 과정을 끈질기게 추적한 기록이다. 무의식 속 야생의 들개를 극복하고 창공에서 자유로이 노래하고 춤추는 새로 태어나라는 것이다. 예컨대 관능에 의한 타락이 아니라 관능의 ’순진무구한 추구‘를 말하고 있다.


괴테와 니체는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으며 같은 문제에 천착했다. 하지만 둘이 걸어온 삶의 궤적은 둘이 남긴 생각의 흔적만큼이나 다르다. 이는 결국 비슷한 문제에서 출발한 이 둘로 하여금 다른 결론, 다른 해석을 이끌어내게 하였다. 결국 사상, 삶에 대한 태도, 생의 최후까지도 이 둘은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마치 천사와 악마를 보는 듯하다. 독일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이 두 사람일 정도로 유명하고, 세상 사람들이 숭상하는 두 사람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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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간관계를 중시한 괴테와 인간관계를 경시한 니체


평생을 사람들에 둘러싸여 지냈던 괴테와는 달리(괴테의 저작을 읽은 나폴레옹과 괴테가 담소를 나눴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니체는 인생을 고독 속에서 홀로 보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니체는 고독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비극은 모노드라마처럼 짧게 펼쳐진다. 그렇기에 그의 비극은 삶이라는 짧은 무대장치 위에 자신의 형상만을 올려놓는다. 눈사태처럼 무너져 내리는 그 모든 행위들에는 고독하게 홀로 싸우는 니체가 있다. 어느 누구도 그의 곁에 다가서거나, 그와 마주치지 않는다. 어떤 여인도 그와 함께 머물며 긴장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다독이지 않는다. 모든 운동은 오로지 그로부터 시작되어 그에게로 되돌아온다.” (슈테판 츠바이크, 니체를 쓰다)


니체는 자신의 비판적 사고의 날카로움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사람을 멀리했다고 한다. 자유로운 정신의 비상을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가벼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관습이건 관습적인 사람들이건 그것들로부터 탈피해야 했다. 니체가 사람들을 경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이런 니체에게 경계심을 느껴 니체를 멀리했다고 한다.


“처음에 그의 그늘 속에서 등장하던 몇몇 인물들은 놀람과 경악의 손짓만으로도 그의 영웅적 모험을 따라가다가 점차 험악한 뭔가를 접하듯 뒤로 물러나 버린다. 어떤 유아독존의 인간도 이 숙명의 내적 원환으로는 감히 접근하지 못한다. 니체만이 혼자 말하고 투쟁하며, 언제나 자기 자신만을 위해 고뇌한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으며, 어느 누구도 그에게 대답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아무도 무서운 이야기를 그에게서 경청하려 하지 않는다. 나폴레옹을 비롯한 고위대작들과 교류하며 말년까지 풍요로운 생활을 유지하며 삶을 마감한 괴테와는 대비되는 니체만의 드라마이다. 니체의 비극은 배우들이나 상대역, 청중도 없이 그 자신의 영웅비극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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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험을 피하는 괴테와 위험으로 뛰어드는 니체


슈테판 츠바이크를 필두로 한 전기 작가들은 괴테가 위험을 기가 막히게 피할 줄 알았다고 평한다. 이는 특히 그의 여성 편력에서 잘 드러난다. 괴테는 각 시기마다 항상 이상적인 여성을 만났던 행운의 사나이였다. 그러나 상황이 변하면, 그 여성을 떠나 다른 이상적인 여성을 찾아 도피여행을 벌이는 것이 그의 일생이기도 했다. 자신의 보다 높은 비약을 위해서 매번 그 여성을 버렸던 것이다. 위대한 시인을 탄생시키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하지만 도덕적으로는 그가 나중에까지 비난받게 된 동기가 되었으며, 자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괴테가 쓴 작품에는 이러한 여성들을 찬양하거나 본인의 잘못을 반성하는 경향이 드러나는데, 이는 자책의 심정을 덜어내기 위한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괴테는 위험과 불편함을 일부러 멀리했지만, 니체는 이러한 위험과 불편함으로 뛰어들었다고 평가된다.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자신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며 위험한 사유실험을 감행했다. 26세의 젊은 나이에 얻은 명예와 부가 보장된 교수직도 자신의 사고가 더 높이 도약하는 것을 위해 스스로 관뒀다. 자신의 삶이 위험해지고 불편해질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가 그렇게 했던 것은 위험과 불편함 속에서 인간은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위험을 극복할 때 인간은 고양될 것이라고, 한 단계 높이 도약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던 것 같다.


괴테의 문학작품이 괴테 자신의 삶과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고, 니체의 철학이 니체 자신의 삶과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리라. 괴테도 정열과 폭발의 시기(질풍노도라고 번역되는 슈트름 운트 드랑)가 있었으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그러한 괴테의 감정곡선을 그대로 따라간다. 젊은 시절 현란했던 그의 여성편력은 그대로 그의 작품 속에 반영되었고 특히<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잘 드러난다. 그러나 괴테의 청춘 시대였던 질풍노도(슈트름 운트 드랑)의 폭풍 같은 폭발적인 힘은 온순함과 우아함을 되찾고, 낭만의 자유분방함은 양식적인 균형미로 회귀한다. 낡은 정신을 부수고 새로운 정신을 추구하려는 탈주의 시도는 위험을 피해 도피하려하고, 안정지향적인 괴테의 성향 때문에 다른 이름의 낡은 양식으로 고착화된다. 안정과 질서속의 변화를 추구했던 괴테에게는 여행의 목적도 정착이자 안주였다.


그러나 니체는 ‘자아 탐구에 너무 몰두하지 말고, 오히려 자아를 망각해버리고 지금 하고 있는 활동에 집중하면 자신도 모르게 자아를 만들어내고 발견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따라서 니체는 혼란스럽고 미지의 것을 탐험하는 모험 자체를 긍정했다. 여행은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집을 버리고, 새롭게 발견한 곳에서 새로운 거처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새로운 거처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게 될 때, 니체는 그 집은 과감하게 부숴버리고 더 나은 곳을 찾아 또 새로운 여행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삶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학문을 대하는 자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니체는 자신을 하나의 학문이나 사상에 고정시키지 않는다. “철학자란 논증을 사용하고, 다 썼으면 버려야”한다.


“사상가에게는 단 하나의 인격체로 묶여있는 것은 불리하다.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면, 그는 때때로 자신을 잊으려고 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다시 자신을 찾으려고 해야 한다.”그의 본질은 지속적인 변전, 자기상실을 통한 자기인식, 요컨대 영원한 생성이며, 결코 경직된 채 쉬고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존재하는 그대여, 변화하라’는 말은 따라서 그의 모든 글에 관통하는 삶의 명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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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안위를 추구한 괴테와 진리를 추구한 니체


괴테에게는 스스로의 안위가 너무 중요했다. 반면에 니체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일이 있더라도 진리를 찾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더 중요했다. 괴테는 안위를 위해 여자로부터 달아나고 갈등상황으로부터 회피했던 반면에, 니체는 죽을 때까지 자신을 괴롭혔던 병과 타협하거나 병으로부터 도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병을 관찰하고 병을 관리하고자 그 병에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이었다.


“끊임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신경쇠약이 극에 달해 절망에 빠진 채 자포자기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니체에게서는 섬광처럼 번뜩이는 자기인식과 자기구원, ‘극복’의 자세가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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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과거를 복원한 괴테와 미래에 도취된 니체


괴테에게는 과거와 전통이 중요했다. 따라서 과거 그리스 로마 문명의 찬란함을 복원하는 데에 전력을 다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호메로스의 천재성을 동경하고 <일리아스>에 영감을 받아 쓰였다. 하지만 니체는 과거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며 과거를 극복하고 더 나은 새로운 미래를 열망하고 동경했다. 과거가 아무리 찬란하고 아름답더라도 니체에게 과거는 이미 흘러가 버린 것이기에, 현재와는 단절되어야 하는 것, 부정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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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독일을 사랑한 괴테와 독일을 경멸한 니체


괴테와 니체는 같은 독일인이었지만, 괴테는 ‘독일적인 것’을 최고의 미덕이나 가치로 숭상했고, 니체에게 ‘독일적인 것’은 소화불량을 일으켰다. 괴테는 독일의 긍정적인 면을 많이 보고 그것과 안정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했다. 괴테가 말년에 완성한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는 이상적인 독일 시민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괴테는 독일의 긍정적인 면을 많이 보았기에 시대와 사회의 정신에 잘 부합해서 큰 성공을 얻을 수 있었다. 그의 나이 33세에 그는 황제 요제프 2세로부터 귀족 칭호를 선사받았다.


니체는 반대였다. 그에게는 독일의 부정적인 면, 독일이 갖고 있는 난점만이 보였고, 니체에게 독일은 너무 답답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애썼다.


“예컨대 바그너의 <명가수들>에서는 장식적이고 바로크적인 면, 가볍게 즐기기에는 무겁고 답답한 것을 느꼈다. 쇼펜하우어에게서는 암담함을, 칸트에게서는 뭔가 국가도덕의 뒷맛을 풍기는 위선을 느꼈다. 그런가 하면 괴테의 경우에는 관직을 가진 사람의 근엄함, 꽉 막힌 지평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제국’과 독일의 이념을 힘의 논리에 희생시킨 그 모든 자들에 대한 증오심도 니체에게서 나타났다. 그뿐만이 아니라 속물적인 독일과 승리의 기둥을 자랑하는 베를린에 대한 혐오감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니 독일인들도 그에게 적대적이었을 것이고 니체도 끝까지 독일을 싫어했던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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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현실의 벽에 대한 니체와 괴테의 태도


니체에게 있어 괴테는 너무 음울해보였을 것이다. 운명에 굴복하여 내내 슬픔에 잠겨 있다가 스스로 생을 포기해버린 베르테르를 니체가 긍정할 수 있었을까? 니체는 ‘베르테르의 슬픔’에 반해 운명을 긍정하고 삶의 생동감, 밝음을 긍정했다. 인간은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고 명쾌함을 추구해야 한다. 현실의 벽이 가로막아도 그것을 의지를 통해 돌파해야 한다고 본 니체와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인간의 한계를 부각시킨 괴테가 대비된다.


“니체의 언어는 아름답고 힘차게 비약하면서도, 확고하게 음향을 내며 뛰어오르고, 그러면서도 유연하고 발랄하게 온갖 방법을 사용하여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런 언어는 독일인처럼 무감동하고 딱딱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인처럼 온갖 제스터를 다 동원하여 부드럽게 묘사하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품위를 갖추고 당당하게 검은 연미복을 입은 독일어가 더 이상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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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나이를 따라간 괴테와 나이에 역류한 니체


괴테는 자연스럽게 늙어갔다. 나이에 따라 하는 생각들을 그대로 따라갔다. 중년이 되어서는 매사에 신중하게 행동했으며 노년기에는 사려 깊고 통찰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리드미컬한 사고는 그때그때 삶의 단계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했다. 초기에는 (청년기에는) 역시 무질서한 측면을 보여주었고, 결국에는 (노년기에는) 확고하게 질서를 찾았다. 그는 초기에는 혁명적이었다가 점차 보수적으로 바뀌었고, 서정적이었다가 과학적으로, 과도한 면모를 보였다가 갈수록 자기를 보전할 줄 아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니체는 반대였다. 괴테가 나이가 들수록 점차 안정과 연대를 추구했다면 니체는 그러한 것들을 점점 더 부정하는 길로 나아갔다. 광적인 인간들이 그렇듯이 니체는 나이가 들수록 뜨겁고 성급하고 혁명적이고 무질서하게 변해갔다.


“40세가 되자 그의 언어와 생각, 그의 본질은 17세와 청춘기보다 더 혈기 넘치는 육체와 색깔, 대담성과 열정, 음악에 대한 감수성을 갖게 되었다. 실스마리아에 홀로 은거하여 살던 니체는 24세의 조로했던 교수보다 더 가볍고 자유로운 보폭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이렇게 니체의 경우 삶의 감정은 진정되기보다는 오히려 강렬해졌다. 그의 변화는 점점 더 빠르고, 자유롭고 비약적이고, 다양하고, 탄력적인 동시에 끈질기면서도 냉소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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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평화롭게 잠든 괴테와 광기 속에서 몰락한 니체


1889년 1월 3일, 비바람이 몰아치는 이탈리아 토리노의 겨울날, 니체는 창문으로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을 내다보고 있었다. 한 마부가 말을 때리고 있었다. 이것을 본 니체는 맨발로 뛰어나가 말을 가로막고, 말에게 동정심을 느끼면서 광기의 발작을 일으킨다. 이것이 니체가 정신적 암흑으로 떨어진 계기였다. 기독교적인 도덕과 가치관을 전면으로 부정한 니체는 인간이 아닌 짐승에게까지도 동정심을 느끼는 무한한 성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정심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철학자가 동정심으로 허물어지는 이 반전의 장면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니체의 삶은 그 자체가 고통이었다. 그 이후 정신적 암흑기에 접어들면서 니체의 비극적인 모노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1823년 괴테 나이 74에 괴테 숭배자 에커만이 찾아와 조수가 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후에 에커만은 <만년의 괴테와의 대화>로 일약 문단의 총아가 되었다. 그 후 괴테는 <파우스트>를 완성하고 영광의 정점에 다다른 후 이듬해 3월 22일에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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