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코난 도일의 원작 <셜록 홈즈 시리즈>를 각색한 2014년판 BBC <셜록>이 인기를 끌었다는 것을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두 번째 <네 사람의 서명>은 BBC 드라마로 각색되면서 제목이 <세 사람의 서명>으로 바뀌었으며, 그에 따라 플롯과 캐릭터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변화들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서,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가 달라졌으며, 그에 따라 우리가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영웅의 모습 또한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원작과 드라마 사이에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원작과 드라마는 달라진 두 시대를 어떻게 담아내고 있을까?
먼저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캐릭터의 변화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과거의 셜록 홈즈는 천재적인 통찰력과 뛰어난 신체능력(그는 프로 권투선수를 능가하는 권투실력을 가졌다)을 가진 완벽에 가까운 인물로 묘사된다. 소설에서, 그는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며, 모든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전지전능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그려지는가? <셜록>의 홈즈는 극 중 대사에서 직접적으로 자신을 고기능(high-functioning) 소시오패스라고 당당하게 공인한다. 극중 상대가 셜록을 사이코패스라고 칭하자 '난 사이코패스가 아니야, 소시오패스지.'라는 식으로 맞받아치기도 한다. 실제 작중에서도 홈즈는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결여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상대방의 약점이나 치부를 서슴없이 폭로하는 모습이나, 죽어가는 범인의 상처를 발로 밟으면서 배후를 대라고 고문하는 등의 모습이 그러하다. “현대 정신병리학으로 분류하면 확실히 소시오패스적 기질을 갖고있다”고 한다.
또한 모든 것을 관찰하고 이성의 영역에서만 생각하는 그의 특성은 굳이 그런 추론능력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 적용되어 웃긴 해프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여자들에게 누가 그녀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려준다든가 누가 성기능장애를 갖고 있는지 파악해서 알려준다든가 하는 것이 그렇다.
과거의 셜록 홈즈가 이상화된 영웅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현대판 셜록 홈즈는 결함이 넘치는 인간적인 매력을 철철 뿜어낸다. 그는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낮아 항상 애를 먹으며, 이를 이러한 곤경에 처한 홈즈를 왓슨이 구해주는 구도가 반복되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더 이상 사람들은 완벽한 영웅의 모습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실수를 인정할 때, 인간적으로 보인다. 동시에, 완벽함의 가면을 쓰고 자신을 보호하는 인물보다 엉망인 걸 인정하는 인물이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결함은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으며, 드라마는 이 점을 잘 활용하고 있다. 우리는 결함이 있는 영웅을 사랑한다. 결함보다 완벽함의 요소가 많다면, 사람들은 이 작중인물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고 자연스레 멀어진다. 자신과 비슷한, 동류의 사람이 영웅적으로 행동한다면 사람들은 그에게 더 친숙함과 애정을 느낄 것이다. 완벽함은 지루하다. 인간적인 것이 흥미롭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과거 영웅들의 무용담은 무척이나 흥미롭기는 하지만, 현대사회의 기준으로 봤을 때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어 쉽게 공감하기가 힘들다. 하나같이 엄청난 괴력에 인간성도 좋고,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는 영웅들과 원작 셜록 홈즈는 크게 다르지 않다.
영웅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현대의 영웅상과 과거의 영웅상이 차이를 보이는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영웅을 만들어내려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에 영웅을 만듦으로서 얻어내려는 효과와 오늘날에 영웅을 만들어냄으로서 얻으려는 효과가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과거의 영웅신화는 특정 국가의 애국심을 고취한다든지, 자랑스러운 전통과 역사를 대변하는 도구이자 프로파간다로 사용되었다. 그렇기에 이상화되고 완벽한 영웅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달라졌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영웅이 복원됨으로서, 영웅은 많은 사랑과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존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때문에 영웅의 완벽함보다는 그가 갖춘 매력이 영웅신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왓슨도 달라지다.
과거의 <셜록 홈즈>에서 왓슨은 셜록 홈즈를 빛내기 위한 부수적인 도구에 가까웠다. 그는 셜록 홈즈에게서 한 수 배우는 제자였으며, 그의 추론을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이야기의 부수적인 존재였다. 그dhk 셜록 홈즈가 나누는 대화 또한 서사의 전개를 촉진시킨다기 보다는 홈즈 생각과 사고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친절한 장치에 불과한 것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현대극 <셜록>에서 셜록 홈즈의 결함이 부각됨으로서, 왓슨의 위치가 그만큼 상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왓슨이 완벽한 셜록 홈즈에게 한 수 배우는 제자로 그려졌다면, 현대극에서는 왓슨이 훨씬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특히 사건에 몰두한 나머지 관련된 사람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셜록의 면모를 단호하게 지적하며 충고하고, 살인 사건을 게임이라 부르는 태도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러한 왓슨의 면모 때문에 오히려 셜록의 결점이 부각되기도 한다. <셜록>에서 그는 사건 현장 수사에 단독으로 참가하기도 하여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도 한다. 특히 위기상황에서 더욱 침착해지며 놀라울 정도로 강단있는 모습을 보이는데, 드라마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피해자를 살리기 위해 홈즈를 포함한 주변인물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모습은 그의 캐릭터가 훨씬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해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악역도 달라지다.
드라마 셜록 <세 사람의 서명>에서는 오리엔탈리즘의 투영되었던 악역인 ‘통가’가 삭제되고, 그 자리를 베인브릿지 사병이 대체한다. 베인브릿지 사병 또한 유색인종이지만, 통가와는 정반대의 특징을 갖고 있다. 원작에서 통가가 키 작은 난쟁이였다면, 베인브릿지는 키가 크고 멋진 풍모를 가지고 있다. 또한 통가가 범인을 살해하는 악역이자 범죄자였다면, 베인브릿지는 범죄에 의해 안타깝게 희생되는 피해자로 등장한다. 통가가 영국에 대한 동양의 위협을 상징하였면, 반대로 베인브릿지 사병은 영국을 수호하는 근위병이다. 이러한 변화와 각색은 드라마가 동양인과 유색인종에 투영된 편견과 왜곡을 최대한 제거하려고 노력한 흔적이며, 정치적 올바름을 의식한 결과로 보여진다.
<네 사람의 서명>은 왜 <세 사람의 서명>으로 바뀌었을까?
원래 <네 사람의 서명>은 소설 속 악인 조나단 스몰과 세명의 무슬림들이 보물을 둘러싸고 했던 맹세를 의미한다. 이들은 한 상인에게서 보물을 갈취하고, 그 상인을 죽인 뒤에 그 비밀을 죽을 때까지 지키자고 맹세를 한다. 그런데 이 <네 사람의 서명>은 BBC 드라마로 각색되면서, <세 사람의 서명>으로 제목이 바뀐다. 소설의 플롯도 바뀌었는데, 이에 따라 이들이 한 '서명'이 의미하는 바도 바뀌게 된다. 이때 <세 사람의 서명>에서, 세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된 메리와 왓슨 그리고 그 두 사람의 아이이다. 보물을 둘러싸고 했던 사나이들의 도원결의가 일종의 결혼서약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런 각색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단순한 패러디일까? <네 사람의 서명>은 부와 황금을 둘러싼 맹세이다. 이러한 맹세는 당대의 제국주의와 물질주의의 산물이다. 부를 둘러싸고 맹세를 했다는 사실은 부가 그만큼 중요했다는 것이다. 부는 당시에 많은 것을 의미했는데, 모험, 용기, 지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황금을 둘러싸고 맹세가 필요했다는 것은 부의 분배에 관해서 사회적인 합의가 정립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네 사람의 서명>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영국의 취약점을 은근히 들춰내고 있는 것이다.
이랬던 <네 사람의 서명>이 가정을 위한 맹세로 바뀌었다는 것은 그만큼 화목한 가정이 중요한 가치로 대두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황금의 자리를 이제는 가족이 대체한다. 그만큼 가정은 소중하고 지켜내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관념이 우리 머릿 속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동시에, 가정을 화목하게 유지하는 것이 그만큼 힘들어진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홈즈는 이렇게 말한다. '내 앞에서 서명했으니, 내가 이제 너희를 쭉 지켜볼거야.' 서명을 맺고 그것을 간직해야 할만큼 현대사회에서 가정은 취약해진 것이다. 이는 서구사회의 많은 이혼가정과 노인 문제, 조기출산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드라마 속에서 홈즈의 집주인 허드슨 부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장면만 보아도 이는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사랑하지도 않았으면서 그녀의 남편과 결혼한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히 성적인 만족을 위한 것이었지만 결혼을 해서 후회했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 살인을 저지름으로서 그녀의 가정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네 사람의 서명>과 <세 사람의 서명>을 통해서 영국사회가 안고있었던 불안과 취약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결국 소설을 읽는 핵심은 그 맥락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소설 속에 감춰진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들여다볼 때, 소설이 감춰놓은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를 파헤칠 때, 소설의 진면목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