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박태원·구본웅·김기림·김형안·김환기
1월 19일 제61기 경영자 독서모임 MBS 프로그램이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에서 진행됐다. MBS는 매주 월요일 저녁, 경영의 해법과 새로운 통찰을 원하는 경영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독서모임으로 지난 30년간 누적 회원 수 국내 최대 7,500명을 기록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오프라인 독서모임 MBS에서는 지식의 향연이 펼쳐지며 경영·경제·사회·문화·고전·지역테마 등 각 분야의 저자들에게 직접 강연을 듣고 질문하며, 혼자서는 얻을 수 없는 깊은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도서 선정 시 각계 심사위원단의 엄정한 평가를 거쳐 해당 연도에 필요한 도서를 선정함으로써 현재 트렌드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트렌드까지 가늠할 수 있어 조직에 필요로 하는 오피니언 리더로서 성장할 수 있는 도약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제61기 경영자 독서모임 MBS 프로그램 열여덟번째 강연자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자 ‘살롱 드 경성1’ 김인혜 저자가 강연을 펼쳤다. 김인혜 저자는 미술사가이자 2023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근대미술팀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아시아 리얼리즘’(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2010) ‘아시아 큐비즘’(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2005) 등의 전시를 공동기획하며 중국과 일본은 물론, 아시아 여러 나라의 역사와 미술에 관심을 가졌으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 작가의 아카이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는 업무를 기획해 과천관 미술연구센터 및 서울관 디지털정보실의 개설 업무를 맡았다.
이를 토대로 이중섭, 유영국, 윤형근, 박현기 개인전 및 ‘유영국, 절대와 자유’(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2016),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2021) ‘Yun Hyong-keun’(베니스 포르투니 미술관, 2019)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살롱 드 경성’(2023)을 집필하고 ‘Interpreting Modernism in Korean Art’(2022) ‘The Space Between: The Modern in Korean Art’(2022) ‘Yoo Youngkuk: Quintessence’(2020) 등을 공동집필했다. 2022년 월간미술대상, 2023년 정진기언론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김인혜 저자는 이상의 이야기부터 전했다. 그는 “이상은 사실 문학가로만 알려져 있지만, 본래 꿈은 화가였다. 경성고등공업학교에서 공부했고, 아주 어릴 때 큰아버지 집에 양자로 들어간다. 가정을 일으켜야 하는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자립해야 했고, 그래서 미술반에서 석고 데생도 하고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다 자신의 자화상으로 조선총독부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을 했다. 벽면에 걸린 그림이 누렇게 보여서 당시 사람들이 ‘황달 걸린 이상이냐?’고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 그림은 지금은 원본이 사라졌다”라고 전했다.
이상 주변엔 예술가 친구가 많았는데 그중 대표적인 친구가 화가 구본웅이다. 구본웅의 작품 중 ‘인형이 있는 정물’이 지금 삼성미술관 리움에 있다. 여성 목각 인형이 탁자에 놓여 있는 그림인데, 그 시절 서로가 얼마나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보여준다.
김인혜 저자는 “그때 ‘다방’이라는 공간도 되게 중요했다. 요즘 카페 개념일 수도 있는데 그 안에서 음악회도 열리고, 미술 전시도 하고, 문화인들이 모여 새로운 감각을 나누는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특히 제비다방은 이상과 박태원이 만나게 된 장소다. 이상의 글 중 유명한 소설 ‘날개’도 보면 내용뿐 아니라 표지, 장정 다 본인이 직접 했다. 문학을 쓰면서도 끝까지 화가의 꿈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종이 배치를 일부러 삐뚤거나 이상하게 만드는 등 글과 이미지를 하나의 작품으로 취급하는 실험도 많이 했다. 그래서 그의 삽화를 보면 글인지 그림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이상과 동시대 친구 박태원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유명한데, 이 사람이 소설을 연재하면서 ‘삽화는 꼭 이상이 그려야 한다’고 요구할 정도로 이상의 시각적 감각을 인정했다.
김인혜 저자는 “재밌는 점은, 보통 삽화가라면 인물을 그냥 스케치하듯 그릴 텐데 이상은 ‘단어를 수집’하듯 이미지 요소를 배치했다. 즉, 문학과 미술을 섞는 실험을 엄청 많이 한 것이다. 그 외에도 ‘조선과 건축’ 표지 디자인 ‘중성’ 표지, 김기림 시집 ‘기상도’ 장정 등 여러 출판물의 편집과 디자인을 맡았다. 특히 ‘기상도’는 검은 표지에 은빛 선이 감겨 있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제목 글자가 커지는 기법이 들어간 당시로선 매우 혁신적인 작업이었다”라고 전했다.
이상은 문학가이기도 했지만 미술 애호가, 실험 디자이너, 영화광, 음악 매니아까지 진짜 전방위 예술가였다. 그는 ‘현대인은 어떤 시대든 본질적으로 절망한다’고 말했는데 본인이 바로 그 모순 속에서 살았던 인물 같다.
박태원 역시 화가가 되고 싶어 했고 자기 연재 소설에 삽화도 직접 그렸다. 심지어 삽화 구도가 영화 카메라처럼 벌써 탑숏(위에서 내려다보기), 클로즈업 같은 기법을 쓰기 시작했다. 그 시대 문인들이 얼마나 새로운 감각을 빨리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다. 박태원의 친구의 딸의 아들이 바로 봉준호 감독이다.
이상–박태원의 감각적 실험의 뿌리가 오늘날 한국 영화까지 이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박태원의 결혼식 방명록에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 이상, 구본웅, 이승만, 정지용, 김기림, 이태준 등등 무려 23명이 글을 남겼다. 정치, 미술, 문학이 한자리에 모인 1930년대 조선 문화계의 네트워크가 보이는 순간이다.
다음으로 김인혜 저자는 구본웅, 김기림 이야기를 전했다.
구본웅은 몸 자체에 선천적인 척추 장애가 있어서 등이 많이 굽어 있었다. 요즘 같으면 치료나 교정이 가능했겠지만, 그 시절엔 그냥 체형이 굳어지는 것이다.
김인혜 저자는 “당시 미술 한다고 하면 대부분 집안의 반대가 기본값이었는데, 구본웅은 달랐다. 집이 굉장히 부자였고 공부도 잘했는데, 몸 때문에 좋은 학교를 못 가게 됐다. 그래서 부모님은 ‘하고 싶은 걸 해라’라는 식으로 자유를 줘서 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구본웅에게는 또 하나의 상처가 있었다. 어머니가 구본웅을 낳다가 세상을 떠났고, 새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유모가 키웠다는 기록도 있다. 겉으로 봐선 부족할 것 없는 환경인데, 감정적으로는 결핍이 있었던 것이다”라고 전했다.
구본웅 아버지가 인쇄소 사업을 했는데 인쇄소가 출판도 겸하면서 잡지를 찍어내니까 팔리지 않는 잡지가 남는데 그걸 구본웅이 떼다가 자기가 책을 만들었다. 구본웅과 이상과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이상이 스물일곱에 요절했는데 그에 대해 구본웅이 여러 글을 남겼다.
김인혜 저자는 “둘이 같이 다니는 모습이 진짜 희대의 조합이었다고 한다. 흰 얼굴에 까치집 머리, 수염 북슬북슬, 흰 구두를 신은 이상과 작은 키에 바닥에 질질 끌리는 인버네스 코트를 입은 구본웅. 사람들이 ‘곡마단 행차 같았다’고 부를 정도로 묘하게 어울렸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상을 취직시켜준 것도 구본웅이다. 이상은 폐결핵 때문에 건강이 안 좋아서 학교 졸업하자마자 취직해도 오래 버티지 못했는데 구본웅이 그린 이상 초상화를 보면 뭔가 예민하고, 날카롭고, 불안해 보이는데 그게 그냥 우울하게 그린 게 아니라 이상 내면의 고독과 절망을 읽어낸 거라고 볼 수 있다.
구본웅은 일본에서 그림을 배웠지만 정통 아카데미식 그림보다 자기 방식, 내면 표현에 치중했다. 여성 인물화도 굉장히 강렬하다. 보통 그 시대 여인상을 그리면 부드럽고 단아하게 그렸는데 구본웅은 빨강-초록 같은 강한 색 대비를 쓰고 여성의 원형적인 힘을 보여주는 이미지로 표현했다. 거의 원시적 에너지에 가까운 느낌이다.
그런 파격 때문에 욕도 많이 먹었다. 구본웅 아들 이야기에 따르면 집에 걸린 그림이 무서워서했을 정도로 강렬한 이미지였다. 그때 구본웅을 감싸준 사람이 바로 시인 김기림이다. 조선일보에 실린 글에서 김기림은 구본웅에 대해 “이 열악한 환경에서 저 정도 경지를 개척한 구본웅의 열정에 탄복한다. 조선 화단의 아카데미즘이 돌을 던져도 구본웅은 우리 미술계의 최좌익이다. 고독 속에 영광이 있으라.”라고 말한다.
끝으로 김인혜 저자는 김형안, 김환기 이야기를 전했다.
김형안은 본래 이름이 변동림, 바로 시인 이상(김해경)의 부인이다. 이상의 시 오감도도 해석했던 만큼 똑똑하고 글 잘 쓰는 여성이었다. 구본웅과도 연결이 된다. 구본웅의 아이들을 변동림이 과외해 줄 정도였다. 그리고 변동림의 오빠, 변동욱이라는 사람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바로 낭랑파의 음악 선곡자였다.
제비다방이 망해서 이상이 낭랑파로 넘어가고 그 자리에서 변동림을 만난다. 소개해준 사람도 변동림의 오빠 변동옥, 이상 친구이기도 했다. 둘은 단 2주만에 연애 후 결혼한다. 그리고 서로 그 2주 동안을 수필로 남겼는데 진짜 영화 같다.
이상은 변동림에 대해 “이 여인은 내 마음의 잃어버린 제목이다. 잠시 걸어 두는 못입니다.”라고 쓰며 변동림 수필에도 이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만큼 둘은 정말 서로에게 빠져 있었다.
이상은 1936년 6월 결혼, 10월 일본 도쿄행, 1937년 2월 구금, 4월 사망을 하며 짧고 비극적인 생을 살게 된다. 도쿄에서 조선인을 탄압하던 시기라 이상은 “말 안 듣는 조선인”으로 찍힌다. 그는 “언어 12개를 배워오겠다”고 떠났지만 한 달 만에 병원행, 그리고 숨이 멎었다. 죽기 직전 그는 ’메론이 먹고 싶다’는 말을 하자 변동림이 구해다 준 일화는 유명한 이야기다. 그 순간에도 이상은 실험적인 시를 쓰고 있었다.
이상과 비슷한 시기, 김환기도 도쿄에서 활동 중이었다. 초현실주의 그림을 그리던 시기였다. 이상이 죽고 변동림이 장례식에 오고 그 자리에 김환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두 사람은 재혼하게 된다. 이때 변동림은 이름을 김형안으로 바꾼다. 김환기의 인생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준 인물이 된 것이다.
김환기는 “내 그림이 세계 어디에 있는가”를 평생 고민한 사람으로 도쿄의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에서 길진섭, 김병기 등 한국인 화가들과 일본 현대미술 최전선을 함께 경험한다.
그는 프랑스를 가고 싶었지만 2차대전 때문에 막힌다. 그는 “회화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도 없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즉, 인생 = 그림이었던 사람이다.
김환기의 미술 여정을 보면 도코 시절, 귀국 후 40~50년대, 파리 시기, 뉴욕 시기& 점화 4가지로 나누어 진다. 도쿄 시절 그는 초현실주의, 전위 예술 영향, 낭만주의 부정,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귀국 후 40~50년대 전쟁, 혼돈, 정체성 고민이 있었다. 이 당시 성북동에서 김형안과 자리 잡았고 조선적인 것 + 서양미술의 접점을 모색한다. 돌담, 한옥, 도자기, 민화적 감성 활용,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며 단순화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파리 시기땐 김형안이 먼저 파리행을 하고 불어 사전 들고 피난 가는 일화가 유명하다. 혼자 미술사 공부, 전시 준비 다 세팅한다. 김환기가 합류하며 본격 세계 진출한다.
김환기는 파리에서 한국적 소재를 연구하고 흰색, 파랑 중심의 색을 사용한다. 또한 질감 두껍게 올리는 기법을 사용해 “세계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을 한국미”를 알린다.
뉴욕 시기 & 점화때 그는 전면 추상 전성기, 점을 찍는 점화 시리즈를 완성한다. 캔버스에서 한지처럼 번지게 만드는 연구하며 이것이 김환기의 완성된 세계다.
그리고 지금, 한국 미술가 중 경매가 1위가 바로 김환기다.
김형안의 역할은 단순히 김환기의 아내가 아니라 수필가로 이름을 남긴 문인이다. 또한 김환기의 작품 세계를 정리하고 기록하고 파리에서 네트워크를 깔아준 인물이다. 김환기가 전세계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한다.
한마디로 ‘김환기의 2인자가 아니라, 김환기를 만든 1인자 역할’을 했다.
끝으로 김인혜 저자는 “그 시대 사람들은 뭔가 처음 하는 것들, 전에 없던 새로운 걸 계속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서로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같이 성장한다. 오늘 우리가 이야기한 김형안, 김환기, 이상뿐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까지 한데 모여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도 하나의 조각일 뿐이다. 더 많은 인물과 더 많은 사건이 있었고 그걸 정리한 책이 바로 ‘살롱 드 경성’이다. 그리고 그 책이 꽤 인기를 끌면서 2편까지 나왔다. 그 이후 확장된 인물들의 이야기까지 담겨 있다. 지금 그들이 남긴 작품 대부분은 미술관에 다 들어가 있다. 김환기 작품만 봐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걸려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보면 그 시대 작가들의 작품과 고민이 정말 잘 정리돼 있다. 계속 관심 갖고 찾아보다 보면 우리 삶도 새로운 페이지가 열릴지 모른다. 그때 그 시대의 창작자들과 우리 일상이 생각보다 멀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라며 강의를 마쳤다.
한편, 제61기 경영자 독서모임 MBS 프로그램은 매주 월요일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