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 본관 2층에서 5차 니오메커니즘 연구회가 진행됐다. 본 연구회에서는 aSSIST 석좌교수이자 메커니즘경영학회 백권호 회장이 ‘연구영역으로서의 메커니즘에 대한 회고와 전망: AI Platform 시대를 위한 대비-메커니즘은 어디쯤에 와 있는가?’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이날 발표에서 백권호 회장은 “AI 시대에 이론이 이론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결국 수식화가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론이 수식화된다는 것은 검증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며, 더 나아가 예측 가능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메커니즘 이론을 수학적 모델로 발전시키려는 시도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백권호 회장은 메커니즘 연구를 시작하게 된 개인적 배경도 함께 언급했다. 그는 석사 과정 시절 은사인 조동성 교수의 지도 아래 연구를 시작한 이후 평생 메커니즘 연구를 이어왔다고 회고하며 “지금의 내가 된 것의 대부분은 스승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자로서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최근 출간된 ‘제4원소’를 정독했고, 그 책에서 제시된 메커니즘 연구를 이론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하나의 의미 있는 기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책에서 언급된 ‘제5원소’의 가능성에 대해 자신만의 해석을 제시했다. 백권호 회장은 “21세기 메커니즘 연구의 제5원소는 철학적으로 보면 ‘사랑’일 수도 있다”며 사회과학 이론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와 인간적 의미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이날 발표의 핵심은 메커니즘 연구를 하나의 독립적인 학문 영역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이론적 확장 가능성에 있었다. 백권호 회장은 먼저 사회학과 과학철학 분야에서 진행되어 온 메커니즘 연구를 소개했다. 그는 분석사회학 분야에서 피터 헤드스트롬과 리처드 스베드버그 등이 제시한 ‘소셜 메커니즘(Social Mechanisms)’ 개념을 언급하며 “사회현상을 블랙박스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해야 한다는 연구 흐름이 이미 국제 학계에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과학철학 분야에서는 마리오 붕게(Mario Bunge) 등이 메커니즘 기반 설명을 제시했고, 이후 ‘뉴 메커니즘(New Mechanism)’으로 불리는 연구 흐름이 등장했다는 점도 함께 소개했다. 그는 “여러 학문 분야에서 메커니즘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분석 틀로 자리 잡고 있다”며 경영학 역시 이러한 흐름과 적극적으로 연결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백권호 회장은 특히 AI 시대가 메커니즘 연구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이론은 단순한 인과관계 설명에 머물렀지만 현실 세계는 훨씬 복잡한 메커니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며 “AI와 빅데이터의 발전으로 이러한 복잡한 관계를 분석하고 검증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메커니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모델로 SER 구조를 제시했다. SER 모델은 주체(Subject), 환경(Environment), 자원(Resource)의 세 요소가 상호작용하면서 가치를 창출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틀이다. 여기에 구조(structure)와 결합 논리(combination logic)가 더해지면 조직이나 기업의 성과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권호 회장은 이 모델을 실제 기업 사례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AI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의 경우 주체(S)는 CEO의 전략적 판단, 환경(E)은 AI 수요 확대와 기술 변화, 자원(R)은 GPU 기술과 플랫폼 역량으로 볼 수 있으며, 이 세 요소가 결합하면서 강력한 플랫폼 구조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요소들을 가중치와 순서(sequence)를 포함한 함수 형태로 표현하면 메커니즘을 수식적으로 설명할 가능성이 열린다”고 말했다. 특히 메커니즘에서 요소들의 결합 순서가 중요한데, 순서가 잘못되면 충분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도 기업이 실패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기업 내부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전략뿐 아니라 지배구조와 기업 문화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 회장은 “기업에는 전략 메커니즘, 지배구조 메커니즘, 그리고 조직 문화 메커니즘이라는 세 가지 축이 존재한다”며 ESG 관점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발표 후반부에서는 메커니즘 연구의 철학적 배경에 대한 언급도 이어졌다. 그는 계몽주의 시대 이후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기본 방식이 메커니즘적 사고였으며,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세계관 역시 이러한 흐름과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동양 철학의 ‘정·기·신(精氣神)’ 개념을 기업 조직에 비유하며 지배구조, 전략, 문화라는 세 요소와 연결해 설명하기도 했다.
백권호 회장은 이번 연구가 AI와의 협업을 통해 발전한 과정도 공개했다. 그는 “약 25일 동안 구글 제미나이와 지속적으로 대화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며 “AI와 인간이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연구 방법이 가능해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AI 시대에서 인간의 역할이 메커니즘 설계자로 변화할 가능성을 강조했다. 백 회장은 “앞으로 인간은 단순한 작업자가 아니라 메커니즘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며 “AI 알고리즘 역시 하나의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고 통제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블랙박스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설명 가능한 AI(XAI) 기술과 인과 분석 접근이 등장하면서 알고리즘 내부 작동 원리를 분석하려는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백권호 회장은 메커니즘 연구의 향후 방향에 대해 “현재 메커니즘 기반 관점은 하나의 접근 방식 또는 프레임워크에 가깝지만, 정량적 검증과 예측 모델이 결합된다면 독립적인 이론 영역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분석사회학과 경영학의 메커니즘 연구를 결합하는 시도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권호 회장은 “AI 플랫폼 시대에는 메커니즘이 더 이상 블랙박스에 머물지 않고 드러나는 시대가 될 것”이라며 “메커니즘 연구가 앞으로 중요한 학문 영역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한편, aSSIST 교수진을 주축으로 설립된 메커니즘경영학회는 경영의 주체(Subject), 환경(Environment), 자원(Resource) 그리고 이를 연결하고 아우르는 근본 원리 메커니즘(Mechanism)을 중심으로 기업 경영을 분석하는 연구자들의 모임으로 운영됐으며 서울대학교에서 2014년까지 10여년간 진행하다가 중단되었던 ‘메커니즘 연구회’가 ‘니오메커니즘 연구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