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부를 위해선 올바른 이익을 추구해야

한국 여성 최초로 사회장이 거행된 백선행

by 이예지

지난 6월 16일 제60기 경영자 독서모임 MBS 프로그램이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에서 진행됐다. MBS는 매주 월요일 저녁, 경영의 해법과 새로운 통찰을 원하는 경영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독서 모임으로 지난 30년간 누적 회원 수 국내 최대 7,500명을 기록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오프라인 독서 모임 MBS에서는 지식의 향연이 펼쳐지며 경영·경제·사회·문화·고전·지역 테마 등 각 분야의 저자들에게 직접 강연을 듣고 질문하며, 혼자서는 얻을 수 없는 깊은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도서 선정 시 각계 심사위원단의 엄정한 평가를 거쳐 해당 연도에 필요한 도서를 선정함으로써 현재 트렌드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트렌드까지 가늠할 수 있어 조직에 필요로 하는 오피니언 리더로서 성장할 수 있는 도약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제60기 경영자 독서모임 MBS 프로그램 열네 번째 강연자로 ‘조선의 부자들’ 저자이자 성균관대학교 김준태 초빙교수가 강연을 펼쳤다. 강연에 앞서 한국승강대학교 배영한 특임교수가 저자 소개를 진행했다.

10336_10750_456.jpg 한국승강대학교 배영한 특임교수가 저자 소개를 하고 있다.

김준태 교수는 성균관대학교에서 한국철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같은 대학교 유학동양학과 초빙교수로 있다. ‘이코노미스트’와 경기일보의 필진으로 활동했으며 ‘동아비즈니스리뷰 DBR’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KMOOC, 현대경제연구원 CreativeTV, 전통문화연구회 사이버서원 등 온라인 강의 플랫폼에서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공자가 AI 시대를 산다면’, ‘왕이 절박하게 묻고 신하가 목숨 걸고 답하다’, ‘왕의 경영’, ‘탁월한 조정자들’, ‘다시는 신을 부르지 마옵소서’, ‘마흔, 역사와 만날 시간’, ‘왕의 공부’, ‘조선의 위기 대응 노트’ 등 총 12권의 책을 저술했다.


김준태 교수는 자공이 돈을 번 행위에 대해 ‘논어’가 어떠한 역할들을 했는지 설명하며 “자공은 사고팔기를 잘해 시세의 변동에 따라 물건을 회전시켰다. 그는 남의 좋은 점을 칭찬하길 좋아했지만 남의 잘못을 감출 줄도 몰랐다. 자공에 관해서 여러 평이 있었지만 결국 그는 올바른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 대해선 크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유상은 유교적 소양을 가진 사람으로 유교 근본이념을 제시해준 공자에게 있어 이익은 덕이 근본이고 제는 말단으로, 추구해도 된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다. 이익을 보거든 이익을 생각하고 이익을 추구해도 된다는 결론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교적인 이익관에 입각해 부를 추구했던 상인들의 사례들을 들었다.


호설암은 청나라 상인이었으며 ‘장사의 신’으로 불렸다. 그는 성실을 강조하고 이익을 포기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약품을 무료로 보급해 사재를 털어 백성 구휼에 나섰다. 하지만 그는 권력과 결탁해 정경유착이 심해 몰락했다. 그럼에도 지금도 그가 ‘장사의 신’으로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이로운 이익, 돈을 모으면 이웃들을 위해 나눠줄 줄 알았기 때문이다.

10336_10751_4526.jpg ‘조선의 부자들’ 저자이자 성균관대학교 김준태 초빙교수가 강연 중이다.

홍콩 리자청 회장의 좌우명은 ‘의롭지 못한 부귀는 뜬구름과 같다’이다. 이 좌우명은 논어에 나오는 대목으로, 그는 대규모 사회 환원 및 사회 기여 활동을 하며 정도 경영, 윤리 경영, 인간 경영을 실천해 높은 곳을 택해 평탄한 것을 가고, 관대한 것을 향해 행했다. 그는 “선비는 마음가짐이 넓고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유교적 경영을 실천했다.


일본 이사다 바이간은 오사카 상인의 시작이다.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고, 하늘이 세상 만물을 살아가는 뜻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제업, 즉 수행, 자신의 업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곧 수행이며 상업이 곧 수련의 장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상인의 자긍심을 높였다.


김준태 교수는 “모든 만물이 하늘로부터 순수하고 선한 성품을 부여받는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품, 즉 인간이 가진 기질을 바로잡는 것은 학자들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각자 누구나의 삶 속에서 가능하다. 상인에게는 상업이 곧 수련의 장이며,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이다. 정직한 이익을 정당하게 이익을 세상에 돌려주며 공동체를 위한 상도를 추구했다. 가치를 통한 이익 창출, 도를 바탕으로 한 상업을 오래전부터 주장했다”고 전하며 일본과 한국 상인들의 사례를 들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일본 기업의 아버지, 금융왕, 일본 현대 문명의 창시자다. 작년 7월에 일본 화폐들이 시부사와 에이이치로 바뀌었을 정도로 그는 일본 조세, 화폐, 은행 제도를 확립했다. 500여 개 기업과 대학을 설립해 관여했다. 그는 주자학을 비판하고 논어와 주판(일본 부흥의 원동력), 도의와 책임을 핵심 가치로 삼았다. 그는 현실과 상업을 나타내는 주판으로 도덕과 상업을 겸비해야 일본이 부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그는 일본 부흥의 원동력이 됐으며, 의리합일로 축적한 부를 정당하게 사용하는 것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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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젊은 시절 공자의 논어를 배운 것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고 이야기하며 “어떻게 하면 바른 판단을 내려 회사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를 늘 고민했다. 김준태 교수는 이나모리 가즈오가 쓴 ‘1155일간의 투쟁’ 책을 추천하며 “이 책에서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기발한 시스템을 말하진 않는다. 당연한 말을 했고 강조하고 의견을 나눴는데 이게 기업을 바꾸었다. 뻔한 이야기가 실제 효과를 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부자들에게는 유교적인 올바름을 추구하는 모습이 드러나진 않는다. 한국의 기업가들에게 유교적인 모습은 보국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삼성 기업 이념이 사업 보국이었다. 1세대 기업인들의 특징은 국익을 위한 충애 정신이라는 특징을 볼 수 있으며, 국익을 위한 충애 정신이라는 측면에선 유교적인데 올바른 이익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은 본인의 자서전에 “평생에 자신을 완성하는 데 의미 있는 책은 논어”라고 말했다. 1세대 경영의 특징은 국가, 공동체에 대한 충이라고 설명되며 특징은 집요함과 끈기, 위기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김준태 교수는 집요함과 끈기에 최창학, 위기 대응에 김만일, 김세만, 임상옥의 사례를 들었으며 미래를 예측하는 안목으로 백달원, 김기덕, 최남을 들었다. 욕망을 사로잡는 마케팅에선 이경봉, 신뢰 자본으로는 한순계, 이승훈의 사례를 들었다.


이어 ‘어떻게 부를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사례로 경주 최부잣집과 윤선도 사례를 들었다. 경주 최부잣집은 12대 부를 이었다. 1천 석을 가지고 농업, 잔업을 통해 부를 점점 키워갔다. 최 씨 가문은 조선조 최진립이 가문인 경주 최씨 가문이 17세기 초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약 300년간 부를 이어왔으며, 12대로 대대손손 가훈을 지켜가며 부를 쌓았고 나그네나 거지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고 밥을 먹여주는 선행을 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진립은 임진왜란 때 참전하고, 정유재란 때에도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위도총부도사, 공조참판, 삼도수군통제사 등의 관직을 지냈다. 공으로써 부를 쌓은 최진립은 아들 최동량을 교육시켜, 최동량이 최부잣집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최동량은 많은 재산을 물려받고 큰 땅을 구입했다. 산부터 강까지 이르는 큰 땅을 산 후, 여기 전체에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아들 최국선은 둑을 세우고 옆에서 도우며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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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량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땅을 쓰고 싶어 하면, 소작료를 수확한 곡식의 반만 받고 중간 관리자인 마름도 두지 않았다. 마름은 중간에서 소작료가 일꾼과 땅주인에게 잘 교류되는지 검사관 역할을 맡았으나, 중간에서 소작료를 빼돌렸기 때문에 마름이 없는 것이 안전했다. 이런 방식으로 최동량은 일꾼을 모아 그 큰 땅을 모두 일구었다. 농사는 성공적이었고, 거름을 쓰는 시비법과 모내기를 하는 이앙법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수확량을 크게 늘렸다. 경주 최부잣집은 “과거를 보되 전사 이상은 하지 마라, 재산을 만 석 이상 모으지 마라, 흉년에 재산을 늘리지 마라,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조언들을 했다.


윤선도는 조선의 의금부 금부도사 겸 통덕랑 등을 지낸 조선 시대 중기, 후기의 시인·문신·작가·정치인이자 음악가이다. 본관은 해남, 자는 약이이고, 호는 고산 또는 해옹이다. 시호는 충헌이다. 예빈시부정 윤유심의 아들이며, 강원도관찰사 윤유기의 양자이다. 화가 공재 윤두서의 증조부이며 다산 정약용의 외5대조부이다.


정철, 박인로, 송순과 함께 조선 시조시가의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히며, 오우가와 유배지에서 지은 시 ‘어부사시사’로 유명하다. 풍수지리에도 능하여 ‘홍재전서’에는 제2의 무학이라는 별칭이 등재되기도 했고, 의사로 민간요법에 관련된 저서인 ‘약화제’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필요 이상을 취하지 마라, 삼가는 마음이 태만함을 이기게 하라,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라, 가난한 사람은 줄여 주고 넉넉한 사람도 더 받지 마라”는 조언을 했다.


김근행은 1627년(인조 5년) 왜학 역관 취재에 합격하여 관직은 사역원교회를 거쳐 자헌대부 지중추에 이르렀다. 1630년대부터 대마도에 파견되는 문위행의 통역관으로 다녀왔고, 1643년과 1655년에는 통신사의 수행원으로 일본 본토를 다녀왔으며, 1663년에는 직접 문위행에 임명되어 대마도를 다녀왔다.


그는 자신의 부를 자랑하지 않고 일부러 질이 낮은 관대와 관복, 호패, 패도 등을 사용했다. 인조때부터 현종 대까지 대마도와 일본과의 무역 활동, 훈련도감과 병조의 부탁으로 여러 번 화약과 유황, 조총 등을 반입해 오면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 또한 고리대금을 하여 막대한 차익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1676년의 부산 초량왜관 신축공사에 투입된 일본인과 대마도인 목수들의 임금을 지급할 수 없자, 단기 고리대금으로 이자를 남겨 그 이자로 목수들의 임금을 지급했다.


왜학 역관으로 있으면서 일본과의 교역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여 한양의 이름 있는 갑부의 한 사람이 되었으나 검소히 행동해 현명하기로도 이름났다.


변승업은 조선 후기 사역원 소속 일본어 역관이다. 1645년(인조 23) 식년시 역과에 2등으로 합격하여 관직은 가의대부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장현과 김근행과 함께 조선 후기를 대표한 대거부 역관 중 한 명이다. 자는 선행이고, 본관은 초계이다. 희빈 장씨의 외가 친척이자 인척 관계도 맺고 있다.


이어 김준태 교수는 조선의 부자들 중 반면교사로 민영휘, 김갑순의 예시를 들었으며 조선의 부자들의 사례들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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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행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사회적 기업가이자 한국 여성 최초로 사회장이 거행된 인물이다. 백선행은 7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16세에 시집간 지 8개월 만에 남편과 사별을 하게 된다. 이후 그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온갖 고생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어머니가 죽고 상주를 맡긴 조카가 백선행의 재산을 강탈했지만 절망을 딛고 다시 돈을 모았고, 이익이 발생할 때마다 땅을 사들였다.


이후 백선행은 시멘트를 사용한 서양식 건축물이 늘어나는 것을 보며 시멘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을 예측해 양질의 석회암이 대규모로 묻혀 있는 평양 만달산 일대의 땅을 대거 매입한다.


석회암 산지를 일본인 오노다에게 비싼 값에 매매해 10배 차익을 내며 한반도 최초의 시멘트 공장인 ‘오노다 시멘트’를 설립한다.


백선행의 남다른 안목과 과감한 투자 덕분에 일약 평양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의 반열에 오른다. 이후 사회사업가로 변모해 숭현여학교, 창덕보통학교, 숭인상업학교, 광성보통학교 등 평양 내 학교의 설립과 장학사업에 150,000원 상당의 전답과 현금을 기부한다.


조선인을 위한 공회당과 도서관 건립 비용으로 65,000원, 이를 운영할 재단법인 비용으로 85,000원을 추가로 내놓는다. 현재 가치로 3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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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영은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로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이며, 이유승의 6형제 중 둘째 아들로서 조선 말기의 개화파 문신 귤산 이유원에게 입양되어 남양주시 화도읍 가곡리 임하려에서 살았으며 21세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장례원소경을 거쳐 종2품 가선대부에까지 오른다.


1910년 가장 먼저 독립운동에 뛰어든 동생인 우당 이회영의 권유로 가곡리의 모든 땅과 재산을 처분하여 형 건영, 동생 철영, 회영, 시영, 호영 등 6형제와 그의 가족들은 1910년 12월 30일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이주했다. 당시 6형제가 가지고 간 돈은 엽전 26가마였으며, 그중 이석영은 가곡리의 소유 전답 6,000석 토지를 매각하여 현금 40만 원(당시 쌀 1석은 3원이었음)을 내어놓아 가장 많은 액수였다.


끝으로 김준태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조선이라는 사회가 의로운 이익을 강조했던 사회였고, 의로운 이익이라는 기본 정신이라는 이념하에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그랬기에 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지속 가능한 부를 위해선 올바른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올바른 이익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다. 부도 마찬가지로,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내가 추구하는 이익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내가 사용한 수단이 올바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옳은 길을 가게 될 것이고, 그 사람이 축적된 부를 오래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의미에서 올바름을 추구해야 한다는 관점으로 ‘조선의 부자들’ 책을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라며 강연을 마쳤다.


한편, 제60기 경영자 독서모임 MBS 프로그램은 매주 월요일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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