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한옥만의 차별화? 전통성과 현대성!

윤여진 명장, 신문 기사 통해 우연히 시작하게 된 목수의 길

by 이예지

윤여진 한옥 대표이자 국가유산 수리기능자 자격증을 보유하고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윤여진 명장을 인터뷰했다.


윤여진 명장은 서양화를 전공하고 젊은 시절 화가의 길을 걷고자 했다. 하지만 오롯이 바쳤던 이십 대의 치열함은 현실 문제에 부딪히고 이로 인해 화가의 길을 포기했다. 이후 첫 번째, 요식업 사업에 도전했지만 보기 좋게 실패했다. 그는 경험 문제와 마인드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고 말하며 “어린 자녀의 양육과 생활고로 오랫동안 어려웠다. 그래서 지금도 아내와 자녀들에 미안한 마음이 있다”라고 전했다. 그가 한옥을 시작하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습관처럼 넘기던 신문에 한옥 짓는 이의 이야기와 사진이 있었고, 그는 떠나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에 윤여진 명장은 “아내는 두려웠을 것이다. 가장 다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 남편이 생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던 한옥을 짓기 위해 집을 떠나겠다고 하니 말이다. 불혹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주변의 우려를 모른척했다. 실망스러운 배움의 길, 지금은 상상도 못할 열한 시간의 혹독한 노동의 현장, 도시 인력시장보다도 적은 임금 속에서도 찍소리 안 하고 버텼다. 아니 더 강하게 부딪혔다. 낯에 치열하게 일하고 밤에는 책을 보았다”라고 이야기했다.

10046_10133_2625.jpg 윤여진 명장

윤여진 명장은 사찰에서 일할 때는 잠든 이들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마루에 전기장판을 깔고 책을 보았다. 그런 생활이 그에게 변화를 주었다. 그는 오랜 시간 국가유산 수리, 보수의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나갔다. 조공으로 시작한 그의 열정과 십여 년의 시간은 어느덧 단단한 대목수의 모습을 갖추었다.


자신감을 가지고 시공팀을 만들어 독립했다. 하지만 시련의 연속이었다. 아무도 그에게 집을 지어달라고 하지 않았다. 평생에 한번 지어볼까 말까 한 집을, 어느 누구도 쉽게 그에게 내어주지 않았다. 그는 주저 앉을 수 없었다. 아는 관계자들을 모두 찾아다니며 하청에 재하청, 단순한 집 수리까지 할 수 있는 일이면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수익성이 없어도 굶지 않으면 다행이다 생각하고 일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더 간절했을 것이다. 살고 있는 집을 정리해 필지를 구하고 설계와 건축 허가까지 받았지만 문화재 시굴 작업에서 옛 가마터가 나와 막대한 손실을 보고 포기해야만 할 때는 남몰래 눈물이 났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옥 펜션 시공, 시골집을 한옥풍으로 리모델링하고 심지어 경량 목조 주택 시공 관계자들과 교류하며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경기 양평군 ’아랑가’ 단독주택 신축공사(전원주택 상가), 경주시 감포읍 ‘경주 감포 한옥펜션’(중층,120평) 신축 공사, 경주시 감포읍 감포리 ‘경주 아라뜰 한옥 펜션’(중층,120평) 신축공사, 경주시 외동읍 ‘경주 미담 한옥 풀 빌라’(중층, 한옥펜션 ), 수원시 남수동 화성 행궁 안 ‘여미당’ 도시한옥 신축공사(중층구조, 한옥스테이), 수원시 남수동 도시한옥 ‘달봄’(중층, 한옥 스테이) 등 다수의 한옥과 목조 주택을 시공했다.

10046_10134_2740.jpg 윤여진 명장, 신문 기사 통해 우연히 시작하게 된 목수의 길

한옥 목수의 길로 가겠다고 마음먹고, 어떤 방법으로 시작을 하게 됐는지, 새로이 마음먹은 사람들에는 그길로 가기 위해 어떤 방법이 있는지 질문하자, 윤여진 명장은 두 가지 방법을 이야기했다. “첫 번째는 한옥학교를 가서 전반적인 학습을 해보는 방법이 있고, 두 번째는 현장 인부로 바로 가서 기초부터 일을 배우는 방법이 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옥 목수의 길을 가게 되면 겪게 되는 현실 또한 일깨워 줬다.


윤여진 명장은 “옛날엔 도제식 교육으로 현장에서 먹고 자면서 선배 목수들에게서 배웠다. 그러다 보니 인건비가 낮은 것에 비해 근무 시간은 길었다. 많은 인내와 보이지 않는 고충도 컸다”라고 한다.


“한옥은 큰 나무를 다루고 가공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망치와 끌, 손대패 등 수공구와 엔진톱, 전동 대패 등 대형 전동 공구를 많이 사용해야 한다. 개인차가 있지만 일정 기간 적응해야 하고 체력도 필요해서 숙련 기술자가 되기까지 녹록치가 않다. 생각보다 많이 다치기도 하고 위험한 순간도 있어서 단단한 마음가짐도 있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었는지 묻자 그는 “한옥은 집 짓는 과정이 복잡하고 까다롭다. 온갖 손때가 묻어야 완공에 이른다. 누군가에게는 보금자리를, 또 누군가에게는 자기 꿈을 이루는 공간을 마련하는데 함께 했다는 작은 행복감이 있다. 집 짓는 일은 혼자 할 수 없기에 힘을 모아야 하고, 함께 작업하는 동안 생기는 갈등도 해소하고 타협도 해야 한다. 이기적인 현대사회에서 공동체 의식도 배운다. 그래서 함께 작업한 목수들은 서로 ‘식구‘라고 칭한다.


또한 정년이 지나도 국가유산 수리기능인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가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익힌 노하우는 국가유산 수리, 보수에 오히려 도움이 되고, 여러 가지 일을 해 나가면서 어떤 일의 결과물을 냈을 때 만족도가 굉장히 큰 직업이다. 그만큼 자부심도 느낀다. 숙련된 기능인이 되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부분이 단점이기도 하지만, 경쟁력을 가질 땐 오히려 장점이 된다”라고 이야기했다.


한옥 목수라는 분야는 다른 직종에 비해 인원이 많지 않으며, 그만큼 경쟁력을 가진 직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몸이 먼저 반응해야 하는 이일에 익숙하지 않는 분들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으로 숙련 기능공으로 가지 못하고 도중에 중도 하차하시는 분들도 있다. 윤여진 명장은 “ 순간의 어려움을 넘기면 직업인으로서 기회가 많은 것도 하나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라고 전했다.

10046_10135_2814.jpg 아랑가 정면

윤여진 명장은 대목수로서 포기하지 않은 이유가 나 자신과의 끈질긴 싸움에서 포기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젊었을 땐 그림을 그렸었고 그다음엔 가족을 위해 식당업을 했었는데 전혀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언제나 나는 무엇을 할까, 내가 정말 남아 있는 인생에서 무엇을 선택했을 때 조금은 덜 후회할까에 대한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라고 한다. 마지막 선택 이란 말을 읊조리며 마음을 잡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일제감정기 때 할아버지가 직접 지으셨던 한옥에서 나고 자랐기에 항상 일상 속에 한옥이 있었다고 한다.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짓고 난방을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해 정서적으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한다.


윤여진 명장은 한식 목공, 드잡이, 산업 목공 세 가지 자격증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한식 목공만의 차별화 포인트는 무엇인지 질문하자 윤여진 명장은 “대부분의 건축은 현장에서 바로 집을 짓기 시작한다. 처음과 끝이 현장에서 이루어 진다. 하지만 한옥은 반드시 치목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일정한 장소에서 부재를 치수대로 깎고 다듬어 장부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섬세한 목수들의 손기술이 빛을 발한다. 이렇게 정성 들여 만든 부재들을 현장으로 옮기고, 서로 맞추어 끼우고 쌓아 집의 뼈대를 완성한다. 서양식 목공은 공학 목재를 사용하고 규격화된 얇고 작은 나무를 주로 사용한다. 뼈대를 만드는 방식도 다르고 기술자도 다르다. 서로의 장단점이 존재하지만, 한옥은 통나무를 가공해 사용한다. 한옥 목수들의 치목 과정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점이 일차적으로 다르다“라고 차이점을 설명해 주었다.

10046_10136_2837.jpg 경주미담한옥 풀빌라 야경

“한옥은 큰 나무를 자르고 또 구멍을 파고 홈을 내고 장부를 만들어 조립식으로 뼈대를 구성하기 때문에 한옥 목수는 자기 기술을 숙련화 시키는 시간과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게 수반되지 않으면 작업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현대건축이나 서양식 목구조에 비해 숙련 기능공으로 가는 길이 더딜 수 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윤여진 명장은 한옥학교를 이수하고 바로 현장으로 나가 일을 했다. 먼저 현장에 적응해야 했기에 국가유산 수리 기능자 시험이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시험을 보러 가지 않았다, 시험에 응시하기엔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었고 기술 습득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삼 년 후 첫 도전에서 합격증을 받았다. 그때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다면 자신도 이 길을 중도 포기했을것이라고 회고했다.


지금도 윤여진 명장은 계속해서 공부하고 배우면서 시행착오를 겪는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요즘 한식 목공 자격증을 따는 분들에게 꿀팁 혹은 조언을 부탁했다. 이에 그는 “자격증은 그냥 자격증일 뿐이다. 학원에서 연습하고 단기간에 따는 분들도 계시지만 한옥 목수는 자격증 외에 현장에서의 능력이 우선시 됨을 명심해야 한다. 자격증 외에 꼭 현장 경험을 쌓으라고 당부하고 싶다“라고 전했다.

10046_10137_297.jpg 여미당 야경

시간은 어느 정도 소요될지 묻자 그는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저는 제 스승님 밑에서 몇 년을 그리고 각기 다른 현장을 찾아 또 몇 년을 다녔어요. 아빠의 모습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던 갓 초등학생 아이가 ‘윤여진 한옥‘을 설립하고 나니 대학생 되어 있었다“라며 웃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소중했고 세상을 배웠다고 했다.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누구도 집을 지어 달라고 의뢰하지 않는다. 한옥이라는 건 그 부재 하나하나의 생긴 모양과 연결 관계, 그리고 나무에 그려내고 깎아낼 줄 알아야 비로소 목수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스스로 집 한 채 ‘먹을 놓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무슨 말이냐고 묻자 “집 한 채에 들어가는 모든 부재를 각각의 나무에 그려내는 능력“정도로 설명해 줬다.


목수로서 나무에 대한 많은 부분을 완벽하게 배웠다 할지라도 현장에 가서 집을 짓는다 건 때로는 철거부터 토목, 제반 시설부터 상수도, 전기 그 밖에 정화조, 콘크리트 기초 등 많은 분야의 법률 상식도 공부해야 한다. 설계도면 외에 관련 법규에 소홀하면 준공 때 어려움을 겪으니 이 또한 결코 작은 부분이 아님을 강조한다.


윤여진 명장은 해체부터 집 짓는 과정에 대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경험을 했던 부분이 기반이 되어 현재 독립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는 기능자로서만 가고자 한다면 목수로서 나무에 충실하면 되지만 사업가로서 확장하고 싶다면 현대 건축도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이 길을 쉽게 선택해 ‘한번 해볼까?’하는 마음으로는 절대 선택하면 안 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윤여진 한옥은 지난 2018년 설립됐으며 설립된 지 7년째가 됐다. 소감을 묻자 윤여진 명장은 “어려웠던 부분들이 많았다. 회사를 만들었다고 해서 의뢰가 오진 않는다. 첫 번째로 발로 뛰면서 영업을 해야 하는 것도 있고 두 번째로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그 직종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나를 인정해 줘야 한다. 그것이 곧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대목수로서의 실력, 사업가로서의 실력 없이 사업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모든 분야가 똑같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건축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언제나 한결같아야 한다”라고 주문한다. 어떤 의미에 한결이냐고 물으니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10046_10138_302.jpg 여미당 측면

그렇다면 어떻게 같은 직종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이에 윤여진 명장은“이론도 중요하고 실전에서 응용할 수 있는 개인적인 능력을 키워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키워서, 집을 전체적으로 보고 리더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건 실력과 더불어 성실해야 하고 그런 면을 한결같이 보여줬을 때 그 사람의 부족한 면이 채워지고 장점이 발현된다...성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실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옥 목수는 수준 높은 기능공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이 직종에서 30~40년 기능공으로서 살아오신 어르신분들에게서 많은 부분을 배운다. 한 계통의 역사를 꾀고 있는 그분들에게 반드시 배울 점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노하우를 많이 갖고 있고 전통의 맥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것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고 전했다.


윤여진 한옥만의 차별화를 윤여진 명장은 전통의 계승과 도심 속의 한옥으로 꼽았다. 그는 “도시 안에 지어지는 한옥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 또 기준 콘크리트 건물도 한옥으로 리모델링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윤여진 한옥만의 특징으로 첫째, 전통 한옥을 복원하는 능력을 꼽았다. 시대별, 유형별 전통적인 특징을 알아 전통 한옥 시공 능력에 자신감을 갖는다. 둘째, 일부 한옥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윤여진 명장은 선입견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어릴 적 불편한 시골집을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현대 한옥의 발전은 단열, 벽채, 실내 인테리어 구성에 결코 현대 건축에 뒤지지 않다고 한다. 도시 안에 또 접근성이 좋은 도시 주변에 단독주택으로서 훌륭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10046_10139_3046.jpg 아랑가 측면

윤여진 명장은 도시에서 짓는 한옥을 많이 연구했고 현재 수원 행궁 안에 한옥을 직접 짓게 됐다고 한다. 한옥 스테이를 하고 있는데 의외로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향후 윤여진 한옥은 일반 주택을 한옥으로 개조해 한옥의 특성을 살려 리모델링하고 도시 안 작은 빈터에 조그마한 한옥을 지을 수 있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현재 전원주택 시장은 너무 과잉 공급이고 또 사용하기 어려운 옛날 집이 너무 많아 그 부분을 활용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을 한옥으로 재 탄생시켜 불편함 없이 단독 주택의 역할도 수행하고 한옥스테이로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또 하나의 방향성이 될 것 같다고 전한다. 전통적인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분리발전시켜 나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것은 철저하게 고증을 기반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가고, 현대성과 접목해 실생활에 접목할 수 있는 한옥도 추구해나가는 방법이 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윤여진 한옥을 찾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질문하자. 그는 “첫 번째는 제가 건축주와 설계부터 시공까지 같이 한다. 직접 작업복을 입고 망치를 들고 일하는 모습에 많은 신뢰를 주시는 것 같다. 두 번째는 기능공들한테만 위탁해 집을 짓지 않고 직접 기술자로 시공을 하다 보니 항상 현장을 지킨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협의해 문제를 해결한다. 정말 기술자가 집을 짓는다는 믿음을 줄 수 있고, 스스로도 사업자가 아닌 기술자로서, 시공 책임자로서의 자부심을 갖는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10046_10140_314.jpg 윤여진 명장 “순간의 어려움 넘기면 직업으로서 많은 기회 찾아와”

윤여진 명장은 대목수로서 현재까지 다양한 형태의 한옥을 지었는데, 그중에서 애정이 가는 건물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이에 그는 경주에서 지은 대형 한옥 펜션 건축과 수원에서 지은 도시한옥 스테이를 꼽았다. 경주에서의 한옥은 중층 120평의 전통한옥이라 기억에 남고, 수원에서의 건축은 밀집 지역에서 도시 안에 짓다 보니 너무나 고생해서 기억에 남는다고, 하지만 새로운 희망도 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도시 한옥의 특징이 있다. 전원주택은 공간이 넓어서 전통적인 모습을 많이 살릴 수 있다. 근데 도시한옥은 좁은 공간에다 지어야 하기 때문에 옛 모습 그대로 지을 수 없고 현대적으로 각색해 짓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형태의 한옥도 탄생할 수 있고, 다른 노하우도 많이 쌓인다“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인터뷰 소감에 대해 윤여진 명장은 “대화를 하면서 지나간 나를 가감 없이 돌이켜 보았다, 아쉬움도 있지만 항상 긍정적으로 미래를 보려 한다.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았던 길이었다면 잠깐 엿보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브랜드 뉴스가 좋은 매체로서 같이 성장하고, 많은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랑 받는 매체가 됐으면 좋겠다”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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