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앞이 안 보인다고?!헉:’ 류 기자를 만났다.
- “반가워요! 다행히도 근처에 사는
지인의 길 안내 덕분에 잘 찾아왔네요.”
-아주 특별한 인터뷰 (2017)
카페가 보이고 입구에 통화 중인 한 여성이 보였다.
그녀임을 확인하고 내가 곧장 다가갔다.
별생각 없이 듣다 보니
어..? 그게 무슨 소리지?
근처에 사는 지인을 만났다는 얘긴가?
도통 이해할 순 없었지만 일단
시원한 카페 안으로 들어가서
그녀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역시 시원한 냉커피를 주문한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사진을
단 한 컷도 찍을 생각을 않는 거다.
다른 매체에선 이 시간이면
‘얼짱 샷’ 몇 컷은 나왔을 텐데.
류 기자를 마주하며 앉은자리,
그녀가 들고 나온 이런저런 책자들이 많았는데
사진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류 기자가 미안해하며
겸연쩍게 말한다.
잡지는 오로지 큰 활자와 '점자' 인터뷰 기사만
올라간다는 설명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준비해온 질문지를
눈으로 보지 않고 손으로 그걸 훑는다.
예전에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흔히 보던 ‘점자’다.
하도 오랜만에 신어 발에 꼭 끼는 샌들을
삐걱대며 바닥에 퉁퉁 굴렀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쳐가며 조금 편안해진 분위기,
이번엔 내가 류 기자를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시각장애 지인들과 다녀봐서 아는데
이 여기자는 왠지 더 불편해하는 거 같다.
나의 질문에 이제 그녀가 찬찬히 답하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안경을 쓴 그녀의 눈동자는
움직임 없이 한 곳에만 머물러 있다.
류 기자도 나처럼 갑자기 시각장애가 왔단다.
근데 나처럼 사고를 당해 그런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못 보게 되었다고.
나보다 몇 살 아래에
약간 마른 체형의 여성.
하나로 단정하게 내려 묶은
긴 곱슬머리의 그녀는 길에서도
쉽게 마주칠 법한 아주 평범한 인상이다.
그리고 역시 점자 타자기 같은 걸 지니고 다닌다.
그녀 모르게 기웃기웃
그녀의 소지품들 이것저것을 훑어보았다.
과거 류 기자의 나이 20대 중반에
대학을 졸업하고 공인중개사 공부를 했는데
점점 시력을 잃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점자를 익혔고
문체부에서 발간하는 점자 잡지 기자로 활동하게 되었단다. 시기를 따져보니 시각장애가 생긴 지
5~6년도 되지 않았겠네.
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공부 잘하는 애들은 꼭 저렇게 말하더라.
수학도 기본 원리만 이해하면 쉽다고. 쳇;
류 기자는 몇 년간 공부했던
공인중개사 도전을 포기해야 해서 아쉽긴 해도
이제 자신의 길을 찾은 것이 감사하고 생활에
불만이 없다고도 곁들였다.
예전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나름 이쪽에서 점자를 활용하는 능력을
인정받아 좋다고.
사실 선천적인 시각장애인들은
교육기관에서 점자를 배우는 경우가 많지만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앞을 못 보게 되면
점자를 익히기가 쉽지 않다.
이 정도로 앞을 못 보면
아무리 짧은 거리라도 길안내 도우미와 동행이 필요할 텐데.
길안내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려면
이동 몇 시간 전에 콜 센터에 전화를 해야 한다.
그러면 이동 경로에서 가까운 도우미가 추천된다.
이용 시간당 금액이 정해져 있고 그 금액을
이용자가 도우미에게 내면 도우미는
그중 일부를 콜 센터에 낸다.
대체로 앞에서 안내자의
오른쪽 어깨를 내어주는데 도로의 상태를
미리 알려주어야 한다.
계단이라 하더라도
그게 오르는 계단인지 내려가는 계단인지
또 몇 걸음을 지나면
계단이 시작되는지 등
미리 세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이동 거리와 시간을 도우미와 맞춰
예약해서 이용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나도 이미 어느 정도 안다.
이동하려는 지역에 안내 도우미가 없으면
대기 시간이 길어지거나 어쩔 땐
이동을 포기해야 하는 일도 발생한다.
그럼에도 세상을 좋게만 느끼는 그녀가 참 멋지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를
지하철을 타는 입구까지 배웅해야겠군.
아주 오랜만의 길안내 도우미 봉사라
감회가 새롭다.
짐을 챙겨 나오는 그녀에게 말했다.
내 얘기에 류 기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정말 너무 고마워요!
그럼 길안내 부탁할게요!”
그리고 우린 걸음을 맞추었다.
걷기 편한 도로 쪽으로 그녀를 이끌며 조심조심..
아.. 또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든다.
지하철 계단을 함께 오르고
입구까지 다 와서 류 기자가 말했다.
지하철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인터뷰를 위해 미리 준비한 미긍 책과
그림들을 그녀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집에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장애인들을 많이 봐왔는데
류 기자는 늘 고마워한다.
그렇게까지 안 그래도 괜찮은데.
평범한 여성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이 어떠한 지는 나도 이미 경험했다.
그래서 본인에게 생긴 불편함에서
빛나는 보석을 찾아낸 그녀가 더욱 대단하다.
당시 인터뷰한 기사를 담은 점자 잡지가
집으로 배송되어 받아보았다.
커다란 활자 위에 점자가 함께 표기되어 있기에
그리 긴 기사가 아니어도 분량이 길어지고
책의 두께도 꽤 도톰해진다.
그리고 점자를 사용하는 이들뿐 아니라
전국의 복지관 등 여러 단체에도 보내지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이 아닌 정안인들에게도 노출이 된다고.
사진 한 장 없는 잡지는 첨이라 신기하군.
그해 겨울 12월. 아주 오랜만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얘기를 들어보니 류 기자가 기사를 쓰는
'손끝으로 읽는 국정'의 표지 디자인을
내 그림으로 쓰기 위해
제안서를 제출해보겠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그게 승인이 되면서
매달 미긍 그림으로 표지가 실리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점자 잡지의 애독자가 되었다.
사실 작은 활자를 보는 게
멀미가 나서 책을 멀리했었는데
(변.. 변명 아님;) 큰 활자의 점자 잡지의 기사들을 보며 여러 개로 보이는 활자에도 조금씩 익숙해진다.
잡지 기사가 주로 장애극복의 내용들로
감동적인 사연들아 꽤 많다.
물론 어지럽긴 해도 좋다.
기존에는 표지가 사진으로 실렸다가
그림을 싣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
그림까지는 점자로 표기되지 않는다.
하긴 그림의 굴곡을 만져서
이미지화하는 것도 한계가 있겠다.
그리고 처음 그림표지를 진행하면서
문체부에선 그림설명 없이 그림만 올리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무런 설명 없이 올라가는 그림만으로는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거 같아
나의 의견을 반영해서 머리말에
약간의 그림설명을 곁들이기로 했다.
최대한 짧고 핵심적인 내용을 간추려 담아 나간다.
2018년 1월 처음 싣게 된
그림표지 ‘공생'이다.
공생 [Symbiosis]이란?
서로 각기 다른 두 종 또는
그 이상의 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일반적으로 양쪽이 모두 이익을 얻는 관계를 일컫는다.
수많은 생물들의 삶 그중에
나비와 거북이의 ‘공생’
이를 짧은 설명과 함께 담는다.
매주 미긍 세상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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