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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Jul 25. 2019

'젊은 혈기'는 살인도 용서받아야 하나?!

'젊은 혈기'에 딸의 인생을 짓밟아버린.. 가해자 측을 만났다! ㅠ

 "우리 애가.. 젊은 혈기에 실수로 그랬네요. 좀 너그럽게 봐주세요. 다행히 따님 이제 멀쩡해봬네. 그러니까.. 합의를 좀..."  가해 음주운전자 측 노모와 목소리만 큰 친척 여성, 보험사 여직원이 병실을 찾았다.  딸이 이제 '멀쩡해 봰다'는 그 말은 나를 돌아버리게 했다!


  "당신네 아들이 그 '젊은 혈기'에 낸 사고로 우리 딸 인생은 짓밟혔어! 이제.. 사람 구실도 못 한다구. 알어요??! 흑흑..!"


-병상. 엄마의 시선-8



 "어? 전동휠체어를 주문했다고..? 아니야~ 괜찮아. 지금 수동휠체어 대여해서 쓰고 있어. 진짜 괜찮아. 어차피 얘는  전동휠체어도 혼자서는 못 탈 거야. 앞을 잘 못 보니까.. 하튼 얘한테 물어는 볼게. 응.. 그래. 신경 써줘서 고맙다!"   딸과 함께 패션몰을 하던 조카에게서 오전에 전화가 왔다. 마비된 손으로 휠체어 바퀴도 못 굴린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나 보다.  조카가 딸이 탈 만한 전동휠체어를 알아봤다며 병원으로 보내겠다고 한다. 사실 그 말만 듣는데도 가슴이 울컥 내려앉는다. 내 딸이 이제 평생 휠체어를 타야 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나? 전동휠체어로 이동하는 다른 환자를 봤는데 부피도 꽤 크고 버거워 보인다. 음.. 차에 싣기도 어렵겠구나.  그래도 일단은 딸에게 얘기는 전해야겠다. 사실 요즘 조카의 사정도 말이 아닐 거다. 함께 일하는 딸도 이렇게 됐거니와 동대문이랑 명동 패션몰을 정리해서 태국에 매장을 오픈했지만 힘든 상태라고 들었다. 태국 현지에 유행병 '사스'가 돌면서 여행도 자제하는 분위기에 관광업계에도 큰 타격이 왔다. 그걸 알기에 이렇게 챙겨주는 조카가 더 미안하고 고맙다. 어쨌든 오전 물리치료를 마치고 간병인과 병실에 돌아온 딸에게 물었다. 그리고 내심 '혹시 전동휠체어 선물을 받겠다고 하면 어쩌지?'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생긴다.  "언니들이 전동휠체어를 주문하겠다고 하는데 넌 어때..? 받고 싶니?"  그러자 아이에게서 나온 '쿨'한 대답.  "전동휠체어....? 나 그거 안 타~ 나 인제 걷게 될 텐데.. ㅋ 그래도 고맙넹! 힛~"  이런 천진한 딸의 반응에 나도 걱정을 한시름 놓는다.

 ⁠이곳은 환자 침구 8개가 들어찬 '중 중환자실'이다. 남녀 환자가 함께 머무는 곳인데 병실에 머문 시일이 긴 환자일수록 창가 쪽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이를테면 말없는 규칙인 셈이다. 내 딸 같은 경우엔 현재 이곳 '중 중환자실'에선 초입이라 창문 옆으론 아직 다가가지 못했다. 맞은편 창가에서 햇살을 제대로 받는 특석의 환자가 있다. 성은 모르겠고 이름이 '현우'라고 하는 20대 초반의 미소년이다. 병실에 머무는 이들에게 항상 간식을 넉넉히 돌리는 현우네 보호자가 있다. 그는 아이의 사고로 하던 일까지 접고 간병을 도맡을 만큼 아들에게 열성적이다. 주변에서 얘기를 들어보니 거주하던 '울산'에서 현우의 치료만을 위해서 서울로 상경했고 벌써 서울의 여러 곳의 유명 병원들에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왔단다. 1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 현우는 눈만 덩그러니 뜬 '식물인간' 상태다. 간식에 대한 답례로 커피 한 잔을 대접하며 현우 아버지에게 물었다.  "현우가 너무 잘 생겼어요. 지금이 많이 좋아진 상태라는데 아버님이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우리 아이도 저런 상태로 있어봐서 더 맘이 아프네요. 현우도 곧 의식 찾을 거예요!"  그러자 현우 아버지가 커피를 홀짝이더니 쓸쓸히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처음에 눈도 안 뜨고 뇌사상태로 죽어있었을 땐 저도 죽으려고 했어요. 그놈의 '젊은 혈기'에 저지경이됐으니 할 말 없네요. 휴.."  고속도로에서 오토바이를 몰던 아들이 운전미숙으로 신호 위반을 하고 트럭에 받혔다고 했다. 보상받을 곳도 없고 엄마 없이 아버지 혼자 많이 힘들어 보였다.


  바로 그때였다.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들이닥친 건. "여기, 강 주 혜 환자 자리가 어디죠..?"  간병인 이모가 이쪽이라고 손짓한다.  가해 음주운전자 측 노모와 친척 여성, 보험사 여직원이 병실을 찾았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과일 바구니를 들이밀며 인사를 했다. 하필, 침대에 앉은 딸내미가 과일바구니를 보고 일행에게 '헤벌쭉' 인사를 한다. 내가 아이에게 괜히 신경질을 냈다.  "넌 가만히 누워있어!"  그들 중 목소리 큰 뚱뗑이가 말했다. "우리 애가.. 젊은 혈기실수로 그랬네요. 좀 너그럽게 봐주세요. 따님도 이제 멀쩡해 봬요~ 그러니까.. 합의를 좀..." 딸이 이제 '멀쩡해 봰다'는 말은 나를 돌아버리게 했다!

  "당신네 아들이 그 '젊은 혈기'에 낸 사고로 우리 딸 인생은 짓밟혔어! 이제.. 사람 구실도 못 한다구. 알어요??! 흑흑..!"  내 딸은 그 사고로 평생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장애인'이 됐다. 게다가 이제 뇌손상으로 나잇값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됐으니 피가 거꾸로 솟을 노릇이다. 가해자 측의 황당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음주운전자는 아무리 털어도 그야말로 '불알 두 쪽' 밖에 없단다. 그러니까 그가 일하던 곳이 동네 작은 주점인데 사장이 여자 친구의 엄마다. 게다가 그가 운전한 차도 빌린 차에 '종합보험' 조차 안 들었다.  고등학생인 여자 친구 일행들을 태우고 그가 군대 입대하기 전 진탕 마시고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그날의 사고로 경상도에서 올라왔다는 음주운전자의 노모가 울며 봐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동안 나온 병원비가 '집 한 채' 값에 다다르고 보상해줄 능력 없는 못난 아들은 군입대를 위해 머리를 밀고 감방에 들어갔다.


   '젊은 혈기'에 낸 실수로 오랜 병원생활을 감래하는 '현우 아버지' 얼굴이 겹쳐온다.

   당신들이 말하는 '젊은 혈기'는 무고한 인생을 망치는 게 아니라 본인들이 감당해내야 할 '형벌'이라는 거. 알아?!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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