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xmas79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긍 Jul 24. 2019

딸의 혼수상태.. '기다려보자'는 그 빌어먹을 말!

-엄마의 시선 (2004)

  ".. 아, 안 보여요. 그것도.. 안 보여.. 요.. 암 것도 안 보여..ㅠ"  곁에 서있는 보조가 딸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벌려가며 시력을 측정한다. "아프지 않게 살살 좀 벌리세요..!" 내 말은 아랑곳없이 시력 검사하는 내내 아무 말 안하고  장갑 낀 손으로 딸래미 오른쪽 눈을 벌려댄다. 아이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시력 검사가 길어졌다.  저렇게 커다란 글씨도 안 보인다고..?! 점점.. 무서워진다.

  내가 매일 출퇴근하는 이 곳은 딸이 입원해있는 '여의도 성모병원'이다.  오늘은 병원 내에 있는 검안실을 찾았다. 검사가 끝난 후 주치의가 나를 보며 말한다. "시력이 거의 안 잡히네요.  만일... 환자가 오른쪽 눈을 뜨게 되더라도 실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슴이 철컹.. 내려 앉는다. 주치의 말이 가슴에 박힐 만큼 선명하게 들리지만 못 알아들은 것처럼 재차 확인했다. "어뜩해.. 방.. 방법은 전혀 없는 건가요?! 흑.." 그러자 의사가 담담한 목소리로 답하길. "안타깝지만... 뇌 손상으로 눈 상태에 이상이 온 거라.. 수술도 불가능하고.. 현재 방법이 없네요. 더 기다려봅시다."  


  의사들은 전혀 모른다. '기다려보자'는 그 빌어먹을 말이 환자 보호자의 애간장을 얼마나 녹이는지.                                                    

    -여의도 성모병원 검안실 /엄마의 시선 (2004)

'기다려보자'는 그 빌어먹을 말! (2003)


   더 기다려보자는 그 말은 입원 첫 날부터다.  당시 집 근처에 있는 '강동 성심병원' 병실이 가득 차서 입원이 불가능 했다. 할 수 없이 내 딸은 건대 입구에 위치한 '혜민병원'으로 급히 이송되었다. 그리고 다급하게 여러 수술이 이뤄졌다. 수술을 하기 앞서 너무 끔찍한 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수술 시 환자가 사망에 이르더라도 의료진에게는 전혀 책임 없다.'

   5시간 가량이나 되는 오랜 수술이 진행되었다. 탈골된 다리에 나사와 인조뼈를 끼워 맞추는 수술이다. 그 걸 무사히 마쳤지만 아직 잠들어 있는 내 딸... 주치의 설명으로는 머리가 깨지면서 뇌에 피가 차서 피를 말리는 약물만 투여했다고 한다. 그때 병원에서 딸의 긴 파마머리를  박박 밀었고 벌써 이렇게 파랗게 돋아나고 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구나. 20일이 넘도록 의식이 없는 딸을 보며 매일 울며 직감이 온다.  이런 작은 규모의 병원에서는 죽어있는 딸의 의식을 영영 되찾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엄마의 느낌이란 게.

  "주혜야, 그만 자고 일어나야지! 널 보는 엄마가 너무.. 아프잖아.. 어서 일어나자!"             


  결국 나의 인맥들을 총동원해서 지인 친구가 원장으로 있다는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딸이 이 곳 성모병원 중환자실에 왔을 때 드디어 한 쪽 눈만 덩그랗게 뜨게 된다! 병원에서는 그냥 '기적'이라고만 했다. 

   사고 1년이 다 되어가지만 더 이상의 기적은 없다. 아직도 채워가야 할 게 너무너무 많다. 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환자 보호자'는 아플 틈도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