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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Jul 28. 2019

음주운전자 당신 노모의 '쪽진 머리' 때문에.

'음주운전자' 측에서 보내온 편지도 합의에 이르게 하지 못했다.

 '저의 남은 일생을 그쪽 따님만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겠습니다! 제발 합의를 좀...'


 내 딸을 이렇게 만든 음주운전자가 감방에서 편지를 보내왔다. 아마도 내가 합의를 보류하니 수감된 상황에서 무척 답답한 심정이었을 게다. 사고를 맡은 변호사 측에서 시켜서 써 내려간 수작이 분명해 보인다. 물론 합의를 해준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건 전혀 없다. 그 가식적인 편지를 받아 보며 이 상황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왜 일까?


 자식의 합의를 위해 지방에서 올라와

병원을 찾은 노모의 눈물.

그날의 '쪽진 머리'가 불쑥 떠오른다.


-병상. 엄마의 시선


 그동안 '중 중환자실'로 딸의 거처를 옮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오랜 기간 머문 환자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건 서류 절차와 더불어 집을 '이사'할 때만큼이나 번거로운 일이다. 옷가지들과 소지품들, 약통들.. 이렇게 짐이 많았었나 할 정도가 된다.  그래도 이쪽으로 옮기고 나니 중환자실에 있을 때보다 면회가 훨씬 자유롭다. 그래서 요즘 딸의 친구, 후배들의 면회가 잦아졌나 보다. 그렇게 찾은 친구들 중 며칠 전부터 내 눈에 자꾸 거슬리는 인물이 한 명 있다. 그가 딸의 손을 꼭 쥐고 기도하는 폼이 영... 못마땅하다. 딸의 친구에게 물어보니 사고가 있기 전까지 딸과 함께 했던 딸의 남자 친구란다.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보니 그가 너무 밉다.


  '그날... 딸이 그쪽만 안 만났어도.. 어쩌면 이런 끔찍한 사고는 없었을지 몰라!'  아무리 연관없는 일이라지만 엄마 입장에서 마주치면 화가 치미는 건 어쩔 수 없다. 주변에선 내 속도 모르고 그래도 사고 후에 이렇게 찾아주는 게 어디냐고들 하지만 이번 사고로 책임을 떠맡기는 건 아무래도 싫다. 그리고 남녀 간의 사랑은 아무리 당시 애틋하다 할 지라도 대부분 3년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앞으로 살다 보면 아이가 장애로 답답한 일이 더욱 많아질 테고 여자로서의 매력도 떨어질 텐데.. 휠체어에 의지하는 아이를 책임지라고 하는 것도 서로에게 부담이 될 거다. 더 마음이 쓰이는 건.. 아이가 받을 '상처'가 너무 두렵다. 안 그래도 어린아이가 되어 세상 물정 모르고 사람들을 다 따르는 딸이 남자 친구가 예전만큼 자신에게 관심이 떨어진다면 얼마나 상처가 클는지. 내가 그를 부를 때 '그쪽'이라고  호칭하는 엄마의 복잡한 심경이다.


  "저기요.. '그쪽'이 우리 아이의 병실을 찾아주는 건 고맙지만..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셨음 해요. 그쪽 탓으로 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그러자 그가 잠을 못 잔 듯 부스스한 얼굴로 대꾸를 한다. "괜.. 괜찮습니다. 제가 보고 싶어서 찾아오는 건데요.."  한동안 그는 친구들과도 자주 아이의 병실을 찾았다. 그 후에도 혼자 찾아와 아이의 재활에 필요한 도구들을 사다 주는 성의를 보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딸의 남자 친구의 엄마도 오늘내일하는 위독한 상태라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평생을 교육에 몸 담아 지금은 '정년퇴임'이란다. 그러니까 이곳에 와도 병원의 중중 환자실에서 여자 친구를 보고, 집에서도 병원 중환자실에 투병 중인 엄마를 보는 셈이다. 문득 그의 처지가 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의 모친이 제대로 있다한들 저런 상태의 딸아이를 맘에 들어할 리 없겠지만 말이다. 형제 둘 뿐이라는 호구 조사도 마쳤다. 4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으니 만일 그쪽에 시집을 가더라도 남자밖에 없는 가정에서 시아버지 모시며 옴팡 고생길이겠구나. 밥도 지어본 적 없는 딸내미의 고생길이 훤하다. '엮여도 꼭 이런 힘든 상황이랑 엮이는지.. 휴..." 이제 나는 그와 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따님 앞으로 편지가 왔어요. 주소를 보니.. 아마 가해자가 감방에서 보낸 편지 같아요. 여기.." 병실로 돌아온 내게 간병인 이모가 편지 한 통을 불쑥 내민다. '저의 남은 일생을 그쪽 따님만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겠습니다! 제발 합의를 좀...'   내 딸을 이렇게 만든 음주운전자가 감방에서 편지를 보내왔다. 아마도 내가 합의를 보류하니 수감된 상황에서 무척 답답한 심정이었을 게다. 사고 변호를 맡은 측에서 시켜서 써 내려간 수작이 분명해 보인다. 물론 합의를 해준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건 전혀 없다. 그 가식적인 편지를 받아 보며 이 상황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왜 일까? 사고를 낸 자식의 합의를 위해 지방에서 올라와 병원을 찾은 노모의 눈물... 그날의 '쪽진 머리'가 불쑥 떠오른다.


  "나올 것도 하나 없는데 그냥.. 네 마음이 편해지려면 풀어주는 편이 주혜에게도 더 나을 거야!" 나의 친정 언니 조언도 그다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병실을 찾은 가해자 측 노모를 보며 나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사고를 낸 아들이 아마도 '늦둥이'였나 보다. 가해자의 할머니쯤 되나 할 만큼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인다. "제 자식을 제발.. 용서해주세요.. 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내 손을 잡고 고개를 떨궈 흐느끼는 노모의 쪽진 머리에서 비릿한 바다 내음이 풍겨온다. 햇볕에 그을린 까무잡잡한 피부빛에 쪼글쪼글한 주름이 고생의 흔적을 말해준다. 병원을 함께 찾은 노부부 중 영감은 비상구에서 담배를 피우고 오겠다며 병실을 나갔다. 그들을 보며 내 마음이 괜히 더 착잡해왔다.


  그렇게 가해자 측 노부부가 병실을 다녀간 며칠 후, 사고 합의를 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음주운전 가해자 측에선 어떤 감사의 말도 딸을 찾아 미안하다는 사과도 듣지 못했다. 점점 더 가중되는 치료비는 순전히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 되었다. 그래도 앞으로 아이만 괜찮아진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때 문득 느껴졌다. '특별함' 없는 그저 '평범함'이 가장 감사한 '행복'이었음을.


  "엄마.. 오늘 상갓집 들렀다가 좀 늦을 거 같아요. 걱정 마시고 주무시라고.." 아이의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누군지 묻지 않아도 그냥 짐작이 갔다. 투병 중이던 아이 남자 친구의 모친이 병원에서 별세하셨단다.


 아이에게 이 사실을

꼭 알려야 하나..?

그것조차 고민이 되는...

  나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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