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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Aug 07. 2019

'죽음'의 문턱에 선 나를 보며.

만일 그 날..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 사고를 피했을까?

'네가 죽은 듯 잠든 사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할 것 같아서 쓰는 노트.


'하느님은 널 포기하지 않아!

 넌 내 친구니까.'
 

-사고 후 ‘의식불명’인 나를 보며.

/ 여진 2003.05.19~

나의 '의식불명' 상태를 보며 쓴 여진이 노트.. (2003.05.16)

   패션몰 '밀리오레'에서 일을 하면서 나를 참 많이 닮은 녀석을 만났다. 나처럼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나보다 한 뼘은 큰 키에 통통한 체격의 동갑내기 친구다. 가리는 거 없이 음식을 다 잘 먹고 특히 안주가 부실해도 소주를 참 잘 마신다. 본인의 힘든 상황에도 늘 씩씩하게 웃는 여진이는 남을 웃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당시 패션몰 내 개인 매장들 네 곳이 붙어있었는데 직원들 나이가 모두 스물 넷이다. 이렇게 또래끼리 뭉치기도 쉽지 않다며 '79 팸'이 결성됐다.


  우리는 네 명 다 제각기 색다른 매력이 있다. 긴 생머리에 외까풀 눈, 깨끗한 피부, 검은색 낮은 로퍼에 롱치마, 늘 같은 옷 스타일만 여러 개 구비해서 돌려 입는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아담한 체구, 야무진 '블랙' 마니아 선미는 여진이의 '짝지'다. 그리고 168의 키에 통통한 체형, 긴 머리를 올려 묶고 검은색 롱 가죽 재킷을 즐겨 입는 내 짝지 희정이는 활짝 웃을 때 입모양이 참 예쁜 친구다. 그녀는 매장 오픈 전 눈썹도 안 그린 채 선글라스를 끼고 나와서 정말 10분이 채 안 걸리는 짬을 타서 대공사가 시작된다. 아치형으로 그린 검은 눈썹,  눈꺼풀 위에 액상 아이라이너를 정교하게 그린 후에 속눈썹은 마스카라를 잔뜩 발라 속눈썹 뷰러로 잡아 가닥가닥 살려야 한다. 그러고 나면 그녀가 얘기할 때마다 속눈썹이 자신 있게 쫙 솟아 팔랑팔랑 떨린다. 희정이도 주로 소주를 즐겨 먹는데 평소에 강북에 나이트를 자주 간다. 그리고 나는 구제 바지에 유행 패션에 늘 호기심이 많았다. 귓바퀴의 연골에 피어싱을 하고 가발을 붙여서 아는 언니에게 레게머리를 부탁해서 밤 새 땋아 길게 내리기도 했다. 하긴.. 매장에서 판매되는 의류를 사입하는 일들도 맡아했으니 유행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난 소주, 맥주 둘 다 즐겼다.

  이렇게 우리 넷은 스타일이 전혀 달라서 더 재미있다. 휴가철에 맞춰 회비를 걷어서 '청평'에도 1박 2일로 놀러 가고 더 멀리 강원도 바닷가로 기차여행을 갔다. 함께 MT를 갈 땐 역시 야무진 선미가 10원도 낭비 없이 철저히 회비관리를 했다. 그와 더불어 여진이와 둘 만의 은밀한 '비밀'도 있다.


  우린 둘 다 다른 짝지가 있지만 그들 몰래 둘 만의 '비밀 여행'을 즐겼다. 기차 여행을 하고 1박 2일로 민박을 잡았다. 다른 여행객들이 모닥불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캠프 파이어를 즐기는 사이 가난한 우린 민박집에서 김치 얻어다가 슈퍼에서 소주에 컵라면 튀김우동과 새우탕면, 새우깡을 안주 삼아 밤을 지새웠다. "크아~! 목을 뜨겁게 타고 내려가는 이 달큼함! 역시 쐬주는 첫 잔이 최고야! 크~" 하며 새우탕 라면국물을 알싸하게 들이킨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짜르르한 속을 즐겼다. 얼마나 할 얘기가 많았는지 지루할 틈 없이 그 밤을 지샜다. 그날 둘만의 여행 이후 그 친구가 나에게 웃으며 말한다.

 "우린 이제.. '선'을 넘은 사이! 알지?! ㅋ~"  


  쇼핑몰에서 일하다가 전공인 디자인을 살려 어느 중소기업 신입사원으로 들어간 여진이는 그 후에 만날 여유를 내기 힘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짬이 나면 술잔을 기울였다. 종로 뒷골목으로 가면 '피맛골'이 있었다. 그곳은 서민들을 위한 주점, 음식점들이 피맛골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서울에서 '서민적인 거리'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꼽히는 곳이었다. 조선시대 말을 타고 종로를 행차하는 양반들을 피하기 위해 서민들이 이 길을 걸었다는데 여기에서 '말을 피하는 길'이라는 이름의 ‘피맛골(피마 避馬+골)’이라는 지명이 나온 것이다. 골목 입구를 들어서면 우리는 '마님은 왜 돌쇠에게 쌀밥만 주나?' 라는 주점에 주로 들른다. 소주를 단돈 천 원에 팔고 오뎅국이 서비스로 나온다. 여진이 집이 인천이라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기도 빠듯한데 지하철이 끊기면 시외버스를 타면서까지 우리는 굳건히 피맛골을 지켰다.

 피맛골은 현재 재개발 사업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뉴스를 접하면서 우리들이 모여 술잔을 부딪치던 과거의 추억이 밀려와 씁쓸하다.  


  여진이는 천주교 신자로 성가대 활동에 열심인데 내가 의식 없이 깊은 잠에 빠진 그때 나를 위해 성가대 단원들에게 기도를 부탁한다는 쪽지를 돌렸다. 그리고 그 기록들은 노트로 퇴원 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어쩌면 죽음 앞에서 위태로울 때 내가 다시 깨어난 게 모두의 기도 덕분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피맛골'이 사라졌을 때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그녀가 7년 동안 캠퍼스 커플로 사귀던 남자 친구와 결혼했는데 시댁과의 불화로 1년 만에 이혼한 것이다. 신랑이 '마마보이'였는지 미쳐 몰랐다고 내 앞에서 울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후로 일본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한다고 들었는데 이젠 소식이 끊겼다.


  피맛골이 생각날 때면 그 친구의 소주 첫 잔을 달큼하게 들이켜던 숨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온다.  


 내 마음의 문턱을 넘을 수밖에 없던 녀석이 지금 너무 그립다!

 

하지만.. 당시 사고의 '진실'을

덮으려고만 애쓰던 친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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