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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Aug 18. 2019

'죽음이 나의 운명?!'

마치 '운명'처럼 갑자기 다가온 사고. 그날...

"요즘.. 네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꿈을 꿔. 어젠 무서워서 잠도 못 잤어. 정말이야! 너에게 진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겁이나."


 그때 그가 내게 한 말은 어쩌면..

내게 닥쳐올 운명을 '예언'을 하고 있었는지도.

   (2003.05)


 내가 명동과 동대문 의류 매장을 하던 그 시절은 요즘처럼 '인터넷 쇼핑'들이 활성화되지 못했다. 동대문 '밀리오레'에서 여성 캐주얼 의류와 손가방 등의 액세서리를 취급했는데 옷 스타일이 특이하고 저렴해서 인기가 많았다. 한때 고객들이 줄을 서서 물건을 구매하는 이른바 '대박 집'으로 손꼽혔다. 그러다가 2002년 월드컵 이후 IMF 여파로 소비자들이 구매에 지갑을 점점 닫았고 그로 인해 의류 매장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내가 몸담은 매장도 매출이 많이 줄어 한국이 아닌 태국의 관광 도시 쪽으로 매장을 옮길 구체적인 계획에 들어갔다. 이 곳 오픈 초기 멤버로 애착이 많았던 나는 매장 내의 간판도 수작업으로 직접  제작해 만들었다. 명동 매장에는 '베트남(Vietnam)'. 동대문 매장은 '앤(Ann)'이라는 상호를 썼다. 가게 매출이 점점 떨어지긴 해도  함께 일하는  나보다 몇 살 어린 동생들과 사이가 늘 돈독했다.

  5월 초, 의류 매장을 낸 친구와 매장 동생들 두 명을 이끌고 홍대 앞 클럽을 찾았다. 그곳에서 고막이 터질 듯 크게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에 맞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풀며 시원하게 병맥주를 들이켰다. 그러다가 화장실을 가려는데 어떤 남자가 화장실 가는 길목을 몸을 흔들며 가로막고 있다. 아마 이곳을 찾은 게 오늘이 첨이었나 보다. "저기요, 좀 비켜주실래요? 여긴 화장실 가는 길인데.." 하지만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몇 번을 되풀이해서 그에게 외쳐야 했다. 나중에야 내 말귀를 알아들은 그가 발그레한 얼굴로 말했다. "아, 정말 미안해요! 아.. 하하.." 그렇게 화장실을 나와서 그와 눈인사를 한 후 자리에 돌아와 앉았는데 그가 내가 있는 테이블에 오더니 말한다. "저.. 맥주 좀 사드릴까요..? " 그의 제안에 나는 머릿속에서 재빨리 정리하기 시작했다. '밖에서 맥주를 사겠다고? 친구랑 둘이 온 모양인데.. 동생들까지 같이 가긴 좀 그러네.' 내가 그를 보며 말했다. "잠깐만요, 애들한테 얘기 좀 해볼게요." 순간 그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아..?! 네~ 그러세요.. 하하" 결국 동생들을 먼저 보낸 나와 친구, 그 남자 일행들은 다른 맥주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클럽 분위기와는 달리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나보다 4살 많은 그는 '일러스트 디자이너'라고 했다. 유쾌한 그와 이야기를 하며 나도 디자인에 관심 많은데.. 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들과 헤어지려는데 그가 우리 집 방향을 묻더니 택시를 잡아주며 기사에게 택시비까지 넉넉하게 건넨다. 그의 그런 따뜻한 메너에 앞으로도 계속 만날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 후로도 우리의 만남은 자주 이어졌다. 며칠이 지나 편해진 그에게 물었다. "그때 맥주를 사겠다는 얘기를 어떻게 했어요..? 수줍음도 많으면서.." 그러자 한참을 뜸 들이다 했던 그의 대답에 내 얼굴이 빨개졌다. "아, 그땐 그 클럽에서 맥주 한 잔 사겠다는 말이었는데 나가자는 걸로 알아서 좀 황당했어. 헤헷" 그 말에 내가 민망해하자 우리가 이렇게 되려고 그때 그랬나 보네? 하며 그가 내 볼에 쪽~ 뽀뽀를 한다.

    그날은 평소보다 일이 착착 진행되는 게 업무를 예상시간보다 일찍 마치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요즘 들어 매출 저조로 엉망인 친구 기분을 풀어주고 싶다. 그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대학로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약속 시간이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걱정돼서 그녀에게 전화해보니 나와의 약속을 까마득히 잊었다는 목소리.  "아쿠, 진짜 미안해! 오늘은 갑자기 손님들이 몰리네~ 웬 일야! 내가 다음번에 진짜 맛난 거 쏠게! 오늘은 미안~"  그 말을 듣고 기분이 허탈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날 친구네 옷 가게 매출이 대박이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때 그냥 집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집으로 그냥 들어가기엔 시간이 너무 이르고 왠지 섭섭하다.  결국 남자 친구를 불러냈는다. 그때  나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예전과는 달리 너무 굳어있다. 잠을 설친 듯 초췌한 그의 모습에 불러낸 게 괜시리 미안해졌다. 그와 대학로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는데 그가 마음속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 요즘... 너무 무.. 무서워! 네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꿈을 꿔... 요즘.. 그래서 새벽에 자꾸 잠을 깨.." 그의 말을 듣고 내 기분은 별 상관없었다. 하지만 불안해 쩔쩔매는 그를 보니 마음이 왠지 편친 않다. 일찍 헤어지기로 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날 더 일찍 귀가할 이유는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집 근처에 이르렀을 때, 핸드폰으로 전화 통화하며 그를 안심시켰다. 이제 길만 건너면 우리 집이야. 그리고 엄마와 집 근처라고 통화를 마쳤다. 이제 횡단보도.   


    바로 그 순간이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정리할 만큼...

 끔찍한 일이 벌어진 건.ㅠ

                               (200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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