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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Aug 20. 2019

'퇴원 신고식'을 하던 날 ㅠ

퇴원 후 거울 속에 너무 낯선 여자가 나를 보고 있다.ㅠ

  '퇴원만 하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갈 거야!'

그렇게 버텨온 병원 생활.

 퇴원하고 나니

 '신고식'을 제대로 한다.                          

    -2004.03 퇴원 신고식 ㅜ



   일반적으로 병원에서는 수술, 비용이 많이 드는 치료 외에 입원만으로는 한 곳에서 오랜 기간 머물기 힘들다. 내 경우 치료받아야 할 곳이 많아서 집에서 병원까지 이동이 쉽지 않기 때문에 병원 생활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러 병원들을 전전하며 장기 입원을 해야 했다. 눈이 불편해지면서 안 그래도 후각이 예민해졌는데 병원 냄새가 너무 지겹다. 환자복은 물론이고 매 끼니마다 나오는 환자식에도 병원 냄새가 스며있다. 이듬해에 드디어 첫 퇴원(?)을 하게 됐다. 오랜 입원 생활로 정이 든 나를 보내는 간병인 이모가 눈시울을 붉히지만 나는 애써 못 본 채 한다. 이제 퇴원일을 일주일 남기고 속으로 카운트 다운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7일, 6일, 5일... 3일, 이제 바로 내일! 퇴원을 하면 일단 머리 스타일부터 정리해야지.. 사고로 뇌손상을 입어 병원에서 박박 밀린 머리 스타일을 그대로 길러서 이제 단발머리가 되었다. "맨날 염색, 탈색에 머리를 못살게 굴더니 이제 제대로 머리가 나네?"  미용실에 가겠다는 내 계획에 엄마가 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 이제 엄마와 친구, 지인들은 다 알아볼 수 있게 됐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 높아진 음성은 아직 본래의 저음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더 밝히기 싫은  게 있다. 바로 '기억력 감퇴'다. 뇌손상은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그래도 정말 감사한 일이 생겼다. 병원에서는 앞으로도 휠체어를 사용해야만 한다고 했지만 부축을 받으면 이제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산산이 부서진 골반이 안정적으로 굳어져서 걷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아직 오른쪽 다리의 뼈 손상으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혼자 일어서기 힘들다. 오빠와 아빠의 부축을 번갈아 받으며 퇴원을 했다. 그간 오랜 병원생활에 처분한다고 해도 이삿짐이 꽤 많다.

   내가 태어나 학창 시절은 물론 직장 생활까지 하던 강동구에서 치료기관과 가까운 관악구로 집을 이사했다. 관악구엔 식구들도 아는 지인들이 없을 텐데 순전히 나 때문에 삶의 터전까지 바꾼 그들에게 좀 미안하다. 새로 이사 온 집은 모든 게 '화이트'로 깨끗하다. 내 방의 벽도 친환경 페인트로 칠해졌고 침대 커버, 베개, 식탁보와 싱크대도 온통 깨끗한 흰색이다.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인테리어 공사까지 마친 상태. 사실은 내가 휠체어를 계속 타게 될까 봐 구조를 맞추기 위해 진행했던 공사였는데 다행히 휠체어 생활을 안 하게 되어서 큰 공사는 피했다. 어쨌든 나의 계획대로 미용실에 먼저 들렀다. 제법 큰 구조의 건물에 미용사들이 꽤 많은 곳이다. 엄마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잡았다.


밝은 미용실 조명 아래에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앞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 후로 내 얼굴을 이렇게 찬찬히 뜯어보고 관찰하긴 처음이다. 거울 속의 여자는 이제 전혀 딴 사람으로 변해 있다. 오른쪽 눈꺼풀은 떠지지 않고 얼굴은 퉁퉁 부어있는데다가 뒤룩뒤룩 살찐 몸집이다. 게다가 피부 트러블도 장난이 아니고 얼굴빛까지 잿빛으로 변해있다.


  "저, 손님.. 머리, 어떻게 할까요..?"  내가 거울에 빠진 사이 여러 번 불러도 대답 없는 손님을 보며 남자 미용사가 난감해한다. "아.. 파마해주세요." 그렇게 파마를 말고 머리를 감싸니 피부톤과 찌그러진 눈이 더 볼쌍사납다. 곁에 있는 엄마를 올려봤다.  "나 데게 못 생겼지..?"  그러자 엄마는 헛웃음이다. "건강만 하면 다 이뻐져~" 그렇게 아주 오랫만에 파마를 하고 나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식탁 위에 놓인 컵에 따른다. "주르르륵.." 아뿔싸!? 우유를 따른 곳이 식탁보다! '시각장애'로 이중으로 보이는 시선을 미처 계산하지 못한 탓이다.


 주방에서 나는 소리를 들은 엄마가 방에서 뛰어나왔다. 그리고 난감해서 쩔쩔매는 나에게 괜찮다며 식탁보를 걷어냈다. 이번에 새로 장만한 새하얀 식탁보가 세탁실에 들어갔다. 그걸보며 난 아무런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퇴원을 해도 돌아갈 수 없는 게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더 우울한 일이 생긴다. 퇴원한 딸의 깨끗한 잠자리를 위해 장만한 새 하얀 침대보와 이불을 흠뻑 적셨다. 이번엔 우유가 아닌 내 오줌으로... 잠도 못자고 아침이 돼서야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기저귀를 뗀 후 어린 시절에도 이런 일은 거의 없었는데..


 이제 다 커서 아기를 낳아 키울 나이에 오줌도 못 가리는 내가 참 한심하다. 엄마가 한숨을 내쉬며 침댓보와 이불을 세탁실에 넣었다. 그날 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나왔는데 누군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 앞에서 내색하지 않던 엄마가 속마음을 자신의 언니인 이모에게 하소연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흑.."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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