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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Aug 01. 2019

'세 살 백이' 아이가 되고 '첫 키스?!'

갑작스런 사고로 뇌손상.. 나는 ‘어린 아이’가 됐다!

"여기, 반짝반짝 보석 박아주세요. 여긴 너무 무.. 무서워. 깜깜해요. 보석 좀 박아 줘요. 네..? 저, 저.. 기요..!"


   빡빡 밀어 파르레한 환자의 머리도 제법 자라 올라오고 있다. 이제는 마비로 움직일 수 없게 된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떠지지 않는 오른쪽 눈을 가리키며 아이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오늘도 역시 환자의 외침이 이어진다. 눈에 '반짝반짝 보석' 박아달라고. 제발..


-병상. '세 살 백이로 깨어나다!'-1




  환자는 산산이 부서진 골반뼈를 고정시켜 굳히느라 온몸이 침대에 똑바로 꽁꽁 묶여 고정되어 있다. 그렇게 고정되어 묶인 뼈들이 너무 간지럽고 아파서 마취가 풀리기라도 하면 더 요동친다. 골반에 피가 터지도록 긁어대도 시원함은 잠시 뿐. 아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른바 '침대 감옥'에 갇혀 버렸다. 아프지 않으려면 독한 약을 4시간 간격으로 한 주먹씩 먹고 메스꺼움을 버텨내야 한다. 이제는 환자 본인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고 있다. 선택은 두 가지가 있다. ' 온몸의 뼈가 깨져버릴 듯 아플 것인가? 아님 메스꺼움에 헛구역질, 정신이 헤롱 댈 것인가?' 약을 복용하면 헤롱헤롱 한 정신에 자꾸만 헛웃게 된다. 그나마 독한 약 기운이 떨어지면 온 몸의 뼈들이 부스러질 듯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럴 때 환자를 찾은 지인들이 본인을 보면서 함께 웃다가도 이내 눈물을 훔친다는 걸 느낀다.


  '왜 다들 나를 보면.. 눈물을 흘리지요..?'   말로는 사실 이 상황을 잘 표현해낼 수 없다. 환자가 할 수 있는 생각은 오로지 두 가지다.  '아프거나?, 좀 괜찮아지거나...'  이제 다른 환자들이 자고 있는 병실에서는 본인도 조용히 해야 한다는 걸 안다. 환자는 그날도 한밤 중에 깨어났다. 그렇게 짧은 잠을 깨었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사물이 또렷하게 보이진 않아도 왼쪽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푸르스름한 환자실 조명 빛.. 병원의 약 냄새가 지금도 언뜻언뜻 기억에 선명하다. “저기요... 저기..” 환자가 엄마를 부를 땐 항상 '~저기요'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 어? 깼니? 아파? 약 줄까? 아니면 쌌구나..? 기.. 기저귀 갈아줄까..?”  어린아이의 목소리의 환자가 보호자용 간이침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아직 잠이 덜 깬 엄마를 향해 말했다. “당신이 참.. 불쌍해.. 요.. 불 쌍..." 그러자 환자의 엄마가 보조침대를 들썩이며 배시시 몸을 일으켰다. '한쪽 눈'만 커다랗게 뜬 딸의 눈이 병실의 푸른빛과 어우러져 빛이 나고 좀 무섭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도 이내 손을 내밀어 딸의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엄마가 왜 불쌍해... 이렇게 딸이 옆에 살아있는데.. 엄만 불쌍한 사람이 아니야. 여기 다른 환자들도 있으니까 조용히 하고 자야 해. 어서 자자~"   

  오랜 병원생활에 환자는 이제 '중 중환자실'로 옮기며 휠체어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간병인 '마리 이모'는 아이가 머물고 있는 '여의도 성모병원'의 건물 구조와 병원생활 패턴을 꿰뚫고 있는 그야말로 이곳의 '터줏대감'이다. 환자가 오전에 물리치료를 마치고 병원식으로 점심까지 먹고 나면 오후의 진료시간까지 시간이 제법 길다. 답답해하는 환자와 휠체어를 몰며 병원 내를 구석구석 산책한다. 매점에 들러서 팥빵을 사고 더불어 환자 산책코스인 벤치가 있고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정원을 둘러본다.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천주교 병원인 내부에 설치된 작은 간이 성당이다. 이곳에 천주교를 상징하는 그림액자들이 여럿 걸려있다. 휠체어로 이동하는 환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낮게 걸려있다. 십자가 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그려진 그림을 바라본다. 그리고 갑자기 그 짧은 순간 어떤 생각이 스쳐갔다.  '나도 그림 그리고 싶다!..' 그때 마리 이모가 그녀에게 묻는다. "사고 나기 전에 그림 전공했다면서요..? 엄마가 그러던데..?" 환자는 대답 대신 이제 잘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을 꼼지락댔다. 그렇게 성당 그림들을 관람하는 것으로 병원 나들이는 끝이 난다. 사실 환자가 휠체어를 타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만 해도 그나마 엘리베이터 내에 사람이 있을 땐 불가능하다. 환자의 오른쪽 다리는 뼈가 많이 부서졌고 일부 탈골된 탓에 각목으로 받쳐놓은 상태다. 그래서 승강기 내부 공간을 많이 차지할 수밖에 없다. 만일 운이 좋아 사람이 없는 빈 엘리베이터를 탄다 할지라도 몇 번씩은 돌리고 이동해야 뻗은 다리를 제대로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휠체어 환자'들은 아예 병원 밖으로 이동이 통제되어 있다.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안전을 위해 외출에 대한 규제가 항상 심하다. 하지만 마리 간병인은 주말이 되면 휠체어 환자가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는 '묘책'을 알고 있다. 바로 병원에서 외부로 통하는 '개 구멍'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마리 이모가 '개 구멍'으로 환자가 탄 휠체어를 이동하면 환자의 가족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개 구멍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 환자도 알고 있다. 병원에서 그 순간이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이란 걸. 환자 일행들은 휠체어를 밀며 멀리 건너편에 63 빌딩이 보이는 한강 고수부지로 향했다. 40분가량을 울퉁불퉁한 보도를 건너 고수부지에 도착한 일행은 자리를 편다.  "아~ 다들 수고했어! 이제.. 맛있는 치킨 시켜 먹을까??!"  병실에서 벗어나 상쾌한 공기를 마시니 환자의 답답한 마음에도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꽉 막힌 병원에선 느낄 수 없는 시원함. 이제 다소 차가울 만큼의 상쾌한 공기를 실컷 호흡하고 나니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사실 환자의 보호자 입장에서도 간병인 마리 이모에게 의무적으로 주는 일주일에 한 번의 휴일 말고도 주말에 몇 시간의 자유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딸의 마음까지 보살펴주어서 늘 감사하다고.  

간병인 '마리 이모'의 손뜨게 선물 '삔 통' (2004)

  여자의 남자 친구가 모처럼 일찍 일을 마치고 오랜만에 병실에 들렀다. 최근 그의 모친이 세상을 뜬 후 아주 오랜만에 찾는 병실이다. 그의 얼굴이 좀 수척해 보인다. 보호자에게 인사를 꾸벅하고 병실에서 여자 친구를 태운 휠체어를 밀며 환자의 산책코스를 밟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어선 성당. 천주교를 상징하는 성모 마리아와 십자가 예수 그림이 빼곡히 복도 벽을 채운 곳. 그 앞에서 찬찬히 그림을 보며 환자가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림.. 그리고 싶어. 나도.."  그러자 남자 친구가 환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이제 그림을 그리면 돼지. 너는 할 수 있어!"  그러곤 환자의 감긴 오른쪽 눈에 입을 맞추었다. 움찔하는 환자를 향해 이번에는  남자가 환자의 입술에 자신의 입을 갖다 대고 아주 오랜만에 키스를 했다. 근 1년 만의 키스. 어두운 조명 속의 간이 성당이 가물가물해 온다. 남자의 숨에서 담배 냄새가 전해왔다. 사실 그가 어머니를 보내면서 다시 찾게 된 담배다. 아이가 된 여자는 이내 구토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역한 담배 내음에 약물들이 뒤엉켜 올라오는 듯 몹시 구역질이 난다. 갑자기 울컥.. 올라온다!  "우.. 욱..!! 그 그만!! 토나와. 하지 말아.. 요..! 우욱.."  환자의 그런 반응에 너무 놀라 당황한 남자가 급하게 입술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아! 진.. 진짜 미.. 미안해!.."  그리고는 황급히 휠체어 손잡이를 바로 잡아 밀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의 얼굴이 새빨갛다. 그리고 이내 그의 귀까지 온통 붉게 물들었다.


'세 살 백이' 어린아이 지능으로 돌아간 나는 병원에서 놀랄 만큼의 기록을 세우며 점점 깨어나기 시작한다. 제정신을 되찾는다는 것..  그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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