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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Aug 23. 2019

만일 여자 친구가 장애인이된다면...?!

함께 했단 이유로  남자 친구는 '죄인’인가?

 장애를 입은 나를 남자 친구에게 

책임지라  생각은 없다. 그도 나에게 

 이상 '핑크빛 미래' 말하지 않는다.


  -퇴원 후 2004. 봄


 ⁠"여의도 벚꽃축제..? 불꽃놀이도 한다고? 우와! 멋지겠다.. 근데 내가 갈 수 있을까?"  퇴원 이벤트를 만들어 주고 싶은 남자 친구의 계획이다. 그와의 통화에서 말은 기대된다 했지만 내심 불안하다. '내가 과연 갈 수 있을까?' 약속을 하고 며칠 후 그가 나를 데리러 왔다. "... 안.. 안녕하세요..?" 그는 어른들을 살갑게 대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엄마를 대할 때 유독 눈치를 본다. 엄마도 그런 그가 썩 맘에 들지 않은 눈치. 그와 헤어지고 집으로 오면서 났던 사고였지만 사실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순 없다. 내가 친구와 했던 약속에서 바람맞고 그를 불러낸 거였다. 하지만 의식이 깨어보니 마치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다가 난 사고인 양 당시 약속을 어긴 친구는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한참이 흐른 후 친구에게 되물으니 자신은 그런 기억에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 친구에게도 책임을 묻겠다는 것도 아니지만 사실을 덮으려고만 하는 그 친구가 많이 섭섭하다.



   남자 친구는 장남으로  나랑 동갑인 4살 터울인 남동생이 있다. 그리고 교육자인 아버지는 정년퇴임을 하셨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내가 병원에 있을 때 오랜 병환 끝에 돌아가셨으니.. 내가 그와 혼인을 한다면 '남자 소굴'에 들어가 식구들을 뒤치다꺼리하는 '여전사'가 될 거다. 밥 한 번 해 본 적이 없는 나인데.ㅠ  "어.. 오랜만이네. 왔니..? 그런 번잡한 축제에 가도 괜찮겠어? 쟤 아직 힘들걸..?"  오늘도 그를 보는 엄마의 탐탁지 않은 눈초리가 느껴진다. 엄마 입장에선 늘 밖에서 활동하던 딸내미가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겠지만 외부에 다니기엔 아직 불안하다. 게다가 '벚꽃 축제'라니 또 얼마나 사람들이 붐빌는지. 어쨌든 우린 엄마의 걱정을 뒤로한 채 택시를 잡아 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컨디션은 좀 어때? 잠은 편하게 잤어...?" 언젠가부터 나에게 하는 그의 인사가 몸 상태부터 묻는 게 익숙하다. 그리고는 그가 말을 이었다.  "너 여의도 성모병원에 있을 때... 주말마다 우리 몰래 나와서 한강 고수부지 갔잖아~? 거기 갈 때 휠체어 밀면서 생각했어. 퇴원하면 휠체어 안 타고 꼭 여의도 벚꽃축제 가기로... 맛있는 거도 사 먹고 불꽃놀이도 보자!"  이렇게 나를 살뜰히 챙기는 그가 고맙다. 오랜만에 보는 '불꽃놀이'도 기대된다.

  "손님, 입구부터 차량 진입을 못하게 통제하고 있네요. 이제 더 이상 진입이 어렵겠는데 여자분 괜찮으실까요..?"  택시 기사 아저씨가 나와 남자 친구의 대화를 들은 모양인지 걱정을 한다. "네.. 괜찮아요. 여기서 내릴게요." 택시비를 건넨 ⁠남자 친구가 나를 부축하며 내렸다. 주말이라 수많은 인파가 끊임없이 몰렸다. 어두워진 저녁 여기저기에서 닭꼬치도 팔고 순대, 떡볶이, 튀김, 만두, 솜사탕에 알록달록 풍선들..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시끄럽고 정신없다. "어때..? 괜찮아..?"  대답할 틈도 없이 계속 밀려드는 인파를 따라 한 줄로 서서 갈 수밖에 없다. 걷지 않고 잠시라도 쉬고 싶지만 멈출 수 없는 상황이다. 마침내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더욱 몰리는 사람들.. 여기저기 팡팡 터지는 불꽃들을 보니 정신이 몽롱해온다.  모든 불꽃들이 두 개로 뿌옇게 흩어지는 나의 시선. 욱.. 멀미가 난다.  '아, 맞다. 나 '시각장애'였지?' 익숙한 곳에서는 습관처럼 다니지만 낯선 곳에선 나의 장애가 더욱 두드러진다.  "몸 좀 괜찮니..?" 몇 번이고 같은 질문만 하는 남자 친구가 이제 짜증스럽다. 아마도 나의 냉랭해진 표정에 그도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그러든지 말든지 너무 힘이 드니까 나도 모르게 막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나.. 하나도 안.. 안 괜찮아!! 아파 죽겠어! 어두우니까 암 것도 안 보이고 짜증만 나..!!"  속사포같이 터져 나오는 내 반응에 남자 친구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 곳은 택시 진입도 안 되고 큰길로 나가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사온 더럽게 맛없는 떡볶이도 식어빠진 뻣뻣한 닭꼬치의 기름덩어리도 이제 신물이 나서 다 버렸다. '약.. 진통제를 안 챙겨 왔다!'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남자 친구가 나를 보며 소리친다.  "업어줄까..?" 내가 짜증스럽게 그를 노려보며 대꾸했다. "됐어. 앞이나 제대로 보고 걸어!" 그렇게 두 시간을 걸었고 참으려 했지만 결국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아.. 아파.. 죽을 거 같아... 흐흑.." 뒤에서 휘청거리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란 그가 나를 둘러업고 사람들을 헤치며 뛰기 시작했다. "비.. 비켜주세요..! 환자예요~ 저기, 잠시만요!"  그렇게 길가로 겨우 나온 그가 매점의 파라솔 의자를 찾아 나를 앉혔다. "정말 미안해.. 많이 힘들지..? 내가 생각을 잘못했어! 휴~"  차가운 밤공기에 그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엄마에게 핸드폰을 했다.  "응.. 여의도 불꽃 축제 잼나게 봤어. 인제 갈라고.. 응 응,,"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파우더로 두드리며 손거울을 봤다. 그렇다고 걱정하는 엄마에게 데리러 와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다시 택시를 잡아탄 우리는 그렇게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착하기만 한 그는..

먼저 헤어지자는 말도 하지 못한 채 나에게 속해있었다.


마침내 그의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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