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xmas79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긍 Aug 25. 2019

'시각장애'가 생긴 후.

겉모습으론 건강해보이니 감사해야 하나..? ㅠ

  "시금치 무침 왜 안 먹어? 금방 무친 건데.. 너 시금치나물 좋아하잖아?" 밥을 거의 다 먹어가는데 엄마가 줄어들지 않은 시금치 무침을 가리킨다.


 어쩐지.. 자꾸만 참기름 냄새가 풍기더라.

   나는 오른쪽에 놓인 시금치 무침을 볼 수 없다!

         

      -퇴원 후 2004~


   예전에 평범하게 보던 세상이 얼마나 감사한 거였는지 이제야 느낀다. 뇌손상으로 '시각장애'가 왔고 이건 죽을 때까지 회복이 안 된다고 한다. 이렇게 되기 전에는 빛을 못 보는 전맹이 '시각장애'라 생각했는데 안 보이는 것도 여러 가지라는 걸 경험한다. 내가 보는 세상은 오른쪽 시선이 차단된 탓에 오른쪽엔 무엇이 놓이던 시야에 잡히지 않게 됐다. 게다가 오른쪽 눈으로도 기울어지고 겹쳐진 왼쪽 시선을 본다. 그리고 오른쪽 눈의 눈동자가 잘 움직이지 않게 됐다. 왼쪽 눈도 좋지 않은 시력이지만 오른쪽엔 시력은 희미한 상태. 거기에다가 두 눈을 같이 뜨고 보면 시야가 여러 개로 겹쳐 보이는 '복시'가 되었다. '어차피 제대로 못 보는 거 그냥.. 왼쪽으로만 보면 어떨까..?' 초반에는 이런 무식한 생각으로 왼쪽 눈에만 시력을 넣어서 소프트 콘택트렌즈를 착용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왼쪽 눈만 콘택트렌즈를 맞춰 사용했다. 실 뭉탱이처럼 흐리게 보이는 오른쪽 시선은 무시했다.

 '장애이해 교육' 아이들과 그림 그리기 (2014~ )

  "이러다가 나중에 많이 힘들어질 텐데.. 양쪽 눈을 다 사용해야 해요."  안경점 직원의 염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이제 오른쪽 눈이 잘 안 떠진다.  '김 안과'를 찾아 상담했다. 검안 후 나온 나의 시력을 보던 주치의가 놀란다. "흠.. 시력이 많이 약하군요. "  함께 온 엄마가 설명을 거들었다. "제 딸이 차에 치이는 사고로 뇌손상을 입어 시각장애가 생기고..."  상담 결과는 시력 교정이 아닌 눈을 뜨기 위한 수술이 필요하단다. 눈을 뜨게 하는 '외안근'의 기능이 저하되어서 눈을 뜨고 감기가 어려워진 상태였다. '외안근'은 눈 돌림 운동신경으로 안구의 운동이나 동공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뇌신경이다. 여러 가지 원인으로 눈 돌림 신경의 마비가 발생하는데 안검하수, 동공의 확장 등 안구의 불편함을 초래한다고 한다. 나의 경우에 각각의 눈이 서로 다른 물체를 보면서 전혀 다른 두 가지의 시각 정보를 뇌로 보내고 그 과정에서 완전히 다른 물체가 겹쳐 보이는 시각적 혼란이 발생하면서 '복시 현상'이 나타나는 거였다. 시각적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양쪽으로 시각적 정보를 받아들이기를 포기하게 되면 아예 보는 능력이 저하되면서 기능을 점점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 결국 신경 줄을 짧게 절개하는 시술이 필요하다. 쉽지 않은 시술이라는 느낌이 온다. '눈에 티끌 하나만 들어가도 불편한데 눈의 심줄을 절개한다고..?!ㅠ'  며칠 후 수술이 진행됐다.


  "아직 안 돼요! 환자.. 눈 감지 말아요, 왼쪽 눈이랑 감는 속도가 맞아야 해요!" 마취를 덜 한 상태로 수술이 진행되는지 미처 몰랐다. 양쪽 눈이 뜨는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란다. 눈이 먹먹한 게 눈물이 줄줄 흐른다. 계속 심줄을 절개하며 눈을 감는 속도를 맞추는 '고문'이 이어졌다.  "으.. 읍..!! 너무.. 아파요!" 눈이 터져나갈 듯 아려왔다. 담당의가 더 다급해진 목소리. "울면 안 돼요! 눈물이 시술에 방해돼요!"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악몽 같은 시술을 마치고 붕대로 눈을 감싸고 나왔다. 이제 고통이 끝난 줄 알았는데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안대를 끼고 자도 잠을 못 이루게 됐다. 이제 눈을 감을 수 없게 됐으니까.  '눈 고문'은 보름 이상 이어졌다. 결국 눈을 뜨고 감는 속도를 정확히 맞추진 못해도 눈이 감기는 건 피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내려가는 계단이 가장 힘들다. 앞을 잘 못 보게 되면서 처음 접하는 내려가는 계단에서는 잘 넘어지고 다치기 일쑤다. 내려갈 때를 생각해서 자주 다니는 계단은 갯수를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다리 상태는 어쩔 수 없다. 인조뼈와 나사로 채워진 오른쪽 다리는 걸음을 내딛을 때는 물론 특히 내려갈 때 늘 시큰대는 게 아린다. 지하철에서 계단을 이용하는 장애인, 노인들을 위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만 나는 그걸 이용할 수 없다. 겉모습으로는 한눈에 장애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게 싸가지 없게..이런 거나 타고... 쯧쯧~"

노인, 노약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인데 젊은 사람 이용에 불만을 갖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건강상태를 제대로 파악해보지도 않고 그들은 항상 막말부터 쏟아낸다.

  겉모습으론 건강해보이니

감사해야 하나.



매거진의 이전글 만일 여자 친구가 장애인이된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