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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Aug 28. 2019

사고 후 변해버린 인맥들..:

‘그들 중 누가 가장 많이 변했나??!ㅠ’

  "이런 말 해도 되나...? 목소리랑 말투, 행동까지.. 넘 변해서 언니 완전 딴 사람 됐어~ 진짜 깜짝 놀랐네요!"  유독 나를 따르던 동생의 지적질.  

'너 이렇게 싸가지 없어진 거만큼이나 내가 변했겠니..?!'  괜히 모든 게 화가 치민다.

     

  -사고 후 인맥들 (2005~ )



   "나, 안 이상해~?!" 달라진 나의 인사말이다. "응~ 이뻐." 길게 끌지 않으려는 성의 없는 그의 대답. 혼자서는 아직 이동할 수 없기에 남자 친구가 나를 데리러 왔다. 오늘 처음으로 오른쪽에 눈썹을 그려보았다. 사고 후 나의 오른쪽에는 눈썹도 나지 않는다.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그리려니 왠지 어색하다. 사고 나기 전에는 마스카라를 안 하면 외출하는 게 금지라 할 만큼 마스카라, 눈 화장에 공을 들였다. '아이 쉐도우', 속눈썹 뷰러, 속눈썹 고데기, 마스카라.. "지금 가면 좀 일찍 도착하겠다. 그치? 오랜만인데 많이 달라졌을까..?" 주말 오전 11시.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신촌으로 향했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도 벌써 몇 달이 흘렀지만 아직 위치 파악이 어렵다. 하긴, 이제는 처음 가는 곳은 기억을 잘 못하고 길을 잃기 일쑤. 낯선 동네를 구경하다가 골목에 들어서게 되면 길을 잃곤 한다. 빌어먹을.


  어쨌든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정말 오랜만에 함께 일하던 동생 선이를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 사고 이후로 선이를 따로 만나기는 첨이구나. 그녀는 나보다 4살 어린데 원래 다른 의류 매장에서 일하다가 내가 우리 매장으로 영입한 녀석이다. 밝은 갈색의 곱슬 커트머리, 통통한 체형, 깊이 패이는 보조개, 웃을 때 눈이 감기고 덧니가 매력적인 그녀는 나보다 한 뼘은 커도 '언니, 언니~'하며 매달리는 애교쟁이. 금요일 저녁 '클럽데이'가 되면 선이의 친구 희영이와 내 친구와 함께 홍대 클럽을 찾곤 했다. 클럽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거나하게 취해서는 나에게 그녀만의 반달눈으로 덧니를 보이며 말한다. "난 언니가 우리 친언니믄 진짜 진짜~ 좋겠어요~! 헤헷.."  친하게 지내도 늘 존칭으로 언니 대접을 하는 그녀가 귀여워서 술 값도 아끼지 않았다. 그녀의 집에서는 두 동생이 있는 맞이인데 내 앞에서는 늘 막둥이에 귀염둥이다.


  약속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한 남자 친구와 나는 한참동안 액세서리 가게를 기웃거렸다. 귀에 구멍을 넓히는 '피어싱'을 하던 예전엔 액세서리에 관심이 많았다. 사고 전 귓불에 6mm 구멍을 넓힌 상태였는데 다시 구멍을 막을 땐 한 번에 작은 사이즈로 막으면 반드시 상처가 생긴다. 6mm, 5mm, 4mm.. 2mm.. 이런 식으로 상태를 점점 좁혀야 나중에 흉이 안 남는다. 오늘 만날 선이도 4mm 넓혔던 피어싱을 제대로 못 막아서 찢어진 것처럼 귓불에 흉이 남았다. 나의 경우엔 그 작업 없이도 소염제와 독한 약물들을 하도 많이 복용해서 6mm 넓힌 피어싱 자리가 상처 없이 깨끗이 아물어 작은 구멍만 남았다. 아주 오랜만에 피어싱이 아닌 일반 귀걸이를 골랐다. "나.. 이거 사 줘~.."


 약속시간보다 15분 늦게 도착한 그녀를 만났다. "언니, 진짜 진짜 오랜만이에요~! 이제 몸 좀 회복됐어요? 호홋.." 사고로 이렇게 되고  내가 일하던 두 곳의 의류 매장도 접은 상태라 매장에서 일하던 점원들도 자연스럽게 제 갈 길을 찾아 흩어졌다. 선이도 다른 일자리를 구했다고 들었다. 우린 일식 메뉴를 파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참 동안 점심을 맛나게 먹다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그녀가 한참 동안이나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나를 보는 이 눈빛. 내가 정말 싫어하는 눈빛인데 뭐였더라..? 그렇게 나를 보며 하는 소리.  "이런 말 해도 되나...? 언니 목소리랑 말투, 행동까지.. 넘 변해서 완전 딴 사람 같아요~ 진짜 깜짝 놀랐네요.ㅎㅎ;"  유독 나를 따르던 동생의 지적질. '너 이렇게 싸가지 없어진 거만큼이나 내가 변했겠니..?!' 괜히 모든 게 화가 치밀었다.



  차를 마시러 카페로 자리를 옮겼는데 몇 살 어리다는 이유로 당연하게 모든 걸 받아먹는 그녀가 얄밉다. 게다가 나를 낯설게 대하는 그 눈빛이 너무 싫다. "차 정도는 살 수 있지 않니?" 그러자 그녀가 또 반달눈으로 덧니를 보이며 말한다. "모르고 지하철 패스밖에 안 가져왔네요~ 헤헷.. 왜 그래요?~ 언니답지 않게..."  '언니답지 않게...?' 나는 그녀 말처럼 언니답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남친 벗겨먹는 걸 당연하게 생각할 텐데.. 나를 보는 그 달라진 눈빛 때문이었을까? 그녀와 헤어지고 돌아오면서 핸드폰에서 그녀의 연락처를 쓸쓸히 삭제했다. 혹시 내가 모르고 다시 연락할까 봐.


  "너.. 진짜 딴 사람 같아!" 다른 친구들을 만나도 비슷한 반응들. 예전처럼 술을 마실 수 없게 되니 술과 함께 엮인 인맥들은 자연스럽게 정리되어 간다. 그들과 낮에 차를 마시며 노닥거릴 여유는 없으니... 그렇게 모두들 변했다. 그리고 어느순간 그들 중 가장 많이 변한 사람이 누군지 깨달았다.


그건 바로...

  '나였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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