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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Aug 30. 2019

나를 친 음주운전자에게 '축복의 기도'

갑작스런 나의 사고 충격으로 엄마에게 '실명 위기'가 왔다! ㅠ

음주운전자 당신 말고

앞으로 태어날 당신의 자녀들에게 하는

 나만의 '축복의 기도.'


파란 불에 길을 건너다가

보상능력 쥐뿔도 없어 옥살이로 죗값을 치르는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당신이 나에게 베푼 사고만큼..

꼭 그만큼만 자녀가 고통 받는 걸

 곁에서 지켜보길.


어느새 내가 이런..

 '끔찍한 기도'를 하고 있다.    


    -엄마의 눈 수술 (2004~)


     

"잠깐 안 보이는 것도 이렇게 답답하고 괴로운데.. 넌 얼마나 고통스럽니..? 휴.."  갑작스러운 나의 사고로 힘든 고비들마다 엄마는 이미 여러 차례 죽음을 경험했다. 이제 딸이 중환자실과 오랜 병원생활을 하고 퇴원을 하니 긴장이 풀린 지금 그때의 후유증이 엄마에게 찾아오기 시작한다.  "요즘.. 머리가 너무 자주 아프고 눈까지 열이 차올라. 아무리 약을 먹어도 이제 효과도 없어. 나 어떡하지? 쟤 혼자선 병원도 못 가는데. 휴.."  약사인 이모에게 진통제를 지어먹던 엄마가 더 이상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전화를 했다. 엄마를 걱정하며 이모가 하는 말이 스피커폰을 통해 나에게도 들려온다. '요즘 이사에 딸내미 퇴원시키느라 네가 몸이 많이 지쳐서 그런가부다~ 이제 좀 맘 편히 쉬어~' 엄마가 복용하는 진통제의 강도가 점점 높아지는데 속만 쓰릴 뿐 그닥 효과가 없다. 그렇게 2주가 지났다. 엄마는 그동안 잠 한숨 이루지 못한다. 나의 갑작스러운 사고, 계속되는 위독한 투병생활로 엄마는 내가 입원해있는 1년간 제대로 먹지도 잠을 이루지도 못한 채 버텼다. 오직 모성으로.



몇 시간 후 이모에게 연락이 왔다. '그 증상. 빨리 안과에 가봐야 한대! 나랑 함께 일하는 약사도 너 같은 증상이 있었는데 진통제로 한 달을 버티다가 병원에 늦게 갔더니.. 그이는 한쪽 눈이 실명됐어! 일단 빨리 병원 가봐!' 이모의 다급한 전화에 엄마는 덜컥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이내 가까운 안과를 찾기 시작했다. 안과에 도착해서 검진 절차를 밟아 눈에 안약을 넣으며 여러 가지 검사가 진행됐다. 검진결과를 보더니 담당의가 심각하게 말한다. "환자분 눈 상태가 많이 안 좋네요. 지금 이 상태는 '노안'이라 하기엔 아직 젊고.. 어떤 충격과 스트레스로 온 거 같아요. 일단 수술을 해보는데 실명 위험이 높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딸이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는 걸 곁에서 지켜보며 엄마인 당신도 함께 죽었다. 이제 내가 기적처럼 살아나고 퇴원을 하게 되니 그동안의 긴장이 풀린 건지 후유증이 찾아왔다. '내가 제대로 못 보게 된 세상, '시각장애'를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고 안타까워했던 엄마도 앞을 못 보게 된다고..?!' ㅠ

엄마가 눈 수술을 위해 입원을 서둘렀다. 망막 '유리체절제술'이라고 한다.  '유리체절제술'은 쉽게 말해 유리체에 젤을 빼내고 물로 새로 채워 넣는 시술이다. 원래 노화가 시작되면서 젤의 형태에서 물의 형태로 바뀐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의 경우는 스트레스로 인해 빨리 진행된 듯하다고. 기존 있는 유리체를 제거하고 인공 유리체를 삽입하는 시술. 시력 손상이 오고 심한 경우 실명위험이 따른다. 너무 걱정되지만 그렇다고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 내가 간다고 해도 도움은 커녕 신경만 쓰일 듯. 병원을 찾으니 엄마는 많이 부어있다. 체내에 수분 배출을 차단시킨 상태라고 한다. "엄마 이러니까 환자 같지 않고 막달 '산모'같지 않니? ㅋ~"  그 특유의 엄마표 유머가 살아나서 나도 웃긴 하지만 웃음 뒤가 공허하다. 며칠 후 힘든 수술을 마친 엄마병실로 아빠와 함께 다시 찾았다. "보이는 건 좀 어때요..?" 나의 질문에 엄마가 다시 힘없이 대답했다. "아직.. 세상이 온통 빨 개 보여.." 초점이 맞지 않고 당분간은 많이 힘이 들 거란다.  내가 정기적으로 받는 치료는 잠시 중단하기로 했다. 아직 나 혼자서는 이동할 수 없으니. 추후에 빨간 세상은 좀 나아졌다고 해도 시력저하로 이제 제대로 또렷이 볼 수는 없게 되었다. 그걸 시작으로 여러 가지 증상들이 엄마의 후유증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고가 나고 장애인이 되건 죽게 되건 그 당사자 보다 그를 아끼던 사람에게도 더 큰 아픔과 고통이 따른다는 걸 느끼게 된다.



"다른 건 제대로 못 보면서 왜 먼지들만 눈에 보일까..? 에휴~"  며칠 동안 입원과 수술 후 퇴원을 한 엄마가 '주부 정신'을 놓지 못한다. 아직 체력회복 못했는데 청소라니. 어이구.ㅜ  내가 쓸쓸히 엄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사고 충격으로 엄마 눈이 이렇게 된 거라지..? 내가 그냥 차라리 그때 병원생활 길게 안 하고 바로 죽었으면 이렇게 안 힘들텐데. 휴."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엄마다 닦던 걸레를 팽개치며 화를 버럭 낸다. "너 그때 사고로 즉사했으면.. 엄마도 바로 너 따라갔을 거야! 괜한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사고당사자인 나 말고도 나를 아끼는 이들에게 이렇게 고통이 온다. 사고를 당한 당사자와 더불어 가족들도 심리치료가 필요하다. 그 음주운전자는 과연 느낄 수 있을까? 아마도 그가 구치소에 수감되었을 때 용서를 구하며 쓴 편지에 20대 초반이라는 음주 운전자를 보상 없이 풀어준 후 단 한 차례의 연락도 없는 걸 보아 상상도 못할 듯. 내가 뇌손상으로 ‘아이지능’이었다가 점점 어른으로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막연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음주운전자 당신 말고 앞으로 태어날

당신의 자녀들에게 하는 나만의 '축복의 기도.'


파란 불에 길을 건너다가 보상능력 쥐뿔도 없어 옥살이로 죗값을 치르는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당신이 나에게 베푼 사고만큼.. 꼭 그만큼만 자녀가 고통 받는 걸 곁에서 지켜보길.     


어느새 내가 이런..

'끔찍한 기도'를 하고 있다.


(당시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피해 망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ㅠ)
-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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