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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Dec 08. 2019

#장애이해 누구나 ‘볼펜 드로잉’ 작가 될 수 있다?!

-8개월간 1878장의 그림을 그리고 나니 모두들 나를 작가라 부르더라!

 예전에 평범할 때는

 빛을 전혀  느끼는 ‘전맹’이어야 

시각장애라 인식했다.


 하지만 ‘시각장애에도 

종류가  다양하다는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사고 후 내가 보게 된 세상이

  특별해졌다.   

-비스듬해도 따스하게.

아프겠네. 쯧쯧... 내가 죽기 전에 

 눈을 고쳐놓고 가야  텐데. .”


생채기에 소독약과 연고를 발라

밴드를 갈아주던 엄마가

쓴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한다.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니..     

부딪치고 다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다친 모습에 엄마가 가장 마음 아파할 걸 알기에

말하고 싶지 않지만 말할 수밖에 없다.     

이제 이 손으로는 밴드도 제대로

붙이지 못하게 됐으니.    

      

“걸어 다닐 때 넘어져도

 몸을 지탱할 수 있도록

안내 지팡이를 갖고 다녀요!”


자주 넘어지는 나를 안타까워하던

지인이 이런 충고를 한다. 시큰둥한 나의 반응에

본인이 사용하던 ‘등산 스틱’까지 주겠단다.     


‘헐. 편치 않은 이손으로

 이제 등산 스틱까지 짚으라고?’     

지금도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불편한 시선에 예민한데 어쩔.     

물론 마음 써주는 건 고맙지만      

이럴 땐 참 난감하다.          


또 중년의 엄마의 어떤 지인은      

내가 빨리 처분해야 할 ‘재활 쓰레기’라도 되는 양

빨리 시집보내 해치우라(?!)는 말까지

거침없이 한다.          


역시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신경 쓰는 듯하는 당신들의 호의에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겐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되는지를.               


사고로 입원했을 당시

나의 오른쪽 눈은 늘 감겨있었다.  

눈을 다쳐서가 아닌 머리를 다치면서      

좌뇌에 피가 차서

오른쪽 신체기관들이 망가졌단다.   

        

몇 년 후 수술로 눈을 뜨기는 수월해졌지만

시력은 그대로 많이 저하된 상태.   

             

그렇게 뜨게 된 눈으로

 이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으니      

뇌 손상에 의한 ‘복시(이중 시)’다.    

           

‘복시’란...? 의학용어로

한 개의 물체가 둘 이상으로 보이거나      

그림자가 생겨 이중으로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나의 경우는 두 눈의 상(像)이

겹치지 않아서 생기는 양안 복시라고.  


              

뇌를 바꾸지 않는 한

안구 수술로는 회복이 불가능하다.

늘 이렇게 마비되는 오른손처럼 말이다.               

눈이 이렇게 된 후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드디어 일반 일러스트 학원 수업을      

받게 되었는데 또다시 사고라니. 휴..               


어쨌든 이번 기회로      

그림을 기초부터 찬찬히 밟아나가야겠다.     

마비되는 손도 움직일 겸.               

              이제 다시 시작이다.
    가즈~아!                          


“그림 100장을

 어떻게 채워요?”   

내가 싸 온 양파 치즈 토스트를 먹던

김 강사가 내 물음에 답했다.          


“그림을 그릴 소재가 얼마나 많은데요?

먼저 본인 주변 사물들을 한 번 쭉 돌아보세요.

알죠? 오늘은 첫날이라 봐드리지만 담부턴     


100 그림 없이는 절대 없습니다.     

.. 연필  자루부터 

그림으로 보여주세요!”             


집으로 돌아와서는 김 강사 말대로

내 주변의 사물부터 찾아보기로 한다.     

아직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선에 힘이 없다.     

처음엔 그림 소재의 크기도 작아야

형태를 잡기 수월하다.      


종이 용지의 크기도 A4 사이즈보다 작게 시작했다.      

첨부터 너무 큰 곳에 그리면 채워내길 막막하니.

0.07mm의 유성 볼펜이 선을 쓰기 좋은 듯.

(어쩌면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               


간단한 소품들은 모두 찾아 그리게 되었다.

연필, 지우개, 연필꽂이, 화장품, 책상 사물들로

100장이 채워졌다. 3주가 걸렸다.               

-사물 볼펜 드로잉

볼펜 드로잉에 중요한 게 있다.     

외부형태 라인을 먼저 그린 후

세부 묘사를 해야 한다는 것.

지우개를 사용할 수 없으니      

틀리고 기울더라도 다시 하지 말고     

끝까지 자연스럽게 담아야 한다.                


소품들을 그리고 나니

그다음엔 아기를 그려보란다.  

   

어른과 아이들의 체형 등분도 차이가 난다.     

어른들의 비율 6~8등분에 비해      

아이들 체형은 3,4등분.          

아이들 모습은 그리기에 부담이 없다.


아이들의 해맑은 사진들을 찾다 보면서

그림 그리는 나의 기분도 좋아지니까.               

“아기들은 귀 위치도 어른에 비해

낮게 설정해야 합니다. 신체 부분이 아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담아보세요.”


그리고 가장 간편하면서도

그림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모델이 있다.     

그건 바로 자신의 ‘손’이다.     

손이 지닌 주름들마다 표정이 달라진다.     

평소에 재미없는 소재라 생각했는데

손을 계속 그리다 보니 여러 가지 표정이 담기고

그리는 순간들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담긴다.          

100장의 그림 중 그 주에

가장 잘 된 작품엔 특별한 상이 주어진다.     

“이번 주의 베스트는...

(두구 두구~) 요거네요!”     


베스트 작품에는 ‘별표’가 주어진다.

(이거 꽤 중독성 있다는ㅋ)   

        

-그주의 베스트 ㅋ

“미긍 작가는 고전적인 동화작업보다..               

재미있는 캐릭터와 간단한 소품, 위트 있는

 짧은 글을 담아내는 편이 좋겠네요.”                


그렇게 나온 나의 첫 캐릭터는

‘You can do it.'의 줄임말 '두 잇'캐릭터 다.     

친오빠와 가까운 친구의 아들 도현이를

뭐든지 해낼 수 있는 캐릭터 ‘Do it'으로 담아보았다.                

이렇게 귀엽고 재미있는 캐릭터를 만드니 신이 나서

100장 숙제에 힘이 드는 것도 잊게 된다.    

           

유아기부터 유년기까지 도현이 모습과      

가족 간의 이야기를 ’ 두 잇‘으로 담았다.                    

사실 두 잇 캐릭터는 내 안에 잠재된 아이 감성이다.      

연거푸 힘들기만 한 나의 상황에

해주고 싶은 말들을      

‘두 잇’에 담아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앞으로 뭐든지 다 괜찮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꿈들.. 아이의 사진을 보며

캐릭터를 만들고 두 잇과 함께 나도 웃고 행복했다.          


’ 두 잇 시리즈‘로 100장 드로잉을

점점 즐겁게 채워냈다.     

-비스듬해도 따스하게.(2012)

                  

그림을 통해 점점

 나의 생각에 집중하게 되었다.   

                 

 뉴스나 신문은 그다지 관심 없었는데...      

인터넷 신문으로 확대해서 보면서

 기사 내용을 토대 캐릭터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최근 관심이 많아진 중도 시각장애에 대한 이야기도 그림으로 담게 되었다.     


내가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활동하던 시절..(2007~09)               

당시 ‘모 대기업’에서 지원하는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쿠키 만들기’ 이벤트에 참여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너무 다르다.                


그들이 시키는 대로

준비된 반죽으로 만드는 시늉만 하고     

기념사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주문한다.     


이미 만들어진 쿠키가 나왔고 나중에는               

인사도 없던 여직원들과 기업의 깃발을 흔들며     

 사진자료를 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대체 누구를 위한

 지원 이벤트..?'           


이렇게 허울뿐인 '복지정책’이 아닌     

중도 시각장애인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현실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본다.          


'하늘이의(가명)

학교  100m 여행'


기사 속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     

시야가 점점 좁아져서 결국 앞으론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다고.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알게 된     

헬레나 언니와 같은 증상이라서 더 마음이 쓰였다.     


선천적 시각장애는 시각장애에 필요한

교육을 학습하고 그들만의 소속감으로

큰 힘이 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닥친 어둠이 얼마나 막막할까..?     

기사를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으로

길을 안내해 주는 '활동 도우미'는커녕

안내견의 도움도 없이..     


하늘이는 오늘도 다니던 학교를     

여행 가듯 불안하게 등교한다. (2011)

            

-'하늘이의(가명) 학교 앞 100m 여행'

                 

여름휴가 없이 다리 치료와

그림 숙제 병행으로 그림 실력도 탄탄해지며

점점 그림에 나의 생각과 감정을 싣게 되었다.          


그림 작업은 눈 뜨자마자

이른 새벽에 진행되는데

한여름에 그림을 그리다 보면

아무리 선풍기를 틀어도

해가 뜨면 그림까지 땀으로

눅눅하게 젖어든다.  

    

결국 팔꿈치와 종이가 닿는 면엔

 땀받이 누런 종이타월을 깔았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땀으로 뭉개진      

종이타월을 개운하게 걷어내었다.   

             

8개월이 지난 어느 추운 날

김 강사가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이제 작업실에

더 이상 안 나와도 돼요.

사실 그림 100장은 학원생들 모두에게 했던

공고였는데 100장을 한 번 이상..

채워 온 학원생은 미긍이 처음이에요."  

    

김 강사의 끝인사에 너무 감사하면서도 아쉬웠다.

그를 멘토로 삼고 싶다는 나의 말에

딱 잘라 거절한다.          


"아니요.  누구도 

미긍 그림의 멘토는   없습니다.     

본인 스스로 여기까지 올라온 거예요.     


이제 자신을 믿으세요!"


결국 나는 그렇게...
비스듬해도 따스한 세상을 담는
그림 작가가 되었다.    
 (8개월간의 기적 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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