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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Dec 17. 2019

목발에 피어난 ‘복숭아꽃’

-그동안의 아픔이 그림으로 나오면서..내 감정이 이상해지기 시작한다.ㅠ

       ‘왜 하필.. 나야?!ㅠ’     

만약.. 그때 그 친구가 나와의 약속에서     

 나를 바람 맞히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니면 바람맞았더라도...      

그냥 집으로 곧장 들어갔더라면...?     

 그것도 아니면 그 시각에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기억을 되씹어봤자 

아무 소득이 없다는 걸 잘 안다.     

그걸 알면서도 나를 이렇게 만든 

그날의 상황을 자꾸 돌이켜본다.

               

그날 나를 바람 맞힌 친구는 

그 사실을 애써 모르는 척 외면하더라.      

그렇게 나와의 인연을 끊은 채 

시집가서 알콩달콩 아주 잘 살고 있는 듯.  

              

물론 그 친구에게 

책임을 물으려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진실을 외면하는 그녀의 모습에 

너무 실망스러울 뿐.  

             

그날 나를 친 음주 운전자에게     

 저주의 기도를 아무리 되뇌어 봤자

 다친 본인만 억울하다.      


과거 뇌손상으로 ‘아이 지능’이었다가

    점점 어른으로 깨어나면서 

반드시 거쳐야 했던

 ‘성장 통’ 이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용서’란...?      

지은 잘못을 꾸짖지 않고 덮어주는 것이란다.  

    

하지만 역시 용서는 사전풀이처럼 

간편한 일이 결코 아니다.

              

누군가는 용서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말했다.      

누구도 자신에게 상처 입히는 일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원치 않았던 

과거의 일에 집착하면 

현재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데 

감정을 다 쏟아붓기엔

 마음에 여유가 사라지니 말이다.      

용서는 과거에 갇힌 나를 꺼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사실 목발에 피어난 복숭아꽃으로

그림을 표현을 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목발을 이용해본 적이 없다.

     

목발을 짚어 무게를 의지하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인 줄 미처 몰랐다.      

마비된 오른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혼자 굴려본 적도 없다.      

나는 평생 누군가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야 할 거라고 했다.     

         

아마도 목발을 짚는 일이 수월했다면..    

 다시 걷기 위해 그렇게 악착같은 노력도 

덜했을지 모른다.  

    

어쨌든 장애를 극복해나가면서

현재 새로운 길을 열게 된 셈이니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왜 하필...?’이라는
불행과 절망에서
 ‘~그래도’로 바뀌게 된 기적.     


 생각해보면 단순하면서도

마치 이미 정해진 운명과 같아서 

소름이 끼친다.   

            

눈을 다쳐서가 아닌데 뇌손상으로     

 시각장애가 생겼고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그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좌 뇌 손상으로

 오른손은 지금도 마비가 진행 중이다.      

오른손을 사용하기 위해 그렇게 시작한 그림이

 놀라운 일을 만들었다.

               

단지 본인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글쓰기와 그림으로 지금은

다른 힘든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도 

위로를 준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값진 일인가?  

             

절실히 그림을 그리던

나의 이야기를 언론에서 

주목하기 시작했다.   

  

  KBS 9시 뉴스에

 여성 ‘시각장애인’ 일러스트레이터로 소개되었다.     

 인터뷰한 걸 본 출판사 측에서 연락이 왔는데

어린이 동화에 들어갈 삽화 제의가 온다.     


 동화의 내용은 '캔 꼭지'를 모아 

불편하고 힘든 이웃에게 휠체어를 선물하려는 

아이들의 따뜻한 이야기.     

(과연 이런 이런 아이가 실제로 존재할는지.. 쯥;)   

   

장애인식 개선에 대한 응모작이라

그림작가도 장애인 작가를 원했나 보다.   

            

어린이 동화 ‘캔 꼭지 기동대’의

글 작업도 휠체어를 이용하는 고정욱 작가다.   

   

누군가의 글에 삽화를 넣는 작업도 처음이거니와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동안의 작업이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작업인

 ‘볼펜 드로잉’ 위주였기에 더 그러했으리라.    

 

일단 제목에 등장하고 큰 비중을 차지하는

 '캔꼭지'를 여러 개 직접 그려보았다.      

그다음엔 동화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배경들을 바쁘게 담아내고..     

-출동 '캔 꼭지 기동대' 출판 (2014)
 이 작업을 통해 참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사실 동화에 들어갈 글씨가 작았더라면
 읽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텐데      
다행히 어린이용이라 글씨가 큰 편이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감성이 되는

 동화 삽화를 담는다는 것도 참 매력이 있다.               

첫 개인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삽화를 

함께 작업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렇게 작업하며 이어온 인연으로 

고정욱 작가를 통해 값진 인맥들을 소개받았다.

그리고 나의 글에 그림을 담아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나의 마음을 출판사 

실장을 통해 전해보았는데..   

            

"어머.. 미긍 작가님,
솔직히 출판사 입장에서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으로 책을 제작하기에도
 적자를기 힘들어요~    

그냥.. 이번처럼 
그림 삽화 작업만
 해주시면  될까요?!"   
  

그건 됐다. 하긴.. 그림동화를 보는

 아이들 수도 현저히 줄어들었으니..      

위험부담을 안고 책을 내기에는 

어려움이 클 것이다.   

            

그동안 ‘작가’는

특별한 누군가만 하는 거라

나와는 관계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일어난 상황들이야말로

 본인을 ‘특별한 누군가’로 만들었다.  

    

이런 나의 작업을 보며

힘을 얻을 누군가의 존재가 있다는 걸 

의심하지 않기에     

 나의 글과 그림으로 채워진 

책에 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전에 함께 작업했던 출판사도 역시

그림에만 호감이 있지 

나의 책을 내는 것에는 반대하는군. 휴.               


결국 스스로 해보기로 한다.    

 

 ‘한국문화 예술 위원회’의

장애인 작가 지원을 받아 나의 첫 번째 책

 ‘아름다운 긍정 미긍’을 펴내게 되었다.(2014)    

 

지원금을 소진도 그 해안에 마쳐야 하고      

모든 자료와 영수증이 있어야 하기에 빡빡한 일정을 맞추기 벅찼다.   

   

'광대의 꿈', '미긍 세상',

'아이세상', '어른 세상'으로 구성되어      

 그림 중심의 짧은 글로 책을 담아냈다.


 당시엔 숙제를 마쳤다고 후련했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면 첫 책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제 나의 얘기를 

천천히 뱉어내는 작업을 

SNS로 올리고 있는데     


 다른 힘든 이들에게도 

힘이 된다고 하니 나도 정말 용기를 얻는다.  

   

 이렇게 조금씩 나의 이야기를 

되짚는 작업도 사실은 두 번째 책을 

제대로 내보기 위함이다.  

              

나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이며     

 감동을 주기 위해 억지로 꾸며낸 것이 아닌     

 '실화'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커진다.    

           

사실 내가 죽음의 문턱에 있을 때의 상황을     

 엄마가 나를 보는 시점에서 글로 담아내며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믿기 힘든 참 신기한 일이 생긴다.     

 '용서' 한다는  본인의 상황이 

모두 제자리를 되찾는     

 편한 상태여야 한다고 무작정

 보류해왔는데 언젠가부터     

 나를 친 음주운전자 그 작자를...      

‘용서’하기로 한 것이다!ㅠ    

           

최근 SNS로 올린 

글에 긴 답글이 올라왔다.     

‘남의 글 잘 읽지 않는데 ‘장애를 딛고’라는 

한마디에 긴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노력에 감동받았습니다..'로 시작되는     

 긴 댓글이었는데 그의 이야기는 이렇다.   

            

‘운동을 좋아해서 겨울이면 주말마다      

용평스키장에서 주말을 보내다 

등산에 미쳐 토요일 야간산행을 하는     

 산악회를 따라 등산을 다니며 높은 산만 오르다가     

 자만심에 빠져 산을 우습게 알고 

설악산 산행 금지구역에 올랐다가     

 70m 높이에서 추락했다는데

 2개월간의 기억이 없다고.

               

후에 서울 고려대 병원에서

 두 번의 큰 수술과 6개월의 입원생활로

 겨우 목숨만 건졌으나 신경이 손상되어 

걷지를 못하고 병원 처방 '마약진통제'를 먹어도 

겨우 버틸 수 있는 정도의 통증을 안고 산다고.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아직도 본인을 용서 못하고 

밖에 나갈 생각도 안 한 채 

집에만 있는 못난 사람입니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나의 마음이 먹먹해왔다.

      

나를 장애인으로 만든 작자를 용서하기에도

10년 이상이라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본인 자신을 용서하기에는 

더 마음을 써야 하나 보다.  

             

만약.. 내가 사고로 

시각장애를 입어 '실로암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나보다 앞을 못 보는 이들과 어울리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조금이라도 앞이 보이는 

나의 상황에 감사하거나 

용서하는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었을 거다.

     

당시의 나도 그냥 

내 안에 갇혀 있길 원했으니.   

하지만 자신의 상황에서 밝음을 얻기 위해서는

 용서가 절실하다는 걸 느낀다.  

   

 이제 그분도 더 늦기 전에

자신을 용서하고 밖에 나가 보기를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세상을 많이 바라보며 느끼고

더 어두운 곳도 찾아보길 권한다.  

   

예전에 할 일이 전혀 없었을 때

혼자 장애인복지관에 가서 점심을 사 먹고     

지하철 타고 남대문시장으로 가서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일을 습관처럼 했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살아내겠다는

마음을 추스른다.  

             

복숭아꽃을 나의 이미지 꽃으로 택한 이유는

 꽃말에 '용서'라는 말 때문이다.

    

 자신 안에 갇혀 있는 그분에게

 마음을 담아 나의 복숭아꽃을 보낸다.

     

그도 나와 같은 '양띠'라는데

나보다 몇 번이 높은 '띠동갑'이라고 한다.               


나랑 그다지 연관 없는
 높은 연령의 분에게도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 충고도 서슴지 않다니.
 나 참 많이 변했다!

벌써 한 해가 저무는구나.
제발 나이는 고만 먹는 걸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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