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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시 May 22. 2018

시는 무엇을 위해 읽는가

하재연 시집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을 읽고 든 단상

언제부터일까? 시가 일상에서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교양의 지향점이 된 것은.


1


시는 너무 어렵다. 읽으면서 이해하기보다, 이것을 '읽으면서 이해하게 될 때'를 그리게 된다. 나는 아직 2000년대 이후 전위시의 언어들이 물흐르듯 내게로 들어오는 경험을 많이 해 보지 못했다. 하나의 시가 있어도 그것을 곱씹고, 곱씹고, 곱씹은 후에야 내 식으로 이해하게 된다.


2


시는 무엇을 위해 있는가? 시는 무엇을 위해 '읽는가'? 그런 생각을 한창 자주할 때가 있었다.


그때 내가 내린 답은, 쓰는 이는 자신을 위해 쓰고, 읽는 이는 자신을 위해 읽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쓰는 이로 존재할 때, 나는 오롯이 나를 위해 썼다. 넘쳐 나는 감정을 담아둘 곳이 글밖에 없어서, 그리고 글 속에 감정을 담아두면 내가 편해져서.


읽는 이로 있을 때 나는 시 속의 언어와 내 일상과의 교차점을 찾고, 그를 통해 내 일상을 다른 식으로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래서 시를 읽을 때 나는 자주, 시 자체의 주제보다는 장면에 주목한다. 하나의 행, 하나의 연. 그 속에 담긴 어떤 단상.


하지만 그것을 위해 시를 '읽어야 할까?' 주제도 잘 모른채 장면에만 주목한다면, 어쩌면 나에게는 그 시 '전체'가 필요하지 않은 것 아닐까. 그냥 그 시를, 그 시집을, 그 사람의 시집을 읽었다는 사실을 남기고, 아무것도 얻지 않는 것이 스스로 아쉬워 무언가 끌어내려고 애쓰고. 그러기 위해 읽는 것 뿐인 것이 아닌가?


3


오늘 시를 읽었다. 하재연 시인의 시집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에 실린 시들이었다. 몇 개의 시에서 화자는 다른 나이의, 다른 세상에 있는, 다른 존재였다. 수없이 등장하는 '나'는 나를 건조하게 보았고,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슬퍼했다. 그것을 보는 나도 슬프고 공허하고 센티맨털해졌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아무것도 모른채 장례식을 맴돌던 어린 아이였고, 발랄한 일상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듯하지만 그것이 만화 속의 공간임을 잘 알고 있는 열일곱살이었고, 자신도 모르게 자라나버린(꼬마이던 자신을 잃어버린) 아이였다. 시를 쓰는 것은 현재이지만, '나'가 경험하는 수많은 꿈 속의 순간은 과거다. '나'는 그 많은 순간과 감정과 어떤 아이덴티티들의 대리자로서 존재한다. 화자는 첫 번째 시에서 꿈과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꿈속에서 나는 아주 / 여러 번 살아왔다. // 내가 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 한 번도 없었다'


4

시는 '해석의 문학'이다. 그래서 개개인이 해석을 얼마나 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다가오는 바가 달라진다. 그렇기에 시는 당장에 느낄 수 있는 문학이 아니라, 교양의 지향점이다. 그래서 시는 대중성을 가지기 힘들다. 마이너한 취미다. 어렵다. 하지만 읽을 이유가 있다.


시를 읽는 능력은 시를 읽을 수록 커진다. 첫 번째는 시의 언어에 익숙해지고 시의 문법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시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보는 능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를 읽는 모든 과정이 지향점에 가까워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현대의 전위시를 일상 속에서 향유하는 것은 힘들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것부터가 어렵다. 하지만 시들은 개별적인 시 하나하나로 존재하기 이전에, 시라는 커다란 어떤 장르로 존재한다. 시를 읽어갈 수록 그 장르와 친해질 수 있고, 그럼 시들은 나에게 더 많은 부분을 열어준다.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느끼게 해준다.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을 내가 대학교 1학년 봄에 읽었다면, 지금보다 느끼는 것이 아마 적었을 것이다. 읽으면서 슬픔과 공허감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시가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그것은 시 자체가 그들만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쓰여지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동의한다. 하지만 시집계속해서 발간되고, 향유된다. 그은 사람이 나이 들어가고, 그에 따라 깊어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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