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굉장히 이른 데뷔 때문일까, 김애란은 항상 '젊은 작가', 하지만 만만치 않은 내공을 지닌 작가로 기억된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도 마찬가지로, 김애란에게선 어떤 젊음의 느낌이 풍긴다.
《비행운》은 김애란의 여덟 가지 단편을 모은 책이다. 그 중 첫 작품인 <너의 여름은 어떠니>는 여름이라는 배경으로 이어지는 '미영'의 기억을 다룬다. 2년 만에 선배에게서 연락이 온 여름날의 오늘, 그 선배 때문에 설렘으로 열꽃이 만발했던 지난 여름들, 그리고 아주 오래 전, 물에 빠진 나의 부재를 알아주었던 한 아이가 있었던 여름.
2년 만에 연락이 온 첫사랑 선배는 미영에게 출연자 대타를 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미영은 그를 거절할 수가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배를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선배는 미영에게 아주 염치 없고 무리한 요구를, 진심으로 미영을 생각했다면 하지 못했을 요구를 더 하며 연신 낮은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미영은 여전히 그것을 거절하지 못한다. 자신을 알아주었기에 그를 좋아했는데, 지금 그는 '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출연자 대타'만을 보고 있었다. 그와의 일이 있고 나서, 미영은 오랜 친구 병만의 장례식에 가는 대신 병만과 있었던 옛 일을 떠올린다.
밑줄을 긋고 싶은 부분이 참 많았고, 그만큼 생각을 오래 하게 하는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인 "너의 여름은 어떠니." 이건 누가 누구에게 하는 질문일까?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에 괜스레 의미부여를 하던 나에게 선배가 던진 말이라면, '한 번 밥 먹자.'와도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내가 선배에게 던진 질문이라면, 선배가 예전에 말했던 '생활'을 궁금해 하는 물음, 기대가 담긴 관심이 아닐까. 아니면 내가 병만에게? 글쎄, 이 지점은 무슨 뜻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선배에게, 내가 병만에게, 혹은 선배가 나에게, 병만이 나에게, 이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이 소설이 마음에 드는 이유, 동시에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는 지점이다.
이 작품에서는 나와 선배, 그리고 병만과 나의 관계가 오버랩된다. 먼저, 나에게 선배가 주었던 어떤 것은 예전에 나에게 병만이 주었던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부재를 알아주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우울에 휩싸여 신입생 환영회 자리를 이탈했던 날, 자신을 찾으러 와 준 선배를 떠올리며 한 말이었다.(나중에 미영은 선배가 자신을 찾아온 것이 자신의 부재를 알아차려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선배에게 찾으러 가 보라고 시켜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 코흘리개 시절의 여름, 병만도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었음을, 미영은 뒤늦게야 떠올린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미영의 존재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때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던 그 날. 병만은 미영의 부재를 알고 있었다.
그때 뻗은 병만의 손을 미영은 필사적으로 붙잡는다. 팔에 멍이 들 정도로. 이는 현재 상황에서 미영의 팔을 세게 붙잡던 선배의 모습과도 대비된다. 미영이 병만을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한 것은, 늦은 밤 홀로 방바닥에 누워 그렇게 아파하고 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때였을 것이다. 내가 붙잡아서 그는 아팠을 텐데, 누군가의 절박함이 그에게는 아프게 느껴졌을 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붙잡는 사람은 그걸 모른다. 너무 절박하기 때문에 모른다. 누군가를 필사적으로 붙잡았을 때, 그건 너일 필요가 있었을까?
나의 부재를 모른척 할 수 없어 상처 받았음을 알고 있었을까? 그 사람은 그저 '나를 도와준 사람'이 아니라 그러기 위해 고민하고, 생각하고, 상처 받고, 그러면서도 손을 내민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나를 누구보다 오래 쳐다보고 있는 그 사람의 시야 안에는 내가 당연히 있지만, 내 시야 안에는 그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그 사실이 그 사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미영의 팔을 붙잡은 선배는 몰랐다. 병만을 붙잡았던 미영도 몰랐지만, 선배가 그를 몰랐기에 비로소 미영은 자신도 모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환한 봄날 같던 첫사랑은 그 여름, 무엇보다 커다란 깨달음을 미영에게 안겨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