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근 / 내가 사랑한 첫 문장
보통 사람들은 첫 세 문장을 읽고 그 책을 읽을 것인가를 결정한다고 한다. '나는 책 중간을 펴 보고 결정하는데?' 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소설에서 첫 문장이 가지는 역할은 엄청나다. 어떤 새로운 이야기, 즉 어떤 하나의 세상이 시작되는 지점은 우리가 그 이야기를 바라보는 방향, 갈피, 인상 등을 모두 결정하기 때문이다. 책의 중간에 왔을 때는 앞에 누적된 모든 내용이 다음 장을 넘기게 하지만, 첫 페이지에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게 만드는 것은 초반의 딱 몇 문장이다.
<내가 사랑한 첫 문장>에서 문학사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작품들의 첫 문장을 보고 있자니 소설은 이렇게 시작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런 장대한 소설이 이 한 문장에서 시작된 건가 싶기도 하고. 문장 안에 소설의 모든 방향이 압축된 것이 있는가 하면 전혀 종잡을 수 없는 것도 있었다. 이미 매우 잘 알려진 구절도 있고 처음 접해보는 구절도 많았다. 작품 자체를 처음 접하게 된 것도 많았는데, 이 책이 추후에 그 작품을 읽는 데에 있어서도 길잡이 역할을 해 주지 않을까 싶었다.
기대한 것보다 내용이 알차서 좋았다. 나는 단순히 첫 문장 모음집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소설 내용도 잘 설명되어 있고, 그 소설에 대한 감상이라거나 생각할 지점 같은 것도 편안히 제시되어 있다. 팟캐스트로 들어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어딘가 살짜쿵 심심하기도 하다. 책에 대한 개관과 배경 지식에 대한 설명으로 그치는 챕터도 없지 않아서일까. 조금 아쉽긴 했지만 잘 읽었다 싶은 책이다. 중간중간에 들어 있는 그림 페이지도 예쁘다. 잘라서 엽서로 선물하고 싶은 느낌.
다음은 이 문장들 속에서도 인상 깊었던 첫 문장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날개 / 이상
너무나 유명한 첫 문장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날개를 읽지 않았어도 이 문장은 알지 않을까. 작가 자신을 지칭한다는 인상을 처음부터 주며 출발하는 이 소설은 해석하는 재미가 그 어느 작품보다 쏠쏠하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나쓰메 소세키
저자의 해석이 재미있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와는 전혀 다른 인상을 주는 수식어들. 이름은 '아직' 없기에 곧 생길 것이고,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는 말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긴 시간 골똘히 고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만으로 이 수상한 고양이의 시각을 따라 작품 속으로 들어갈 장치는 모두 마련된 것이 아닐까.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파트릭 모디아노
파트릭 모디아노의 작품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데, 이 책을 보고 나서 읽고 싶어졌다. 개인에게 쌓인 기억과 추억은 그 사람 자체를 만들고, 그 사람으로 대표되는 그 나라 자체를 만든다. 나 역시 기억과 추억에 관심이 많다. 읽어보고 싶다.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 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 리. 타.
롤리타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이런 묘사를 할 수 있다니. 원문은 이렇다. 'Lo-lee-ta : the tip of the tongue taking a trip of three steps down the palate to tap, at three, on the teeth.' 계속 되는 'T'의 반복이 운율을 준다. 어떤 이미지를 자동으로 그리게 하는 문장.
화실은 풍성한 장미향이 가득했고, 가벼운 여름 바람이 정원의 나무들 사이를 휘젓자 라일락의 짙은 향기, 혹은 분홍 꽃이 핀 가시나무의 더욱 미묘한 향내가 열어놓은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왔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
탐미주의의 정점에 있었던 오스카 와일드. 이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문장에 펼쳐진 아름다운 이미지와도 일치한다. 자신의 모든 추악한 면을 초상화에 넘기고 아름다운 외모를 유지했던 청년 도리언 그레이. 결국 초상화와 도리언 그레이는 모두 도리언 자신이었다. 아름다움과 추악함 사이에서 지극히 딱딱한 것과 지극히 향락적인 것의 경계 지점을 찾지 못한 채 왜곡된 지점으로 빠져들곤 하는 인간의 모습, 그리고 그 모두를 지닌 이중성.
그렇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여기서, 이런 식으로, 조금은 무겁고 느리게, 모두에게 그리고 누구에게나 속한 이 생동감 없는 장소에서, 사람들이 거의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지나가고 건물 속에서의 삶이 멀리서 규칙적으로 반향되는 바로 이곳에서.
인생 사용법 / 조르주 페렉
회색빛 공간에서 느리게 걸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어느 순간 무미건조한 정적을 뚫고 교차하는 시선. 어딘가 닮아 있고 또 어딘가 다른 사람들. 그런 장면 위에 나레이션으로 깔릴 것 같은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고 무언가 쓰고 싶어졌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따금 촛불을 끄자마자 바로 눈이 감겨와 '아, 잠이 드는구나' 느낄 틈조차 없었다. 그러면서도 30분쯤 지나면 이제 잠들어야지 생각하면서도 눈이 떠진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마르셀 프루스트
프루스트는 제 모든 생을 이 책에 쏟았고, 그만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분량은 엄청나다. 하지만 이 첫문장이 장대한 서사를 시작하고 싶게끔 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 / 톨스토이
정말 유명한 문장. 정말 공감되었던 문장.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젊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 너무나 많은 젊음, 너무나 많은 시작이 있었으므로 끝이란 것은 좀처럼 가늠이 안 되는 것이었고 또 아름답게만 생각되었다. 서서히 몰락해가는 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슬픈 짐승 / 모니카 마론
'젊었을 때는'이라는 시간의 한정에서, 이제는 그 시간과 분리된 지금이 느껴진다. 가늠되지 않는 끝을 아름답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 나중에 두려워할 무언가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두려운 것인지 조차 모른다는 것.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기에 아름다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