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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탕진남 Aug 11. 2023

12시간 짜리 파리 여행

9년 전 파리를 방문했다. 파리부터 시작해서 리옹, 니스, 모로코까지 가는 코스로 폭 넓게 돌아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워낙 어렸을 때라 자세한 건 기억은 안 나지만, 참 예쁜 나라라는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었다. 그러다 이번에 미국에서 유럽 가족 여행을 바로 가게 되면서, 무조건 한 번은 경유를 했어야 했다. 그중 에어 프랑스 비행기가 있길래, 그 비행기를 타고 파리를 경험하기로 했다. 


두바이 때와 다르게 12시간 정도로 하루의 절반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 어차피 시간도 없고 잦은 이동과 열심히 여행지를 즐기느라 지쳐있었기에, 현지인 처럼 발길이 닿는 곳을 돌아다니며 음미하기로 했다. 


도착하자마자 든 생각은 그래도 파리에 왔는데 에펠탑은 봐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에펠탑으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버스로 환승하라더라. 우연히 환승지가 파리의 개선문이 앞이었다. 예전에 보던 게 혹은 티비에서 보던 게 눈 앞에 있으니 신기했고, 개선문의 역사와 디테일까지 맛 보니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개선문을 중심으로는 샹젤리제 거리부터 다양한 거리가 있다. 샹젤리제는 관광지 냄새가 많이 날 것 같아서 사람 없어보이지만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거리로 향했다. 그러다 현지인 2명 정도가 커피를 마시며 있는 모습 카페를 발견해서 나도 거기에 앉았다. 맛난 것도 먹고, 사람 구경도 하고, 도시 구경도 하고, 글도 썼다. 


한 2시간 정도 흘렀을까. 다시 에펠 타워로 향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함부르크에서 여행 온 아저씨에게 자신이 사는 동네 이야기도 듣고, 파리에서 사는 아저씨에게 불어로 식당 설명도 들었다. 그러다가 한 아주머니가 여기 버스 정류장 지금 공사 중이라 다른데로 가야한다고 말해주셔서, 다른 데로 갔다. 


30번 버스를 타야 했다. 한 10분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그런데 재밌는 게 버스 정류장이 아닌 한 블럭 앞에서 세우더라. 당연히 내가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올 줄 알았고 기사님과도 그렇게 소통을 했다고 믿었는데, 나를 내버려두고 그냥 가버렸다. 


때마침 나처럼 버스에게 버림 받은 여성 분이 있었다. 서로 버스 놓친 김에 여기 사냐고 내가 먼저 물었다. 그러니 여기 산다고 했고 일을 가려고 버스 타려는데 자기도 놓쳐버렸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하면서 현지인이 자주 가는 달팽이 요리 식당을 추천 받고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버스타고 가다보니 에펠탑이 보이더라. 구글맵은 잠시후에 내리라고 했지만, 무시하고 에펠탑이 잘보이는 근처에서 내렸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에펠탑을 향해 걸어가며 센 강도 경험했다. 남들은 에펠탑 기념샷 남기기 바쁜데 난 관심 없어서 주변 구경하면서 그냥 걸었다. 


그러다 루브르를 가보고 싶어졌다. 에전에도 시간이 없어 루브르를 가보지 못했고, 이동하는 중간에 살짝만 맛보고 지나갔다. 이번 역시 시간이 없지만 그래도 주변이라도 가보고 싶어서 향했다. 


가던 길에 또 멋진 광장과 공원이 있길래, 루브르 근처에서 또 내맘대로 내렸다. 과거 이집트 신전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광장을 즐기고 옆 넓은 공원으로 갔다. 아주 평화로웠다. 때마침 잠도 왔다. 그때가 미국 시간에 적응한 나에게는 무수면으로 약 24시간 였기에 때문에 잠이 쏟아졌다. 그래서 그냥 벤치에 앉아서 잤다. 햇빛이 강하길래 모자로 얼굴을 덮고 자버렸다. 


다시 원래 목적지인 루브르로 향했다. 그러다가 오른쪽에서 에쁜 잔디와 함께 어울러진 벤치가 보였다. 여기서도 한 번 자봐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잤다. 그렇게 잠에서 깨고 노래와 함께 즐기고 있는데, 한 30대 중반 남자가 종이를 들고 주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묻고 있는 걸 발견했다. 


나는 그림 그려주는 사람인 줄 알아서 나한테도 오면 하나 그려달라고 하려고 했다. 왠 걸 청각 장애인 센터에서 기부를 받으러온 사람이었다. 무작정 사인해달라고 하길래 낌새가 이상해서 돈 없다고 확실하게 말하고 사인을 했다. 


사인이 끝나자마자 사인을 했으니 기부 약속을 지키라고 한다. 때마침 청각 장애인 척 연기하는 여자분도 와서 나를 당황시키려고 한다. 그럼에도 안 준다고 말하면서 당당하게 풍경을 즐기고 있으니 경찰에 전화한다고 한다. 세상에 어떤 경찰이 도둑놈의 말을 들어줄까 싶어서, 무섭긴 했어도 하고 싶으면 하라고 했다. 그러자 폰을 꺼내면서 내 눈치를 보고 그럼에도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폰을 다시 넣더라.


그때부터 딱딱한 어조로 나를 살살 치더라. 이러다 때리는 게 아닌가 싶어서 무섭긴 했지만, 싸우면 내가 충분히 이길 것 같았다. 또한 너무 졸려서 옆에서 뭘 하든 반응할 힘도 없었다. 그냥 가만히 있으니, 알아서 가더라. 그때서야 왜 파리 사람들이 저런 이민자들만 보이면 손으로 거절 표시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어쨌든 힘든 여정을 마치고 루브르를 향해 갔다. 가는 길에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 화재로 무너져내린 것을 복원하는 모습을 보며, 역사에 진심인 나라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막상 루브르에 도착하니 기념사진 찍는 사람만 많고 볼 것도 없으며 미리 예약한 식당 시간도 다가와서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버스를 기다릴 때 인도인 추정되는 커플들이 와서 나에게 길을 물어봤다. 이번에는 신종 소매치기범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인터넷이 안내서 샹젤리제 거리를 못 가고 있다고 에쁜 여자가 부탁하길래 넘어가버렸다. 다행히 소매치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휴


버스에서 내려 식당으로 향해 약 15분 동안 걷는데, 거리가 참 예쁘더라. 사람 많은 관광지보다 골목길에서 현지인 냄새를 담은 그런 길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영화 같은 거리에 서양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 기분 참 좋았다. 


식당에 도착해 힘들게 불어 메뉴판을 힘들게 해석해 화이트 와인, 달팽이 요리, 푸아그라를 시켰다. 그때 옆 테이블이 맛있는 디저트도 시키길래, 그것도 같이 달라고 해서 먹었다. 알고 보니 크림 브릴레(브륄뤠?)였다. 


먹으면서 느낀 건 달팽이 주제에 참 정성스럽게 요리해뒀다는 것이다. 특히 거위나 오리의 간 요리인 푸아그라까지 먹으며 애네들에는 정말 먹는 것에도 진심이구나 싶었다. 또한 식당에 앉아서 주문하고 요리를 받고 계산이 끝날 때까지 혼자 먹었는데도 약 1시간 반이 걸렸다. 누군가는 느려서 답답하거나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삶을 제대로 즐기는 자들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한국의 정말 빠른 식당의 경우 들어가서 앉자마자 요리가 나오고, 10분이면 뚝딱 해치우지 않는가. 가만 보면 우리는 큰 목적 없이 무조건적으로 빨리빨리 움직이느라, 진정한 가치인 인생을 즐기는 것을 너무 등한시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밥 먹은 후 간단하게 간단하게 산책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비행기를 기다렸다. 나는 비행기나 기차처럼 장시간 이동하는 교통수단을 탈 때마다 기대하는 게 있다. 영화 한 장면처럼 아름다운 여성과 옆 자리에 앉으며 대화하며 함께 여행하는 그런 로망 말이다. 


아쉽게도 이런 로망을 가진 역사 이래 단 한 번도 내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 내 옆자리 여성 분은 자신만의 아름다움이 충만한 사람이었고, 나와 적극적으로 대화하기를 원했다. 약 3시간 동안의 비행에서 1시간은 신나게 떠들었다. 


그 대화에서 인상 깊은 건 프랑스 회사 문화였다. 프랑스에서는 1년에 2달 휴가를 쓸 수 있다고 한다. 적게는 2주에서 많게는 1달까지 한 번에 쓸 수 있으며,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동시에 점심시간은 2시간 까지 주는 곳도 있으며, 대부분이 야근 없이 저녁 없는 삶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그걸 보면서 감명 받은 부분은 난 무엇을 위해 대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가다. 가끔은 남들과 다른 길을 가며 열심히 살다보면,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악착같이 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사실 진짜 원하는 건 인생을 즐기는 것인데 말인데..


반대로 프랑스는 국가 차원에서 국민들이 그것을 누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만들어둔 것 같았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함께 한 여성분도 몸을 쓰는 힘든 노동을 하지만, 이런 인프라 덕분에 자신의 삶에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영감 넘치는 대화를 하며, 다음에 파리에 가면 또 만나자고 번호 교환까지 하며 헤어졌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미국 보스턴에서 리투아이나 빌뉴스에 도착했다. 12시간 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러모로 참 많은 영감을 받고, 추억을 만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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