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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탕진남 Sep 16. 2023

나보다 돈이 없어 보이는데, 돈을 안받는 남자의 이야기

그라나다에 처음 방문한 날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쉬는 시간을 포함해 약 5시간을 운전했는데,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자마자 알함브라 궁전을 관광했기 때문이다. 궁전 관광 후에는 저녁을 먹으니 오후 9시였고, 집에돌아와서 간절한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에는 잠도 푹잔데다가 특별한 일정도 없었기 동네 구경을 나갔다. 나의 경우 멋들어진 식당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때론 관광객이 아닌 오직 현지인만을 위한 로컬 플레이스를 좋아한다. 때마침 동네 산책을 하다가 누가봐도 현지인으로 가득 찬 카페를 발견했다.


이런 곳을 찾는 것은 새로운 오아시스를 찾는 것만큼, 큰 카타르시스를 준다. 얌전하게 서버 분의 안내를 기다렸다가 테이블에 앉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메뉴판을 보는데, 나는 갑자기 슬퍼졌다. 오직 현금만 받는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동네 산책을 하고 있었기에 가진 것이라고는 카드 밖에 없었다. 슬픈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이었다. 그라나다를 떠나기 전, 전 날 가지 못했던 곳은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양 손 가득 짐을 들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곳으로 갔다. 도착하니 어제의 나를 환하게 맞아주시던 서버 분은 잠시 나가계셨고, 식당 아주머니가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당시 시간은 12시로 스페인 기준으로 브런치 먹을 시간이었기에, 나 또한 간단하게 츄로스와 스페인식 소스가 발라진 토스트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올 때가 되니 어제 나를 반겨주신 서버 분이 돌아오셔서, 나에게 음식을 전달해주었다. 어제와 다르게 표정이 안 좋아보이셨지만, 어쨌거나 나는 음식을 잘 즐겼다. 


유럽은 식당 계산 문화는 한국과 다르면서도, 식당마다 다르다. 보편적으로는 자리에서 기다리면 담당 서버가 찾아와서 계산을 해주지만, 이곳은 동네 카페라 그런지 맞는 금액을 서버 분에게 가서 직접 전달 하면 되는 식이었다. 나 또한 여기 문화에 맞춰서 5유로를 드렸다. 총 가격은 4.7유로 였기에, 잔 돈은 팁으로 드릴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표정이 좋지 않으시던 서버 분께서 환화게 웃으시면서 3유로를 돌려주셨다. 내가 계산을 잘못 한 것 아니었는데, 눈치 상 상황을 바라보니 "친구끼리 뭘 돈을 받아. 싸게 먹고 가. 임마~!" 그런 느낌이었다. 그걸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스페인어로 정말 고맙다는 인사인 "Mucha Gracias라는 말을 건네고 나왔다. 


그걸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분을 서울에 비교하자면 시골에서 장사하시는 중년 남성 서버 분이라고 보면 된다. 나보다 돈이 많은 것 같지도 않아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외국인인 나에게 나눔을 선택했고, 그때의 미소는 그 어떤 얼굴보다도 아름다웠다. 나는 그때 통장 잔고는 잘 모르겠지만, 이분이 가지고 계신 사랑의 잔고는 나를 압도적으로 초월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기회로 나를 되돌아봤다. 평소에 나누는 것에 인색한 사람은 아니다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기꺼이 나누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말 한 마디도 제대로 못 나눈 사람에게 사랑을 나눠준 그를 보면서, 내가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질문해본다. 

"성공이라는 환상에 속아, 사랑하고 사랑을 나눈다는 진짜 가치를 잊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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