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생의 첫 기억
인생의 첫 기억은 무엇인가요? 내 인생의 첫 기억은 어느 달동네에서 어머니와 버스 정류장까지 내려가 버스를 기다리던 장면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에게 담배 모양 초콜릿을 주셨던 것이다. 어머니께 여쭤보니 두 살이나 세 살 무렵의 일이라고 하셨다.
다음 기억은 지금 아버지가 살고 계신 임대 아파트로 이사하던 날이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그곳에서 소변을 봤던 기억이 난다. 이사를 하고 유치원에 갔다. 그때 만난 친구 한 명과는 아직까지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유치원 때는 별다른 기억이 없다. 고구마 캐기, 김치 만들기, 그리고 재롱잔치에서 혹부리영감의 대장 도깨비를 맡았던 기억 정도가 전부다.
2. 칭찬 대신 남았던 손바닥의 멍
물론 틈틈이 아버지에게 혼난 기억도 있다. 유치원 때 혼났던 기억 중 가장 강렬하게 남은 것은 초등학교 2학년 정도 수준의 학습지를 풀었을 때 이다. 학습지 한 권을 풀고 틀린 개수만큼 맞았다. 나는 그때 손바닥을 맞다 보면 피가 터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생 때 내 몸에 멍이 없던 적이 없었다. 물론 아버지에게 맞아서 생긴 멍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이후 급식을 하게 되었고, 학교에서는 폐지를 들고 가지 않아 혼난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간다. 연도 날려보고 물로켓도 쏴봤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영어라는 과목이 추가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 초등학교 때도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없었던 것 같다. 장래희망을 옆 친구 것을 보고 경찰로 적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3.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잘하고 있어
초등학교 1학년 때 받아쓰기 만점을 받아도 집에서는 칭찬받지 못했다. 상장을 들고 가도 반응은 그저 그랬다. 그 때문 일지는 몰라도, 나는 작은 것이라도 칭찬해 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깨닫게 되었다.
지금 초등학생이었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아마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너는 잘하고 있어. 지금은 마음껏 웃고 즐겨도 돼."
4. 부모가 된다는 것의 무게
요즘은 그런 사람이 없겠지만, 자녀를 훈계해도 된다. 과하지 않다면. 물론 그게 힘들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자녀를 보고는 웃어주었으면 한다. 칭찬해 주었으면 한다.
사고 칠 수도 있다. 그게 아이다. 그것을 바르게 알려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다. 그리고 요즘은 예전처럼 공부만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부모의 시선에서 자녀의 실수라고 생각하는 행동이, 그 자녀의 '기프트(Gift)'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