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글들이 너무 부정적이었던 것 같아, 이번에는 나름대로 좋았던 기억들을 꺼내 보려 한다. 아버지에게 거의 매일 혼나고 맞으며 자랐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딱 한 번 아버지가 나의 든든한 ‘빽’이 되어주었던 적이 있다.
여러분은 학교 앞 문방구의 ‘뽑기’를 기억하는가? 1등부터 꽝까지 종이를 뜯는 그 설렘 속에서, 나는 운 좋게 1등을 뽑았다. 당시 1등 상품은 다마고치였다. 그런데 주인아저씨는 1등 표와 꽝 표 두 개를 다 가져와야 한다며 어린 나를 꾸짖고 돌려보냈다. 억울한 마음에 집에 가서 말했더니, 아버지가 직접 문방구에 같이 가주셨다. 결국 내 손에는 다마고치가 쥐어졌다. 이것이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에 대해 가진 거의 유일하고도 좋은 기억이다.
초등학교 2학년, 그때 처음으로 학교 급식이 생겼다. 토요일에도 학교에 가던 시절이었다. 그해 겨울, 똑딱이를 누르면 투명한 액체가 하얀 고체로 변하며 따뜻해지는 손난로를 들고 다녔다. 내 인생의 ‘첫눈’도 그때였다. 경상도 외딴섬에 살다 보니 눈은 정말 귀한 손님이었다. 22살까지 고향에 머물며 눈을 본 게 고작 세 번 뿐이었으니, 썰매를 타고 이불속에서 귤을 까먹던 그 겨울은 순수하게 행복했던 순간으로 남아 있다.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 덕에 나는 늘 집에 혼자였다. 냉장고에는 나의 끼니를 대신할 맥도널드 해피밀 세트가 20개씩 채워져 있곤 했다. 햄버거가 내 주식이 된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배가 너무 고파 혼자 떡갈비를 구웠는데, 밥상을 펴기도 전에 뜨거운 프라이팬을 맨바닥에 내려놓았다. 들어보니 장판이 까맣게 녹아 있었다. ‘이제 죽었구나’ 싶어 벌벌 떨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날 부모님은 나를 혼내지 않으셨다. 아마 그 사건 이후로 불을 쓰지 않아도 되는 햄버거가 냉장고를 채우기 시작했던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옆집 형네 놀러 가거나, 늦은 밤 홀로 하늘을 보는 시간이 많았다. 휴대폰은 없었지만 놀이터와 오락실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초등학교 3학년쯤 동네에 PC방이 생겼을 때는 장부에 이름을 적어가며 몰래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그해 생일, 처음으로 386 컴퓨터가 생겼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기능도 없는 기계였지만, 내 방에 컴퓨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빼놓을 수 없는 친구가 있다. 형제나 다름없던, 내게는 가족 같았던 친구다. 그 친구 집에서 잠도 자고 밥도 얻어먹으며 참 가깝게 지냈는데, 어느 날 연락 한 통 없이 세상을 떠나버렸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지만, 가끔 그 친구와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진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나는 몰래 학교 옥상에 올라가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6년이라는 시간, 영원할 것 같던 이 순간이 끝나는 지점이었다. 마치 군대 훈련소를 갓 마친 이등병처럼, 다 컸다는 착각에 빠져 있던 우스운 모습이 기억난다.
그때는 몰랐다. 인생은 하나의 카테고리가 끝나면 반드시 새로운 카테고리가 시작되며 이어진다는 것을. 끝은 그저 영원한 끝이라고만 생각했다. 만약 그 파편 같은 기억들이 쌓이고 쌓여 ‘인생’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가 된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내 삶이 조금은 더 괜찮아졌을까. 졸업식 날 옥상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