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머리를 권유받던 시절, 버려진 합격 통지서

by 흔한아저씨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초등학교 생활이 지나가고 중학생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초등학교 친구들만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처음 보는 얼굴들, 그리고 이 작은 섬에 생각보다 초등학교가 많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나의 세계는 조금씩 넓어졌다.
​중학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1학년 때 교문 앞 풍경이다. 머리가 길다며 선도부에게 잡혔고, 선생님은 가위로 내 머리 중간을 툭 잘라버렸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땐 그랬다. 쥐 파먹은 머리를 하고도 매점에서 사 먹던 만두와 닭강정은 참 맛있었다. 간식값을 아끼려고 버스 카드를 충전하는 대신 친구들과 하염없이 걸어 다니던 길. 지금은 도저히 못 할 것 같은데, 그때는 참 체력이 좋았다.
​그 시절엔 카드 게임이 유행이었다. 학교에 카드를 가져가 놀다 선생님께 뺏기기 일쑤였는데, 나는 무슨 배짱이었는지 밤늦게 학교에 몰래 들어가 뺏긴 물건들을 다시 훔쳐내 친구들에게 돌려주곤 했다. 2층 교무실 벽을 타고 창문으로 넘어 들어가던, 스스로 ‘의적’이라 착각했던 무모한 행동들. 한 번은 사이렌이 울려 수위 아저씨와 야밤의 숨바꼭질을 하기도 했다. 두근거리던 그 순간이 즐거웠던 기억을 보면 정말 겁 없는 아이였나 싶다.
​물론 철없는 일탈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의형제 같던 친구가 수업 시간에 자해를 해서 급히 병원으로 데려가기도 했고, 말도 안 되게 술을 마셔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다. 중학생 신분에 대학교 축제에 가서 대학생인 척 파전 하나에 소주를 각자 14병씩이나 들이부었다. 집 화장실 변기에 앉혀져 아버지에게 찬물 세례를 받으며 정신을 차렸을 때, 아버지는 “다음에 또 이러면 죽여버린다”며 불호령을 내리셨다. 그날의 지독한 숙취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도 소주나 맥주 같은 술은 입에도 대지 못한다.
​그렇게 뛰어놀다 보니 어느덧 졸업이 다가왔다. 집 근처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담임 선생님은 어머니와 나를 앉혀두고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낫다”며 실업계 진학을 권유하셨다. 결국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는 길을 택해야 했다.
​사실 중학교 시절, 공군사관학교와 해군사관학교 시험을 치른 적이 있었다. 결국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훗날 어머니를 통해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되었다. 당시 합격 통지서가 집으로 왔었지만, 아들을 멀리 보내는 게 걱정됐던 어머니가 통지서를 몰래 버리셨다는 것이다. 만약 그때 내가 사관학교에 갔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어머니는 가끔 그때를 떠올리며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신다.
​축제 때 댄스 동아리 활동을 하던 기억도 난다. 다른 학교 축제에서 춤을 추고 PC방에서 게임을 하는데, 어떤 여학생이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고백을 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이성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번호 교환도 하지 않고 “알겠다”며 무심히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뚝뚝하고 철없던 소년이었다.
​되돌아보면 중학교 시절도 초등학교 때와 다를 바 없이 일탈과 친구, 놀이가 전부였다. 그 순간이 영원할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렇게 믿으며 살았다. 하지만 인생은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혹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버려진 통지서처럼 엉뚱한 길로 나를 떠밀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것이 쌓여 어떤 미래를 만들지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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