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된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던 나에게

by 흔한아저씨

​1.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나는 내가 30대가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어느새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지금, 문득 불안감이 밀려온다. 혹시 과거라는 추억 속에 너무 깊이 의지한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고.
​10대 시절의 나는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 시절의 일탈, 센 척, 그리고 끝없이 길게만 느껴졌던 초·중·고교 생활 때문이었을까? 집에서는 칭찬도 꾸짖음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하고 싶은 것' 자체가 사라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 모든 건 그저 변명일 뿐이다. 나는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지내면 알아서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내 삶을 방치했던 것 같다.


​2. 폭풍처럼 지나간 20대의 초입
​고등학교 3학년,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나는 혼자 살게 되었다. 되는 대로 살던 나에게 혼자 사는 것은 분명 잘못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폭력적인 아버지와 도망간 어머니 사이에서, 그것은 당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처럼 보였다.
​결국 고3이었지만 학교는 거의 나가지 않았다. 물론 아버지를 피해 도망쳐야 했던 날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나태했던 나에게 학교는 점심이나 가끔 먹으러 가는 곳으로 전락했다. 다행히 담임선생님의 배려로 취업계를 내어 간신히 출석일수를 채우고 졸업할 수 있었다. 대학에 합격했을 때조차도 나는 20대가 될 거라는 사실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고, 한 학기 후 군대에 입대했다.
​군대에서는 별 탈 없이 지냈고, 전역 후에는 아버지도 조금 누그러지셔서 함께 살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 인생에 30대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문득 비트코인 1개에 100원 정도였던 시절이 떠오르는 걸 보면, 나는 참 많은 기회를 놓치며 살아온 것 같기도 하다.)


​3. 유일하게 후회하는 선택들
​대학에 복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나는 9살 연상의 여성과 연애를 했고 속도위반으로 결혼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이는 내 삶에서 유일하게 후회하는 일이 되었다.
​전 배우자는 연애 때부터 전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정리되지 않았고, 결혼 후 출산 직전까지도 그랬다. 나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모자란 사람처럼 행동했고 첫째가 태어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일만 열심히 해서 집에 돈을 가져다주고, 퇴근 후 첫째만 잘 돌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에게 가정은 나의 전부였다.
​하지만 아이를 돌보는 방식은 너무나 달랐다. 나는 아이가 다치지 않게 미리 조치를 취하는 쪽이었고, 전 배우자는 '다쳐봐야 안다'는 식이었다. 어느 날, 일하던 도중 전화가 왔다. 컵라면 물을 부어놓고 쉬는 사이에 아이가 쏟아 화상을 입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첫째는 두 살 정도였다. 나는 급히 집으로 달려가 응급실로 향했다. 아이를 안은 채 화상 부위에 붓는 물을 함께 맞았다. 다행히 흉터는 생기지 않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매일 40분 거리의 퇴근길, 아이와 전화하며 우는소리를 달랬고, 집에 도착해서는 청소도 안 된 집에서 아이와 놀았다. 그렇게 일상에 지쳐갈 무렵, 첫째가 네 살 때 둘째가 생겼다. 잠깐의 활력이 돌았지만, 둘째는 미숙아로 태어났고 정신 장애를 안게 되었다.


​4. 무너진 울타리, 그리고 나락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이혼의 직접적인 시발점은 아니었다. 둘째가 두 살쯤 되었을 때였다. 여름 주말, 동네 공용 수영장에 놀러 갔다. 둘째를 안고 있던 나에게 전 배우자는 첫째와 다른 곳에 가겠다고 했고, 나는 그러라고 했다. 나는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물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왜 그때 기억하지 못했을까? 왜 둘만 보냈을까?
​시끄러운 와중에 너무 오지 않아 찾으러 갔을 때, 나는 물 위에 얼굴을 박고 둥둥 떠 있는 첫째와, 나를 찾는다고 소리치는 전 배우자를 보았다. 즉시 첫째를 물 밖으로 꺼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나는 전 배우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그녀는 "물에 안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냐?", "소리쳤는데 왜 늦게 왔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때부터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싸움 끝에 부러진 우산 꼭짓점에 오른쪽 어깨를 찔린 적도 있다. 내가 제압했지만, 오히려 가정폭력으로 내가 불리해졌다. 연고도 없는 경기도에서 나는 집에서 쫓겨났다.
​두 달 정도 차에서 생활하자 정신이 피폐해졌다. 결국 집, 퇴직금, 양육권 포기, 양육비, 물리적 거세라는 전 배우자의 조건에 동의하고 합의 이혼을 했다. 당시 판사님이 "남편분, 정말 이대로 하실 겁니까?"라고 물었던 말이 생생하다. 이것이 내가 살면서 유일하게 후회하는 두 가지 중 하나다.
​이혼 후에는 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 배우자가 직업이 없어 집 대출을 내 명의로 받았는데, 단 한 번도 돈을 낸 적이 없어 내 신용 점수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차에서 지내면서도 회사를 설득해 퇴직금을 전달했고, 월급 220만 원 중 150만 원을 양육비로 보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지내다 회사 사람의 배려로 샤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휴대폰 요금 등을 내고 나니 돈에 여유가 없어, 퇴근 후 새벽 2시까지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고된 일상을 반복하는 중, 나는 이직을 했다. 강사, 보험, 서류 작성 등 많은 일을 해보려 노력했다.


​5. 포기하지 마라
​죽으려고 시도한 적도 있고, 정신병원에도 갔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지금은 개인 사업을 하는 중이다. 아직 내 인생이 잘 풀린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삶을 지나온 내가 당신에게, 혹은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너보다 잘난 사람을 찾지 마라. 인생이 더 허망해질 뿐이다.
​너보다 못난 사람만 찾지 마라. 나태해질 뿐이다.
​그저 주어진 일을 미루지 말고, 아이디어가 있다면 뭐든 해봐라. 세상은 네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발전해 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