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기록] 초코파이 봉지와 야반도주, 군대 전

by 흔한아저씨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학교 앞 고시원 생활도 마침표를 찍었다. 당장 내 힘으로 집을 구할 능력은 없었기에, 아버지 지인분의 도움으로 비어 있는 집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멍청한 행동이었다. 가출한 아들이 아버지 지인의 빈집으로 숨어들다니. 결국 짐을 옮긴 지 사흘 만에 아버지에게 위치를 들켰고, 그대로 다시 집으로 끌려 들어갔다. 다행히 아버지의 화가 많이 누그러져 매질은 피할 수 있었다.
다시 시작된 아버지와의 생활은 생각보다 금방 적응되었다. 당시 나는 PC 게임에 완전히 미쳐 있었다. 자정쯤 잠들어 새벽 5시에 눈을 뜨자마자 모니터를 켜는 일상이 반복됐다. 그렇게 게임으로 밤낮을 채우다 보니 어느덧 대학교 입학 날이 다가왔다.
누구나 대학 생활에 대한 낭만이 있겠지만, 나에게 대학의 유일한 장점은 1교시가 8시에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즐거움도 오래가지 않았다. 여전히 게임에 빠져 수업을 빼먹기 일쑤였고, 강의실보다는 학교 앞 PC방이 더 익숙했다. 복학생 형 한 명과 고등학교 동창 한 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얼굴을 익힌 사람조차 없었다. 결국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자연스럽게 모든 인연과 연락이 끊겼다. 군대를 가야 했기 때문이다.
바로 입대하고 싶었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아 1년이라는 공백이 생겼다. 나는 그 시간을 이용해 다시 한번 독립을 꿈꿨다. 이모가 빌려준 아주 낡고 열악한 집에서 지내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한 곳의 수입으로는 부족해 두 곳을 뛰었다. 일하고, 또 일하고, 집에 돌아와 잠만 자는 단조로운 사이클의 반복이었다. 그때 내가 무얼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게 없는 걸 보면, 참으로 알차지 못한 생활이었던 것 같다.
그 지독한 가난과 노동에 지쳐갈 때쯤, 나는 애지중지 키웠던 게임 아이템을 현금으로 처분해 잠깐의 여유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두 번째 독립 역시 허무하게 끝이 났다. 어느 날 놀러 온 형과 수다를 떨며 초코파이를 먹다가 아르바이트 가기 전 잠시 눈을 붙였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눈을 떠보니 초코파이 봉지 속에 내 중지만큼 커다란 바퀴벌레가 들어 있었다. 그 길로 나는 야반도주하듯 짐을 싸서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도망쳤다. 살면서 그런 경험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청결과 제대로 된 집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아버지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마침내 군대 영장을 받았다. 적어놓고 보니 고등학교 졸업 후 입대 전까지 참으로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의 파편들을 다 모아보아도 이토록 짧은 것을 보니 말이다.
이제 나는 군대로 향한다. 마치 어디 캠프라도 놀러 가는 사람처럼 가벼웠던 그날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모른 채, 나는 그렇게 학창 시절의 마지막 자락을 접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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