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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감 Jan 21. 2021

낮은 시선으로 어두운 시대를 담다 <나의 작은 동무>

[어땠어요?] 낮은 시선으로 어두운 시대를 담다 <나의 작은 동무> 리뷰

우리에겐 다소 낯선 에스토니아의 50년대 풍경을 담은 영화가 상영 중입니다. 우리 모두의 예상외로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 되었고 엄혹한 환경이지만 개봉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그마치 3년 전인 18년 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란 소식을 듣고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곧 학교에 입학할 예정인 미취학 아동 렐로는 교장 선생님인 엄마와 운동선수 출신인 아빠와 함께 이사 준비를 합니다. 새로 이사한 집은 전에 있던 학교 관사에 비해 터무니없이 누추했고 렐로는 새집이 내심 맘에 들지 않습니다. 예전 집에 두고 온 인형을 몰래가져오다 엄마에게 된통 혼나는 렐로는 시무룩하긴 커녕 금세 새집에 적응하죠. 화분을 깨뜨려 엄마에게 혼나던 순간 갑자기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들이 집으로 들이닥칩니다. 급작스레 엄마와 이별하게 된 렐로는 아빠와 단둘이 지내게 되고 착한 딸이 되면 돌아오겠다는 엄마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새로운 6살 인생에 첫발을 내딛습니다.


<나의 작은 동무>는 에스토니아라는 북유럽의 작은 국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잠시 독립국가로써 주권을 누리던 에스토니아는 이후 소련에 강제 병합이 되었다고 하네요. 저도 이번 영화와 리뷰를 준비하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아주 익숙한 구도이지만 작품은 렐로의 6살 인생 속 이 시대를 충실하게 조명했습니다. 이념대립을 넘어 소련과 스탈린의 권위주의가 어떻게 유럽대륙 최북단의 작은 국가 속 아이의 삶 구석구석에 영향을 주는지를 묵묵하게 지켜봅니다. 주인공 렐로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소년단'에 들고 싶어 하고 그 소년단은 스탈린을 위해 죽어간 병사의 노래를 아이들에게 연습시키는 장면 따위의 모습들이 차분히 소개되는 식입니다.


제가 시대적 배경에 대한 <나의 작은 동무>의 표현을 '지켜본다'와 '소개'라고 적은 이유는 이러한 무거운 소재들을 강박적으로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북유럽 시골의 작은 나무집과 아빠가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 겨울의 모습을 목격하는 렐로의 일상 등 누구나 공감하고 웃음 지을 수 있는 오밀조밀한 삶의 모습들을 <나의 작은 동무>는 따스히 관객에게 소개했습니다. 마치 다른 환경에서 자란 친구의 집을 방문해서 사소하지만 소중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듣거나 겪었던 그 온도가 담겨있습니다. 소련 산하의 사실상 식민국가에서 각자의 삶을 버텨내는 렐로의 할머니, 고모, 아버지의 모습들은 에스토니아가 어디에 있는 국가인지 모르더라도 충분히 함께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 냅니다. 아마도 제가 이를 쉽게 '보편적이다'라고 표현한다는 건 우리도 같은 모습들을 듣거나 보고, 배우며 자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민족과 사상, 이념을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린 렐리의 시선에 기대 시대를 담는 작업은 익숙한 클리셰에 해당됩니다. 아마 우리 모두 3번 이상 영화에서 목격한 장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뻔하고 식상하다고 느끼실 확률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한 익숙함을 떠올리면서도 <나의 작은 동무>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으면서도 질리지 않듯이 어떤 표현과 전달은 계속되는 이유 또한 분명히 존재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표현이 거칠 거나 단순하지 않고, 매 순간 성실히 관객에게 어떤 마음을 전달하고자 애썼다면 분명한 칭찬의 이유도 존재할 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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