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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감 Jan 26. 2021

당신을 향해 떠나는 선물같은 여행 <소울> 리뷰

[어땠어요?] 당신을 향해 떠나는 선물같은 여행 <소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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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평단의 고른 극찬을 받는 픽사의 신작이 개봉했습니다. '픽사의 적은 픽사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칭찬이 자자한 전작들과 싸워야 하는 처지의 23번째 장편 <소울>이 그 주인공입니다. 픽사의 대표적인 감독들 중에서도 <몬스터 주식회사>, <업>, <인사이드 아웃>으로 특유의 독특한 세계를 잘 구축해온 피트 닥터가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후 반응이 워낙 좋았던 터라 저도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극장을 찾았습니다.


중학교에서 밴드 담당 선생님으로 일하는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 분)는 사실 재즈 피아니스트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닥 음악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악전고투하며 생계를 유지하지만, 가끔 아이들이 재즈에 관심을 보일 때면 그도 덩달아 신이나 연주하곤 하죠. 그런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우연한 기회로 유명한 재즈 밴드에 합류할 기회를 얻은 조는 공연을 앞두고 사고를 당해 '머나먼 저세상' 코앞까지 떨어지고 맙니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칠 수 없는 그는 어떻게든 그곳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의외의 조력자 22(티나 페이 분)을 만나며 상상치도 못한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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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은 픽사의 전전 작품인 <코코>와 같이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관객을 이끄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뉴욕과 재즈란 단어를 들었을 때 흔이 떠오르는 그 특유의 향기를 잘 붙잡았습니다. 노란 택시와 복잡한 거리, 피자와 어두운 조명의 재즈바 등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한클릭 한클릭 매만진 아트 워크들은 그 자체로 음악과 어우러져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소셜네트워크에서 화제가 되었던 <업>에서 찰스의 삶을 7분에 축약해 보여준 시퀀스를 떠올려 보시면 쉽습니다. 영화 초반, 머릿속에 온통 재즈로 가득한 그의 일상을 익숙하면서도 조곤조곤 관객에게 소개하고 그의 꿈을 성공적으로 설득시킵니다.


'어렵게 꿈을 이루는 재즈피아니스트의 이야기인가보다'라고 예상한 관객을 놀리기라도 하듯 <소울>은 조의 사고 이후 본격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합니다. '태어나기 전 세상'이라는 그 아무도 본 적 없는 완벽한 가상의 세계를 픽사는 애니메이션만이 가능한 표현으로 가득히 채워놨습니다. 기술적으로나 연출적으로나 그동안 충실히 쌓아놓은 실력을 남김없이 쏟아냅니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그곳의 돌아가는 생리를 알아가는 그 자체의 '재미'가 잘 녹아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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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과 음악, 완벽에 가까운 애니메이션 연기와 배경아트워크를 칭찬하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으나 <소울>에서 제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 영화가 가진 '영혼'에 가깝습니다.


 <소울>은 초반 충실히 조의 삶을 비추고 이후에는 버디무비와 로드무비를 섞은 아주 익숙한 구조를 따라갔습니다. 각자의 목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협력하는 두 사람, 그리고 그 여정에서 만나는 여러 풍경과 순간들은 아주 흔한 규칙들이죠. 워낙 많은 작품이 활용하는 방법이기에 많은 분들에게 한 번쯤은 보셨던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영화는 이런 익숙한 구조에 애니메이션만이 더 확실하게 전달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꺼내 놓습니다. 이들이 떠나는 여행은 눈이 부신 세계나 모험이 가득한 낯선 신대륙이 아닙니다. 아무런 의미 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 매일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일상에 가깝죠.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눈이 부신 세계를 극 중반에 제시하며 관객의 눈을 잡아 놓았던 픽사의 이전 작품들과는 분명 다른 선택에 가깝습니다. <월-e>의 맥시멈호, <업>의 파라다이스 폭포, <코코>의 죽은 자들의 세상과 같이 입이 떡벌어지는 새로운 배경을 기억하시면 될 듯싶습니다.


이런 다소 의외의 선택을 만회하는 건 시각의 변화입니다.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될 수 있었던 수많은 기억들'을 <소울>은 아주 꼼꼼한 바느질로 엮어내어 관객에게 선물합니다. 이런 시각의 변화는 인물의 중심축마저 신나게 뒤흔들어 놓습니다. 조의 삶과 꿈에 관객을 푹 빠지게 만들어 놓고선 또 다른 시선으로 시나브로 젖어 들게 만들죠. 그리고 이런 픽사의 연주는 불확실성과 즉흥성이 예술이 되는 재즈라는 소재와 만나 연주를 시작하고, 꿈과 삶, 성공이라는 완벽한 주제로 관객의 삶에 파고들며 마무리됩니다. 아마도 연주였다면 일어나 박수를 치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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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디+로드무비의 구조와 시각의 전복과 같은 노련한 악기들을 잘 조율해 내었지만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린 건 작품이 품에 꼭 안고 있던 메세지였으리라 확신합니다. 픽사의 작품들이 마지막에  뻔하게 생각할만한 결말을 비틀어 주제를 전달하는 건 그동안 아주 잘하는 짓(?)들이었습니다. 얄미울 정도로 말이죠. 그런데 <소울>은 그를 고려하더라도 약간 다른 대담함이 느껴졌습니다. 오랜 시간 '기회의 땅'이란 별명을 가질만큼 개인의 노력과 성취를 신성시하는 미국 사회에서 튀어나온 결과라 더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작년 초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한 재난으로 많은 사람들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습니다. 몇몇은 불편함에 그쳤지만 몇몇은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죠. 제가 감히 <소울>에 대하여 '대담함'이란 표현을 쓴 이유가 있습니다. 어쩌면 <소울>은 오랜 시간 영화라는 이름으로 남아 삶 자체를 위로하는 작품이 되겠구나 싶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재난 때문이라도, 갑자기 찾아오는 슬픔 때문이라도,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이라도, 우리의 삶을 부정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올 테니까요. 그때마다 저는 조가 쥐어준 꽃잎처럼 이 영화를 붙잡을 생각입니다.


어떤 영화는 선물이라고 부르는 게 마땅할 만큼 추억의 한자리를 차지합니다. 많은 분들의 자리를 차지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선물입니다. 꼭 챙겨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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