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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감 Dec 15. 2021

호러가 품은 화려한 균형감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어땠어요? ] <라스트 나잇 인 소호> 리뷰


17년 <베이비 드라이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감독 에드가 라이트가 새로운 작품으로 극장을 찾았습니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나 <지구가 끝장나는 날> 같은 패러디 작품으로 약 빤 감독 타이틀을 거머쥔 후 사실상 지금은 가장 힙한 감독으로 자리 잡은 그의 신작을 서둘러 만나봤습니다.


영국의 작은 시골 동네 출신 앨리는 일찍 어머니를 잃고 어려운 시기를 보낸 10대입니다. 오래 어머니의 환영을 봤던 앨리는 포기하지 않고 치료를 마쳤고 옷을 만들고 싶다는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런던으로 향합니다. 시골 촌뜨기로 기숙사에 적응하지 못한 앨리는 소호 근처에 낡은 원룸을 구해 들어갑니다. 60년대에 대한 환상이 있던 앨리는 오래되었지만 옛 향취가 남아있는 그 집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후 자신의 방에서 60년대로 돌아가 가수의 꿈을 안고 런던으로 온 샌디가 되는 꿈을 자주 꾸기 시작합니다. 답답하고 낯선 학교생활에 활력소가 되던 꿈은 점점 앨리의 생활을 망가뜨리기 시작하고 결국 끔찍한 악몽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저도 처음 에드가 라이트의 호러 무비가 개봉한다고 했을때 아주 자연스레 패러디물을 생각했습니다. 많은 컬트영화 팬들이 꼽는 패러디 장르의 대표작이 된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떠올리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감독은 '나는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걸 한거고 보고싶으면 와서 봐라'라는 태도로 아주 태연하게 자신의 장기를 뒤집었습니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에드가 라이트 특유의 대책없는 개그가 1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베이비 드라이버>때도 이러다 본색아닌 본색을 드러내지 않을까 생각 했지만 전혀 그러지 않았던 것 처럼, 감독 특유의 스피디 한 편집과 색감만을 자신의 검으로 쥐었을 뿐 코메디라는 반대 쪽 손의 방패는 들지 않았습니다. 진검승부를 하겠다는 본인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고 그게 객기가 아닌 성장이라는 걸 영화는 증명했습니다.


금방 언급했지만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아주 화려한 영화입니다. 호러 무비 임에도 정작 어두운 분위기는 저변에 깔아 둔 채 처음에는 앨리와 샌디라는 인물 자체에 집중하는 다소 의외의 선택을 했습니다. 넷플릭스를 시작으로 숏폼 등의 미디어가 쏟아지는 '요즘' 관객들은 상업 작품에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위해 기를 모으는 시간을 잘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영화들이 기승전결의 기를 최대한 빨리 뛰어넘고 승전결 구조를 가져가는 것이 일종의 대세가 된 지 꽤 되었습니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이런 대세를 아주 보기 좋게 거스릅니다. 할머니와의 시퀀스를 통해 앨리의 어려움을 충분히 설명하는 것도 모자라 이 영화가 호러영화가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앨리의 런던 입성을 힘주어 그립니다. <주토피아>나 <페임> 같은 청춘의 성장을 그린 작품인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 선택이 영화를 지루하게 이끄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닙니다.


많은 관객들이 평을 남긴 것처럼 영화의 아주 초반은 앨리의 런던입성을 보여준 후 영화는 아주 황홀한 앨리의 꿈 속으로 관객의 손을 잡아끕니다. 60년대 런던, 가수의 꿈을 꾸는 샌디의 삶은 또 <드림걸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낡은 앨리의 방에서 오래된 런던의 골목, 화려한 60년대의 술집으로 이어지는 영화의 비주얼은 말 그대로 숨을 막히게 합니다. 여기에 국뽕한 스푼 더 한 한국의 촬영감독 정정훈 감독의 카메라가 60년대 런던의 풍경을 완성시킵니다. 호러영화의 장르적 재미를 작품의 메세지를 위해 뒤로 미룬 후, 영화 자체의 재미를 잃지 않기 위해 화려한 미술과 촬영으로 균형을 맞춘 인상이었습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라 뻔한 말이지만 직접 확인하시는 게 빠를 것 같네요.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막상 영화 끝으로 가면 그냥 평험한 호러 무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다시 천천히 영화가 그린 큰 그림을 돌아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바로 영화 전체 구조의 호흡을 아주 뚝심 있으면서도 영리하게 관리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런 구조가 단순히 창작자의 고집이나 순간의 영감을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에 두 번째 포인트가 있습니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60년대의 인물을 현대의 인물과 나란히 지켜보게 함으로써 '꿈'이라는 것을 핑계로 무언가 놓치거나 희생하지 않았는지를 되묻습니다. 에드가 라이트 자신의 무기인 특유의 호흡과 감각을 살리면서도 시대와 인물의 내면을 충실히 표현하는데 그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것이 아주 놀라웠습니다. 이렇게 매끄럽게 장르물을 자기 색으로 풀어나가는 작품은 정말 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새 마블 영화의 개봉으로 쉽지 않으시겠지만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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