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땠어요?] 고향에 관한 가장 따스한 정의 <벨파스트> 리뷰
<오리엔트 특급살인>과 <나일강의 죽음> 등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영화화 한 감독이자 배우인 케네스 브레너의 자전적 작품이 극장을 찾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은 호불호가 강하게 갈린 편이지만 연극 무대를 시작으로 기사서임까지 받은 케네스 브레너가 영국에서 손에 꼽히는 감독이자 배우임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를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 처럼 올해 오스카의 작품상에 노미에네이트 된 <벨파스트>를 극장에서 만나봤습니다.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의 60년대 후반, 눈에 장난기가 가득한 소년 버디(주니 힐 분)가 동네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놀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나무칼과 쓰레기통 뚜껑을 방패 삼아 용을 잡던 버디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폭발음에 겁을 집어먹습니다. 화염병을 던지고 마구잡이로 집의 유리창을 깨는 이들의 정체는 벨파스트 안에 천주교인을 못마땅해하는 기독교인들이었죠. 당황한 버디가 멍때리는 사이 버디의 엄마(케이트리오나 발피 분)는 버디를 데리고 황급히 집으로 피합니다. 버디의 집안은 기독교를 믿었기에 큰 피해가 없었지만 불안한 상황에 엄마는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영국에서 일하고 있는 버디의 아빠(제이미 도넌 분)는 벨파스트의 가족들이 다칠까 다른 곳으로 이민을 갈 계획을 세웁니다. 엄마와 버디의 형(루이스 맥카스키 분) 버디는 할아버지(시아란 힌즈 분)와 할머니(주디 덴치 분), 친절한 이웃이 있는 벨파스트를 차마 떠날 수가 없습니다. 아홉수를 제대로 맞은 버디는 벨파스트에 남을 수 있을까요?
<벨파스트>가 가장 먼저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인상은 역시 '흑백'영화라는 지점일 겁니다. 국내에선 <동주> <항거 유관순 이야기>와 같은 영화가 흑백으로 만들어져 개봉하기도 했지만 사실 뭔가 장벽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확히 이유를 댈 순 없지만 뭔가 어려운 예술 영화일 거 같은 선입견은 자연스러운 수순일 겁니다. 그러나 <벨파스트>는 흑백이 가진 특유의 장점은 가져오면서도 관객이 이해하기 쉬운 연출로 이야기를 이끌어 갔습니다.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는 유명한 사진작가의 사진전을 보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매 컷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고 카메라는 특정 부분을 제외하고는 사진기 처럼 정지되어 벨파스트라는 공간 자체에 온힘을 집중합니다. 이렇듯 프레임에 공을 들이면서도 '아이가 보는 전쟁'이라는 익숙한 화법으로 불을 때우고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과 인간에 대한 애착으로 밥을 지으며 영화 가득한 온기를 잘 지켜냈습니다.
최근 <벨파스트>의 평을 보면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는 이야기 방식에 대한 평이 지배적입니다. 이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저는 이 작품이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활용하되 집중하진 않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영화의 구조는 아이의 그것을 따라가되 영화가 비추고 집중하고자 하는 바는 벨파스트라는 공간 자체와 그 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른의 눈에서 보기엔 별거 아닌 듯한 버디의 고난들을 엄마와 아빠, 형과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이웃들까지 모든 순간 함께합니다. 많은 유년 시절이 그렇듯 유독 친구 같은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관계는 <벨파스트> 특유의 담백한 연출과 대사와 만나 온전히 관객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이 지면을 통해 자세히 말씀드리는 것보다 직접 확인하시길 추천드립니다.
이 영화를 한 줄로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고민해보았습니다. 언젠가 누군가 '고향'이 무엇이냐 물으면 이 영화를 답으로 줄 것 같습니다. 이해하기 쉬운 영화가 말하기 간단한 영화는 아니며 동시에 아주 커다란 영화일 수 있단 걸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