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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감 Jul 22. 2023

인정을 인정하는 사랑이 그를 통해 일렁일 때 -엘리멘탈

[어땠어요?]  <엘리맨탈>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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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한동안 힘을 못 쓰던 픽사 작품이 극장에서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벌써 400만을 훌쩍 넘기며 올 상반기 박스오피스 순위권에 안착할 것으로 예상되는 <엘리멘탈>이 그 주인공입니다. 일찍이 극장에서 봤지만 리뷰가 좀 늦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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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원소가 어우러져 사는 도시 엘리멘탈에 첫발을 내디딘 엠버의 아버지 버니 루멘과 어머니 신더 루멘은 공항에서 이름을 다시 만들어야 할 만큼 이질적인 존재입니다. 다행히 불이 모여 사는 파이어 타운을 발견하고 온갖 잡화를 파는 파이어 플레이스를 운영하며 자리를 잡기 시작하죠. 버니와 신더의 딸 앰버가 태어나고 성장하자 버니는 파이어 플레이스를 앰버에게 물려줄 준비를 합니다. 앰버도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가게를 물려받으러 고군분투하죠. 파이어 플레이스의 큰 행사인 핫세일 기간에 드디어 앰버에게 기회가 주어졌고, 앰버는 세일을 잘 마치기 위해 온 노력을 불태웁니다. 세일이 시작되고 손님이 몰려들자 긴장한 앰버는 지하실에서 폭발해 버리고 마는데요.   이내 수도관에서 물이 새며 의외의 인물을 만나게 되죠. 수도관을 타고 들어 온 시청직원 웨이드가 파이어플레이스의 위반 사항을 보고하러 시청으로 향하고 앰버는 원치 않게 웨이드를 쫓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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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멘탈>을 만난 관객을 제일 먼저 사로잡는 요소는 역시나 잘 정돈된 비주얼일 겁니다. 4가지 원소가 각자의 생활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엘리멘탈이라는 설정답게 아주 알록달록하고 채도가 높은 쨍한 색이 배치되어 있는데요. 자칫 유치하게까지 보일 수 있는 높은 채도의 4색(불의 빨간색, 물의 파란색, 흙의 초록, 갈색, 공기의 흰색, 하늘색, 분홍색 등)은 픽사의 일관된 디자인 안에 아주 잘 정리정돈 되어있습니다. 마치 옷정리를 마치고 디자인 별, 색 별로 정리한 장롱을 볼 때의 그 안정감이 <엘리멘탈>에는 살아있습니다. 이런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 픽사의 장기인 '움직임' 또한 영화가 걸친 옷을 한껏 뽐낼 수 있도록 돕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글대는 불의 움직임과 물 특유의 꿀렁임은 아주 직관적으로 앰버와 웨이드의 차이를 느끼게 만들고, 이는 후반부 웨이드의 대사처럼 불에 비치는 물과 투영해서 반사되는 빛을 함께 표현하며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산뜻하게 번지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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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엘리멘탈> 마케팅 포인트를 쫓아가다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업>의 러셀 모델로 알려진 후 <굿 다이노> 감독으로 데뷔한 픽사의 애니메이터 피터 손이 한국계 미국인이란 걸 중심에 두고 홍보를 했고 지금까지의 성적을 보면 아주 유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엘리멘탈> 속에서도 아주 잘 드러납니다. 'K장녀라면 영화 보고 울면서 나온다'는 말이 농담처럼 오고 갈 만큼 영화는 이주민과 아시아 문화에 대한 재료를 깊게 배어나도록 노력했습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아버지와 인정이란 키워드로 묶이는 것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단순히 한국문화에 대한 비유였다기 보단 마을 디자인은 전통적인 차이나타운에서, 복잡한 이름, 파이어랜드 디자인은 동남아시아 문화권에서 따와 표현하려 했다고 느꼈습니다. '아슈파'라는 단어도 동아시아를 벗어난 어감이라고 느꼈고요. 미국사회의 숙제인 백인 대 흑인 구도에서 한발짝 떨어져 아시아에 대한 존중과 정체성을 잘 붙잡았다 생각합니다. 그게 상업적인 노림수였던 아니었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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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주민의 이야기를 깊게 다루고 있지만 더 큰 특징을 찾자면 바로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이겠죠. <엘리멘탈>은 오랜만에 찾아온 픽사표 사랑 이야기입니다. 주된 이야기로 한정하면 자그마치 15년 전 <월-E> 이후 두 번째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픽사의 모든 작품이 누구나 볼 수 있는 가족영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넓게 보면 가족 또한 하나의 관계이듯이 픽사 작품이 가진 관계와 사랑에 대한 관점은 지극히 옳고 또 예쁘다 생각하는 편입니다. 4가지 원소로 비유하는 동화적 구조를 택했지만 <엘리멘탈>은 아주 훌륭한 로맨틱 코미디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아주 괜찮은 성장영화죠. 로맨틱 코미디를 떠올리면 자주 언급되는 <노팅힐>과 <500일의 썸머>와 같은 영화들과 궤를 같이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을 전부 사랑하는 건 아주 힘든 일이겠지만, 인정하기 시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는 걸, 더 나아가 그 사람을 보는 나의 복잡한 마음속을 인정하고 손을 뻗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영화는 알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재료들을 잘 다듬은 후 이러한 이야기를 <엘리멘탈>은 아주 익숙하고 유려한 도구로 차분히 전달합니다. 몇몇 뜬금없고 뻔하다는 평가가 있고 그 평가를 인정하지만 동의하진 않습니다.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아주 잘 다듬어진 수작입니다.

 

우리 중 누군가는 지나치게 뜨겁기도 하지만 그만큼 따스하기도 합니다. 속도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그만큼 타인을 포용하기도 하며, 쉽게 흔들리지만 그만큼 유연하기도, 느리지만 신중하기도 하죠. 그리고 이런 '다름' 또한 하나의 원소처럼 쉬이 갈등이 되기도 하지만 끝끝내 사랑이 되기도 합니다. 웨이드의 몸을 통과한 엠버의 빛이 그토록 아름답게 일렁이듯이 말이죠. 극장에 가는 수고스러움이 아깝지 않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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