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의 기억은 또렷하진 않지만 기억이라고 꺼낼 수 있는 것이 몇 개 있어.
내 기억 속에 우리 가족은 무능력함과 술 주정뱅이의 아빠.
맨날 아빠에게 맞아서 울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를 보며 다시 웃는 엄마.
지금은 엄마 손을 잡고 뛰쳐나오거나 신고를 하거나 했겠지만 그때는 엄마를 위해 같이 울어주고 다독여주고 아빠에게 맞서서 소리 지르는 것이 다였던 6살인 나.
아들이라는 이유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유로 아직은 어리다는 이유로 항상 배제되었던 4살인 동생.
이렇게 네 식구가 반복적인 하루를 매일 보냈어.
어릴 때의 기억은 항상 행복하고 싶지만 아빠의 존재로 악몽이 스쳐 지나갈 때가 있어.
무서웠던 기억 속에 간간히 들여다보면 어린 나는 항상 엄마와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냈던 것 같아.
그래선지 아빠보다는 엄마에게 여자라는 동질감과 애처로움, 불쌍하다는 생각인 큰 것 같아.
자식들을 위해 대신 산 위를 오르고 냉장고 화장실도 없는 집구석, 돈도 벌지 않고 매일 술로 보내는 아빠와 한 참 먹을 때인 우리를 위해 밥을 하면서도 우리에게 힘듦을 내색하지 않던 엄마.
어릴 때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서야 우리 엄마도 정신지체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거를 알았지.
엄마의 그런 장애를 우리도 몰랐을 만큼 남들이 봐도 느끼지는 엄마의 사랑과 헌신으로 우리는 잘 자랐는 것 같아.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그만큼 자식에 대한 사랑이 컸던 것이지.
더운 여름에도 다 큰 내가 잠이 온다 하면 작은 체구로 나를 업고 자장가를 불러줬던 엄마.
어린이집은커녕 피아노 학원도 안 다녔고 그 흔한 동요도 몰랐지만 엄마가 우리에게 불러줬던 섬집아기와 아리랑은 어릴 때부터 내 입에서 흥얼거렸어.
그 흥얼거림이 나에게 유일한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지.
어린이집을 안 다녀도 우리 남매는 기본적인 예의를 엄마를 보면서 배웠고 그리고 행복한 것들이 어떤 것인지 알면서 자랐어.
우리는 엄마의 사랑으로 정신도 마음도 건강하고 밝게 자라서 여느 아이들처럼 장난도 좋아하고 혼나면 속상도 하고 아프면 울기도 했었지.
유난히 장난꾸러기였던 나.
장난도 치고 항상 주동은 내가 하고 동생은 따르기만 했던 어린 시절.
6살 나이에 남은 기억이 몇 가지가 있는데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지나간 추억거리로 적어 보려고 해.
어느 더운 여름.
우리 집 앞에 우리 집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으리으리한 집이 하나 있었어.
어릴 때는 왜 그렇게 커 보였는지 그때는 그렇게 으리으리해 보일 수가 없었어.
누가 봐도 깔끔한 주택이었고 돌담과 빨간 지붕으로 매번 지나갈 때면 인적 하나 없어 사람이 안 사는구나라고 생각했었지.
동네에 우리 나이 또래의 친구가 2명 있었다 했지?
그 친구들과 놀다가 그 집에 귀신이 있나 사람이 사나 여러 가지 추측으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누구 하나가 담벼락을 넘어 확인을 하자고 제안했었지.
물론 그 담은 내가 넘었고 집 안을 보니 사람이 없었어.
그 집이 부러웠던 건지 아님 무작정 장난을 치고 싶었던 건지.
주택 마당에 있던 호수를 가지고 와서 현관 안으로 호스를 집어넣어 놓곤 도망을 쳤어.
어린 나이에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는지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어.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인데 화려하게 보였고 우리 집은 좁은 방하나에 4명이 사는데 좋은 집도 이렇게 비워두고 사는 사람들이 그냥 부럽고 얄미웠던 것 같아.
어린 나이에 시기와 질투로 벌인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장난이었지.
또 하나는 장난이라기보다는 너무나 가난했던 우리에게 웃픈 이야기 중 하나야.
커다란 절이 우리 집 근처에 있었어.
그 큰 절을 올라가는 것은 우리에게 유일한 놀이터였어.
어른 한 명 없이 나와 동생은 짧은 다리로 항상 그 절을 걸어 올라갔었어.
이곳저곳 구경하고 올라가다 보면 옆으로 깊은 계곡이 길게 나 있고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그렇게 오르다 보면 이마에서 흐른 땀은 산바람에 살랑살랑 식혀가면서 절까지 올라갔었어.
절이 다가올 때쯤 은은하게 퍼지는 특유의 절 냄새가 나의 마음을 그렇게 편안하게 해 줄 수가 없었어.
어린 나이에 그 냄새가 너무 좋아 절에 자주 올라갔었어.
절에 가면 스님이랑 보살님들이 반겨줬고 잘 왔다면서 절밥도 주시곤 했었지.
한참 절을 돌아다니다 벽화도 구경하고 오는 사람들도 구경하다 스님들이랑 놀다가 해가 질 때쯤 내려가곤 했었어.
언제부터 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절 입구 쪽에 자판기가 있었어.
동생과 나는 자판기에 나열된 음료수들이 먹고 싶어 쳐다보다가 돈이 없어서 침만 흘렸었어.
그러다 우연히 어떤 사람이 거스름돈을 두고 가서 음료수 하나를 꺼내먹을 수 있었지.
우리는 더 먹고 싶은 마음과 뒤로 떨어지는 음료수를 보고는 흔들면 되겠다고 생각했지.
동생과 나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판기를 잡고 젖 먹던 힘까지 쏟아내면 흔들었는데...
나오라는 음료수는 안 나오고 돈이 나오는 거 아니겠어?
그 이후로 우리는 흔들면 돈이 나온다는 걸 알고 나온 동전으로 음료수를 빼먹곤 했었지.
보살님들과 스님들도 눈치채셨겠지만 어쩌다 오는 우리가 안쓰러우셨는지 그냥 모르는 척해주셨던 것 같아.
그 이후부터는 그 절이 좋아서 가는 건지? 절 밥이 맛있어서 가는 건지? 자판기에 나오는 음료수가 먹고 싶어서 가는 건지? 동생과 나는 수시로 절에 올라가서 놀곤 헀었어.
진짜 그 절이 우리의 놀이터였고 동생과 나의 유일한 추억의 장소이기도 해.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몇 가지의 기억들은 오히려 추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
아빠의 기억들은 힘들고 슬펐지만 그것보다 더 행복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아니면 잊어버리고 싶어서 행복한 기억들로만 덮고 있는 게 아닐까?
어떤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난 행복했던 기억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
세상살이도 똑같이 너무나 힘든 것만 생각하다 보면 그 순간 행복했던 작은 감정들 마저도 사라져 버리곤 해.
살아가야 할 시간들이 너무나 많은데 힘들고 슬펐던 기억들로 하루하루를 의미 없게 사는 건 나 자신을 구덩이에 처박는 신세로 만들 뿐이야.
웃픈 이야기들도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도 지금은 추억이 되었고 살아가는데 중요한 역할도 하지 않아. 그저 추억일 뿐.
모든 사람들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나처럼 추억이었다, 그때는 그랬었다, 훌훌 털어내고 하루를 마무리했으면 해.
그것이 나를 위한 길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