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거 사 줄 테니 우리랑 같이 가자!
가서 며칠 놀다가 오자.
어느 날 갑자기 동네 교회에서 4~5명의 사람들이 집에 찾아와서 부모님을 설득해 어떤 마을에 가게 되었어.
어린 나이에 놀러 간다는 말에 들떠서 오게 된 곳은 사회복지 시설이었고 서로 간의 이야기들이 된 듯이 일사천리로 아빠를 우리들의 동의도 없이 검은 봉고차에 실어 어딘가로 데려가버렸어.
동생과 나는 한동안 끌려가는 아빠를 잊지 못한 상태로 시설에 적응을 해야 했었어.
여기 사회복지시설은 부랑자 시설이었고 천주교 재단이라서 성당이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가족 단위로 만들어 둔 가정집들과 1동짜리 아파트가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 있었지.
주변에는 산들뿐이었고 한쪽으로는 큰 강이 흘렀어.
부랑자 시설이라 여러 장애우들과 부모를 여의거나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이 백여 명 가까이 모여 살았고 온전히 이 시설을 들어오고 싶어 들어온 사람들은 없었지.
성별이 다르고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공동체라는 이유로 함께 살아가야 했고 동생과 나는 힘든 상황에서도 억지로 적응을 강요받았었어.
다행히 시설 창립자 신부님이 동생을 이뻐해 주셨지.
동생만 너무 예뻐라 하셔서 나 혼자 외톨이가 되곤 할 정도였으니깐.
시설 언니 오빠들과는 나이 차이가 있어서 바로 어울리는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싸우고 지지고 볶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친해지게 되었었지.
그리고 여기서 학교라는 곳도 다니게 해 주었어.
초등학교는 시설의 언니, 오빠들도 다녀서 우리들을 '시설 아이들'이라고도 불렸지.
시설에 사는 아이들이라 다들 안 좋게 보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게 사회복지사라고 읽고 이모, 삼촌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항상 부모처럼 옆에서 챙겨주지 않았고 시설에서 잡음이 없고 누가 봐도 시설이 잘 운영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강압적으로 통제를 받아야 했었어.
그 억압과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든 몰래몰래 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들이 나쁜 짓으로 변질이 되었어.
그렇게 나쁜 짓들만 하다 보면 더 나쁜 짓들도 서슴없이 하게 되더라고.
그리고 억압된 공동체 생활에서 더 나쁜 짓을 당하는 건 어리고 여자인 내가 되었지.
학교 생활도 제법 적응할 때쯤.
내가 생각보다 달리기를 잘하였고 대회를 나갈 때마다 상을 타서 오면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시설의 이모, 삼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어.
그 관심이 좋아서 대회 때마다 상을 받기 위해 수업이 끝나면 남아서 연습도 하였지.
육상 연습을 끝내고 시설에 사는 오빠들과 집에 가던 어느 날.
학교 옆에 비닐하우스가 하나 있었는데 늦저녁이라 밭일하던 어른들은 집에 가 없었고 오빠들은 나를 비닐하우스로 끌고 가는게 아니겠어.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처음으로 낯설고 무섭고 당황스럽고 부끄럽고...
복잡한 것들로 뒤섞인 공간에서 성폭행을 당했지.
오빠들은 이 일을 이모, 삼촌들에게 말하지 말라며 말을 하게 되면 가만히 안 있을 거라고 협박을 했고 너무 무서워서 시설에 와서 입도 떼지 못했어.
고작 3학년이라고 아는 건 상장받았다고 뿌듯해하던 아이였는데.
그렇게 무서운 일을 겪고도 나는 숨을 죽이고 있어야 했었어.
그때부터 시작되었지.
시설에 살던 중, 고등학생 오빠들이 이 이야기들을 어떻게 알았는지...
나를 가만히 두질 않더라고.
어느 날 한 오빠가 내 방에 들어와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고 강요를 했었어.
일명 "매트리스 레슬링"이라면서. 침대 매트리스에서 먼저 떨어지는 사람이 지는 거고 무조건 안 떨어지게 버티면 이기는 거라고 하더라고.
지는 사람은 뺨을 맞아야 한다고까지.
난 당연히 승부욕도 강했고 진짜로 폭력을 쓰는 오빠였기에 무서워서 어떻게든 이기려고 몸부림을 쳤었어.
하지만 그게 나에게는 성희롱을 받아주는 셈이 되었고 그렇게 그 오빠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그 게임을 하였지.
시간이 흐르면서 그 게임은 온몸을 만지고 심지어 옷을 벗길 정도로 도가 지나쳤고 너무 싫고 불쾌해서 소리를 질렀지만 돌아오는 건 무작위로 뺨 맞는 일이 되었어.
또 어떤 오빠는 나를 창고로 불러 강제로 눕히곤 장애 오빠에게 나를 겁탈하게 하였지.
힘으로는 감당을 할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자 소리를 질렀고 결국 또 나는 두들겨 맞았었어.
그렇게 나는 어린 나이에 힘든 일들을 계속 겪다 보니 시설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별생각을 다했었어.
그런데 나에겐 도망을 갈 곳도 이야기를 할 곳도 없었지.
왜냐면 시설에 어른들도 어린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성추행을 하거나 그것들이 못된 거라고 알면서도 다 나를 위해서 그러는 거라는 번지르한 말들로 나의 입을 막을뿐이었지.
그렇게 이모, 삼촌들도 알면서 보지 않았고 들었으면서도 묵인하였던거야.
난 그렇게 악몽 속에서 악몽을 꾸며 어린 나이에 성폭력을 당해도 속으로 삼켰고 그것들이 충격이 되어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날 정도야.
그래서 그 시설에서 퇴소를 하는 순간 시설의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어.
지금 글을 쓰면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성폭력을 당했다고 시설의 이모, 삼촌들이 묵인했다고 해서 나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어.
이겨내야 했고 도망갈 수 있으면 어떤 방법으로 도망을 가야만 했지.
나처럼 힘들게 말을 하지도 못하고 도망도 칠 수 없어도 무조건 방법은 있을 거야.
이 글을 보게 되면 혹시나 도움이 될 수 있게 댓글이라도 남겨줬으면 좋겠어.
아니면 메일을 보내 주길 바래.
(xodwk48666@naver.com)
아무리 무섭고 힘들어도 벗어날 구멍이 있고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조금만 주변을 둘려보면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거야.
먼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꼭 자신을 사랑하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