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 저도 못한 어린 시절

#04. 긍정 주문 = 자존감 up

by 이 영
긍정적으로 살자.


나의 좌우명이야.


아주 어릴 때부터 시설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를 단단하게 할 주문이 필요했었어.

시설에서의 성폭력과 학대를 이겨내려면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거라곤 나 스스로를 이겨낼 있게 해주는 긍정적인 주문뿐이었지.

그 주문들이 어린 나이에 큰 도움이 있게나마는


언젠간 좋은 일이 있겠지,
다 괜찮아지겠지,
이거 또한 지나가겠지


라는 생각들을 항상 되뇌곤 했었어.


사회복지 시설에 있으면서 나의 재능이라고는 어릴 때 남들보다 조금 잘했던 달리기뿐이었어.

작은 시골에서 육상 연습을 하기엔 열악해서 교육청에 교육장님께서 시설에 사는 나를 눈여겨보시고 위탁교육을 할 수 있게 시내 쪽 학교로 옮겨 주셔서 육상 연습을 하면서 수업도 들었어.


그러다 교육장님께서 체력도 좋고 하니 유도도 한번 해보라면서 나에게 권유를 했었지.

아니! 솔직히 말해서 확정이었어.

교육장님께서 군 대표 유도관 사부님과 코치님도 모시고 와서 내가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면담도 했었어. 그리고 교육장님께서 나의 재능과 여건을 보시고는 교육장님이 사는 숙소도 제공해주신다고 했었어.

그래서 기회가 사회복지 시설(부랑자 시설)에서 잠깐이라도 도망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서 냉큼 유도를 하겠다고 했었어. 정말 이때가 아니면 영원히 갇혀서 숨 쉴 수 없다고 생각했었거든.


유도선수 생활로 2년 동안 시설에서 도망쳤지만 그 대가로 감당하기 힘든 합숙 훈련과 선배들의 구타까지도 감당해야 했었어. 난 잘할 수 있는 거라곤 운동뿐이었고 특유의 웃는 얼굴과 붙임성으로 선배들 비위를 맞추면서 좋은 성적을 위해 견뎌냈었어.

또 내가 유도를 시작할 때쯤 시설에 악하다 못해 지옥에서 온 악마의 아들 같은 사이코패스 부제님(천주교에서 사제가 되기 전에 직급)이 와서 아이들을 폭력과 정신적인 고통을 주고 있던 시기라서 시설에 있던 동생이

"누나, 누나만이라도 여기는 오지 마"

라는 섬뜩한 전화가 왔었었어. 그 전화를 받고 난 진짜 유도를 그만두게 되면 다시 그 시설로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버텨냈었어.


하지만 대회 나갈 때마다 경기를 지면 사부님께 맞을 거라는 생각으로 몸이 움츠려 들기 시작하면서 성적도 부진해졌고 점점 재능이 없다고 느꼈을 때쯤 시설에서 아이들 공부를 위해 대구에 그룹홈을 만들어 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대구에 그룹홈은 남자, 여자로 나누고 새로운 사회복지사들로 꾸려서 지낼 거라는 말에 유도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따라나섰어.


그룹홈은 공부라는 취지로 아이들이 모여있었지만 아이들만 있고 보는 눈이 없는 감옥이었고 그전에 살던 시설보다 규칙이 엄격하고 그걸 어길 시에는 혼 독한 체벌들이 있었어.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맞거나

학교 전과목을 가방에 넣고 앉았다 일어나기 1000개나

6인용 식탁을 4명이서 들고 3시간씩 벌을 서거나

고춧대로 100대 맞거나

동네를 2시간씩 뛰거나

성경을 한 권 다 쓸 때까지 잠을 못 자거나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체벌들로 우리들은 가출도 일삼었지. 가출을 하게 되면 더욱더 체벌의 수위는 높아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복지사 이모, 삼촌도 이성을 못 잡고 우리를 개만도 못한 취급을 하기 시작했어.


사랑, 보살핌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것들이 폭행과 학대가 되었다는 걸 안 누군가가 신고를 했고 이모, 삼촌이 시설에서 쫓겨나게 되었지.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워졌지만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는 상처들 투성이었지. 나도 상처들 속에서 헤어 나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었지.


그 상처들로 나만 힘들었던 건 아니지만 어떻게 이겨내느냐는 각자의 마음 가짐이었어.

난 나의 성격대로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긍정적인 주문을 외우며 생각했었지.

또 긍정적인 생각은 생각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몸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이었어.

그래서 난 학교 생활로 선도부도 하고 독서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다른 것들은 잊을 수 있게 더 좋은 생각과 긍정 주문으로 사춘기를 보냈어.

고등학교를 간 나는 공부보다는 예체능에 소질이 있었고 나의 재능을 살려 스스로 진로를 결정해야 했었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같이할 수없다고 하지만 난 운동을 좋아했고 잘했기 때문에 진로도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동시에 선택할 수 있었어.


선택과 포기를 번갈아 하면서도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과 더불어 긍정적인 생각들로 남들과는 다르게 행복하게 지금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


나의 재능을 찾는 것도, 상처 속에서 일어설 수 있는 구멍이 보이는 것도 긍정적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같아.


다른 사람들은 선택과 포기를 할 때 그것에 마땅한 책임도 져야 하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가 힘들다고 하지.

그럴 때는 부모님이나 지인들의 의해 도움도 받고는 하지만 온전히 내 선택이 존중되어야 하고 그것을 이겨내는 것도 나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럴 때는 가장 나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좋은 쪽으로 생각도 하고 또 하나 뭐든 긍정적인 생각들을 하게 되면 내가 행복한 길을 선택할 수 있을 거야. 상처를 받는 일이든 진로를 선택하는 일이든 무슨 일이든.


왜냐면 난 긍정적인 생각들이 가장 나답게 해결해주는 주문이더라고. 나를 사랑해주고 하루에 하나씩 좋은 생각들로 긍정 주문을 외치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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