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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영 Dec 22. 2020

트레이너라는 직업을 가진 엄마⑴

2014년 9월 7일 첫째를 낳았다.

산모들에게 몸의 회복의 시간은  다르지만 나는 가만히 있질 못하는 성격이었다들 알다시피 육아 자체가 힘들다 보니 다이어트는 저절로 되었다. 그리고 모유수유를 해서 건강식도 챙겨 먹어선지  임신으로 쪘던 체중은 더 잘 빠졌다.


제일 중요한 건 나의 근육량이었다.
운동을 꾸준히 해왔고 직업이었던 웨이트 트레이닝이 회복하는데 가장 크게 도움이 되었다.


헬스장을 시작할 때는 첫째 8개월이었다. 둘째 시누와 아주버님은 내가 돌도 안된 애가 있는 걸 알면서 헬스장을 같이 하자고 졸라대니 신랑은 어..수.없.나에게도 하자고 졸라대는 상황이 되었. 신랑도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이 있었고 하던 일도 밤낮이 바뀌어서 힘들 던 차 얼씨구나 싶어 승낙했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댁 가족들이 육아를 많이 도와주겠다는 말을 믿고 나도 함께 하기로 하였다. 

우리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이제 갓 8개월이 지난 아기를 미세먼지와 소음으로 가득 찬 헬스장에서 키우려다 보니 속에서 화가 차  올라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육아를 도와주고 안 도와주고는 상관없이 그냥 환경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헬스장은 운동만 가르쳤던 것이 아니라 근력운동과  스트레칭 수업으로 이루어진 단체 G.X수업을 신랑과 주마다 번갈아가면서 했었.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수업을 할 때쯤 아직 모유수유를 끊지 못했던 첫째가 배도 고프고 잠이 와서 잘 놀다가 수업 중간에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신랑이 애를 달래고 해도 안되니 수업을 하는 나에게 첫째를 안겼다. 그리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볼 뿐 남편은 다른 회원을 봐주러 가버렸다.

그때는 수업은 끝내야 하고 하니 폭발하려는 화를 억누르고  아기띠를 매고 앞가리개를  한 후 젖을 물리면서 수업을 했다.

한 번이라도 이런 상황을 겪지 않은 사람은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지만 그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런 일들이 종종 생기고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았기에 난 너무나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일은 해야 했고 참다 보니 시간이 흘렀고 그 속에서 첫째는 적응을 하며 씩씩하게 한 달씩, 한 달씩 잘 크고 있었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기계들의 미세먼지 속에서도...




우리 세 식구는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살았다. 새벽 5시 30분에 자고 있는 첫째를 안고 헬스장을 열면 잠자는 아이는 휴식 공간에 눕혀 재웠다. 첫째를  헬스장에 하루 종일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근처 어린이집을 보냈다. 그래서 다 같이 아침 식사가 끝나면 바로 근처 어린이집을 보냈었. 최대한 일찍 보내 이 환경보다는 좋은 곳에서 지내다 오길 바랬었다.

그렇게 어린이집에서 하원을 하게 되면 헬스장에서 놀다가 밤이 되면 시끄러운 음악소리에서도 잠을 잤다. 잠이 오겠나 마는 그래도 억지로 잠을 재워야 했었다.  그렇게 자면 11시에 헬스장 마무리를 하고 자는 아이를 안고 다시 집에 갔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2년이 흘렀다.


헬스장이 집이 되고 놀이터가 되어 버린 첫째.

위험한 기구들 사이에서 다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지냈던 시간들, 아이가 뛰어다니면 혹시나 회원들 운동하는데 불편해할까 봐 당연히 뛰어놀 나이에 뛰어다니지 못하게, 소리 지르지 못하게 얼마나 혼내고 뭐라 했는지...

아무 죄 없던 아이에게 훈육이랍시고  매질을 하면서  얼마나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며 아이를 키웠는지 어느 누구도 모를 것이다. 이 마음 이해하는 사람들은 개인 사업장에서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있어야 하는 부모들은 어떤지 절실히 알 것이다.

지금도  내가 첫째를 보면서 마음이 아픈 이유는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나이에 너무나 많은 것들을 억제시키고 강요했던 못난 부모를 만나 고생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사랑받으면서 예쁘게 자랄 아이였는데 너무나 큰 상처를 남겼던 것 같아 마음이 쓰이고 아플 뿐이다.

그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혼자 노는 첫째가 안쓰럽고 나이 터울이 너무 나면 힘들 것 같고 시댁에서는 아들을 원해  둘째 계획을 세웠다.


 감사하게 임신이 바로 되었지만 일이 너무 힘들어 유산을 하게 되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피곤한 몸으로 지낸다는 건 뱃속에 태아에게는 버티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보내고  이틀 만에 다시 일을 하게 되었다.

감당할 수없을 정도로 슬프고 힘들었지만 이미 나에게서  떠난 아기에게 미련을 두고 있기에는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육아와 개인사업, 집안일까지 누구나 겪는 워킹맘의 현실이지 않겠는가. 


그리고는 상처로 인해 잠시 마음을 비우고 째 챙기느라 정신이 없던 차에 다시 나에게 천사가 찾아왔고 그때는 혹시나 또 떠나보낼까 내가 하던 일을 신랑에게  맡기고 안정기에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안정을 취하나 싶었지만 첫째 시누가 크게 아파서 더운 여름에 만삭의 몸으로 중환자실을  들락날락했었다. 병원을 왔다 갔다 했지만 그래도 잠도 잘 자고 잘 먹고 힘들 때 휴식도 취할 수 있어서 둘째는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트레이너를 하면서 임신 상태로 배불러 회원들을 가르치게 되면 회원들도 불안해하겠지만 가르치는 트레이너들도 많은 고생을 한다. 더더욱이 여자 트레이너들은 사업을 하면서 육아와 가정일을 동시에 하게 되면 그 체력이 말도 못 한다.

 하지만 좋은 것만 찾아서 할 수없듯이 무슨 일이든 나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지만 나의 능력도 인정받게 된다.  여자라고 뒤로 물러난다면 계속 도태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여자들이 사업을 하면서 육아와 가정을 돌보라는 것을 아니지만 무슨 일을 하든 워킹맘들은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을 끝까지 지켜가면서 놓지 않으려고 한다. 혹시나 힘들어서 그만두게 되면 다시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다시 복직을 하거나 사업을 하면 되지  하지만  그만큼 다시 하기에는 뒤쳐져있고 누군가는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는 집안일이나 육아로 할 것들이 더 많아지게 돼서 내 일까지 잘할 자신감이 주춤해진다.


 나도 출산과 개인 사업, 가정일, 다시 임신이 될 때까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 두 아이와 함께 잘 살아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이 정도의 열정과 노력으로 워킹맘들은 많은 것들을 잃어가면서 많은 것들을 얻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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