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영 May 19. 2021

사랑과 거래하는 착한 여자는 이제 그만.

착한 여자 - 공지영 장편소설


 착한 여자라는 제목에 끌려서 읽기 시작했다. 제목만 보고는 사랑을 담은 소설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이 시대에 살아가기엔 너무나 안쓰러운 주인공 설정이었고 하지만 지금 어디에나 그런 착한 여자가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여자의 인생을 그려낸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오정인이다.

 어렸을 때부터 버스를 운전하셨던 아빠와 서울에서 대학까지 나와 시골에 시집온 엄마, 말썽만 피우는 오빠, 언니까지 가족 구성원으로 보면 행복해 보이겠지만 그 안의 사정들까지 남들은 모를 일이다.

 어쩌다 집에 아빠가 오는 날이면 항상 술을 먹고 폭언과 폭행으로 엄마의 비명 소리는 문밖으로 흘러나왔고 그 소리에 숨죽여 있는 자식들, 어느 편도 들어주지 않는 할머니, 옆집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사는 이웃들의 눈초리와 혀 놀리는 소리들. 그 속에서 오정인이라는 착한 아이는 살아가고 있었다.

 가출을 한 오빠를 아빠가 데리고 오면서부터 정인의 인생은 더욱더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되었다. 애 하나 단두리 못하고 집에 있으면서 벌어다 주는 돈으로 자식새끼들 건사 못하냐는 아빠의 무지막지한 폭행으로 엄마는 그날 생을 마감하기로 결정하였고 그 날부터 엄마 말을 잘 들었던 착한 정인이는 사랑을 마음속으로 갈구하는 아이로 성장하게 된듯하다.

 

그런 가정환경에서 바르게 자라기 힘들법하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엄마의 빈자리에 서울로 무작정 가버린 언니와 돌아오지 않는 오빠와 새살림을 차린 것 같은 아빠, 오직 정인이만 할머니를 모시며 시골에 남아 일자리를 구해 착실하게 일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서울에서 잠깐 내려온 이웃집 남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정인이는 처음으로 사랑을 하게 된다. 그녀는 자존심까지 버려가면 그 남자를 사랑했고 그 남자가 서울에서 여러 여자를 만났지만 정인이에게 정착을 하고 싶다며 청혼을 하게 되었을 때도 정인이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승낙을 했다. 시골 촌뜨기가 사랑이 무엇인지, 이 감정들로 결혼을 하는 게 맞는지 사리분별이나 했을까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정인이는 마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길 재수 옴 붙었다는 말과 정인이로 인해 주변 사람들은 나쁜 일에 꼬인다는 어른들의 편견이 있었다. 정인이가 그 남자를 만나고 있을 당시에 항상 옆을 지켜주고 정인이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던 이웃집 오빠의 청혼도 그때는 어떠한 감정도 없어 웃으면 거절을 했고 그 오빠의 곁에 맴돌던 정인이의 모습을 보며 오빠의 엄마는 혹여나 우리 아들이 피해를 입을까 전전긍긍하며 온갖 악담들로 정인이의 마음은 갈기갈기 찍어지게 했다.


 하지만 그런 악담들은 정인이에게는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때는. 오정인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니깐.

자존심까지 버리고 주변의 시선을 이겨가며 그렇게 결혼한 정인. 그 생활은 평탄했을까?

안 봐도 뻔한 이야기겠지만 그 남자는 도박과 무관심으로 정인이는 꿈에 그리던 (출근한 남편이 정인이가 끓여주는 술국을 먹으며 식탁에 앉아 이야기하는) 행복한 가정생활들은 생각도 못하게 된다.

 2번의 유산으로 어렵게 아이를 가졌지만 출산 당일 남자는 연락이 안 되었고 그 아이의 출산도 의사가 된 옆집 오빠가 받아주었다. 결국엔 남자는 수감생활까지 하게 되었고 남편의 빈자리도 빈자리지만 그 걸 생각하기에 돈을 먼저 벌어야 했기에 친구의 도움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수감생활이 끝나고 남자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결국엔 그 남자의 폭행으로 정인이의 결혼생활은 벼랑 끝으로 떨어졌다. 그 폭력과 폭언, 무관심으로 정인이는 엄마랑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걸 느꼈을 것이다.  정인이는 맞아가면서 이혼이라는 걸 선택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결혼을 해서 마누라로써 최선을 다하려고 했지만 끝이 좋지 않게 이혼을 했기에 다시 새로운 가정을 꿈꾸기에는 무서웠을 것이다.


 하지만 정인이는 다시 사랑을 하게 된다.  이번은 사랑이라고 믿고 싶고 우연이 인연이 된 그런 남자를 만나게 된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던 정인이는 두 번째 남자와 동거를 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품고 있었다. 아니 그런 생활들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자기 삶에 케어를 해줄 수 있는 엄마와 같은 여자가 필요로 했다. 심지어 두 번째 남자는 집안끼리 결혼이라는 말까지 나온 여자가 있었고 남자는 결국에는 그 여자에게 돌아간다. 그렇게 버려지게 되면서 정인이는 본인의 삶을 한탄하며 이 번 생을 마감하려고 했지만 결국엔 또 이웃집 오빠가 정인이를 살려준다. 아니 희망을 준다. 정인이의 새 생명을 이야기하며 다시 일어설 용기를 갖게 해 준다.

 

 공지영 작가의 착한 여자는 다들 읽고 나서 어떻게 생각하냐, 어느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오정인이라는 인물로 인해 모든 여자들은 태성적으로 잘못된 인생은 없으며 사랑이라는 감정이 상호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누구 하나 사랑으로 희생을 하고 거래를 해서는 안된다고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 착하디 착해빠진 오정인은 할 줄 아는 거라곤 밥과 빨래뿐이었지만 남자들에게 희생보다는 그 희생의 값으로 사랑을 바랐고 그 헌신적인 행동들은 사랑을 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참아가며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정인이는 그 남자들과 보낸 시간들과 헌신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만큼은 그 상황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다만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글귀 중에서

어릴 때 나는 착한 아이였어요. 엄마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했지요. 그게 사랑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요. 엄마, 내가 말 잘 들을게. 날 좀 사랑해줘 , 날 낳은걸 후회하지 말아 줘... 날 버리고 죽지 말아 줘, 제발!... 그리고 어른이 되었어요. 한 남자를 만날 때마다 나는 그런 거래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아시겠어요? 흥정 말이지요. 내가 착할게, 날 좀 사랑해줘, 내가 참을게, 내가 노력할게, 내가 밥을 해주고 내가 빨래를 해주고 밤늦게까지 기다렸다가 문을 열어주고 술국을 끓여주고 뭐든지 다해줄게. 너희들이 나를 버리고 나를 때리고 나를 내팽개치고... 희망을 주었다가 그것이 이루어지기 직적에 그걸 빼앗아가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가도, 더 이상 참을 수없는 벼랑까지 날 밀어버린다 해도 내가 이를 악물고 참을 테니 제발 날 사랑해줘! 그랬던 거지요. 그건 사랑이 아니었어요. 그건 거래였다는 거죠.


 이 글을 읽을 때 내 가슴 저 밑에서 솟구치는 무언가가 올라오는 건 내가 했던 것들이 착한 여자를 포장하기 위한 거래가 아니었나 싶은 의문이 들기도 하고 그런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기도 했다. 내 인생은 오직 거래로 이루어진 사람과의 관계와 사랑을 했던 것 같아 슬프고 속상했다.  

 여자라는 삶이 지금 시대에서는 커리어가 있어야 하고 오히려 밥과 빨래만 할 줄 안다고 하면 이상하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여자들의 다양한 재능과 일들을 할 수 있게 환경이 되어있고 취미나 특기로 직업을 전향해 나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지금은 착한 여자라는 건 뒤통수 당하기 쉽고 호구라고 생각할 정도다. 그래서 요즘은 여자도 영악해야 할 때는 영악하게, 자기의 득과 실을 확실히 챙긴다.

 

 오정인이라는 여자는 30대의 미혼모로 살아가지만 자기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고 다가오는 이웃집 오빠의 사랑을 암시하면 끝나지만 그건 끝이 아니고 다시 시작일 것이다. 삶이 내 마음대로 이루어질 수는 없지만 많은 경험들과 깊이 있는 생각들로 삶의 유연함이 생기게 된다. 사랑을 거래라고 말했던 오정인은 이제 사랑을 집착과 맹목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리를 두며 본인의 삶을 사랑할 줄 도 아는 그런 멋진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맹목적이고 착한 여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없다.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삶 자체에서도 유연함을 가지고,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자가 현명하고 그렇게 하질 못할 때는 나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삶과 심장이 착한 여자가 되길 바란다.


오정인 인생을 응원하며.

작가의 이전글 트레이너라는 직업을 가진 엄마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